처음 나미비아에 도착해서 공항에 빠져나왔던 순간을 기억한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수평선과 지평선을 봤지만 이곳은 하늘이 온통 다인 것 같았다. 땅과 하늘의 비율이 무려 1:9로 나뉘어 있었다. 그즈음 한국은 미세먼지가 사회적 이슈였는데 해외로 나가면서 기대한 것 중에는 맑은 공기도 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큰 하늘을 보게 되니 본 적도 없는 이곳의 하늘을 내내 그리워한 기분이 들었다.
해가 진 뒤 빈트후크에서 세시림으로 이동하던 날을 기억한다. 초행길인데 어두운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한국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하고 걱정도 됐었다. 그렇게 위축돼 있는데 창밖을 보니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있었다.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하수를 보았다. 영화관 1000개를 합쳐둔 상영관의 관객이 된 것 같았다. 이 길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도로를 막고 있던 큰 물 웅덩이 었다. 하국 오빠의 지시와 지석이의 운전 실력으로, 단번에 이곳을 통과했다. 차가 흙탕물로 뒤덮였는데 다들 유쾌해했다.
렌터카 위로 별무리가 덮여 있던 하늘과 길을 막던 물 웅덩이 통과했던 일 때문에 '세시림 가는 밤길'이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나미브 사막으로 향했던 날이다. 날이 흐려 상상하던 사막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중국의 황사 바람 실사판을 보러 온 것 같았다. 아쉽지만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이 있어 가이드 차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하늘이 조금씩 개이고 있었다. 해가 비치니 내가 꿈꿔왔던 사막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모래의 고운 결이 다 느껴졌다. 마지막에 본 사막의 아름다운 결이 생각난다.
세시림에서 스바코프문트로 가는 길은 360도 아무것도 펼쳐져 있지 않고 우리 차량만이 존재하곤 했다. 운전석 전면에는 태양이 있었는데 그 빛을 보며 따라가면 스바코프문트가 나오는 거였다. 나는 그 빛이 희망 같았다. 그래서 그날 내내 스바코프문트 가는 길을 '희망으로 가는 길'이라 명했다. 그 길 위에서 동행들과 자신의 꿈에 대해 말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런 질문들을 좋아한다. 360도 아무것도 펼쳐져있지 않은 땅처럼 아무 편견이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꿈에 대해 말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스바코프문트는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는 걸 알려준 장소다. 한숨이라는 게 상황이 답답하고 부정적인 기운이 돌 때 하는 행동인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나 아름다운 걸 보면 그걸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어서 크게 숨을 내뱉는 행위라는 걸 이곳에서 알게 됐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스바코프문트의 붉은 노을이 아름다웠다.
에토샤 국립공원 가는 길, 우리는 또 밤에 달리고 있었다. 한가운데서 길이 막혀 더 이상 진입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관리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끝났다고 선언한 순간 어둠 속에서 라이트 하나가 생겼다.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길도 찾고 그날 밤 묵을 숙소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상황을 풀어간 게 단순히 행운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을 수 있겠단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종교에 관심을 갖는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야간 게임 드라이빙을 마치고 체온이 가장 많이 떨어졌을 때 라면을 먹었던 게 생각난다. 은박지로 냄비를 만들고, 종이 그릇을 장작으로 태우고, 부채질을 해야만 끓여지는 라면이었다. 가진 재료를 모두 투입해서 쉬지 않고 움직이며 먹어서 재밌었다. 몸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라면을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게 한가득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