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스물일곱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
아프리카에 무지했을 때는 내가 아프리카에서 이 말을 외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이, 추워!"
밤새 웅크리고 자다 추워서 자꾸 깼다. 아무래도 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일어나 보니 저 멀리서 햇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냉큼 카메라를 들고 빛을 향해 다가갔다. '혹시 나 출장 왔나?' 어제 별 사진을 찍느라 별로 자지도 못했는데 일출을 찍겠다는 이 의지로 말끔하게 일어난 것이다. 평소에는 늦장 부리면서, 알람 5분씩 미루면서 일어나는 내가 아닌가. 여행은 날 참 부지런하게 만든다.
아침 공기가 맑았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동행들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남자들은 모기장에서 자느라 침낭에 얼굴까지 파묻고 자고 있었다. 그 옆에 텐트에서 자고 있는 예지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지난밤 텐트에 누워서 별을 보다 자려다 잠에 들어 방충망까지만 잠그고 잔 것이다. 괜히 추운 게 아니었다. 텐트가 있어도 모기장으로 대동단결, 고통 분담한 우분투 팀이다. 나는 예지를 위해 잠시나마 텐트 외피 지퍼를 잠가 두었다.
해가 더 올라오자, 어제 텐트를 빌려 주었던 캠핑장 인부들이 우리 텐트 곁을 서성였다.
"모닝 모닝!" (인부들은 꼭 이렇게 인사를 한다.)
"모닝 모닝."
아침 7시도 안 된 시각이었지만 텐트를 수거하러 온 것이다. 이 텐트는 주변 트럭킹 차량에서 빌려온 듯했다. 그래서 빨리 회수해서 일찍 출발하는 트럭킹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나는 결국 예지를 깨웠고 그 애는 일어나자마자 텐트에서 쫓겨났다. 잠이 덜 깨서 바보같이 앉아 있었다. 모기장 안에서 자던 남자들도 인기척에 깼다. 그 멍한 그 모습에 괜히 짠해지고 웃음이 났다.
캠핑장 주변에는 인부들이 많이 나와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집에서도 주말에 엄마가 청소기를 돌리면 일어나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른 기상이었다.
나는 이 캠핑장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 몇 개를 덜어냈다.
(짧은 시간 여행하고 관찰한 내용을 기록한 거라 지극히 개인 의견이다.)
첫째, 사람이 게을러지는 것은 '고온' 때문이 아니라 '다습' 때문인 것 같다. 습하고 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편견이 있지만 건조하고 더운 나라 사람들은 그다지 게으르지 않은 것 같다. 미디어에 비친 아프리카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굶주리고 무기력한 모습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은 건조해서 사람들이 무지 부지런한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다. 아침부터 "모닝 모닝!"으로 사람들을 깨운다.
둘째, 아프리카 화장실은 깨끗하다. 한국의 여느 공공화장실에 가면 지린내가 나고 더럽지만, 이 기간 들린 아프리카의 모든 화장실은 지린내가 나지 않고 건조했다. 물론 이곳이 관광지임을 감안하더라도 어떨 때는 아프리카 화장실이 한국의 화장실보다 깨끗하게 사용되고 청소된다고 느꼈다. 또 이만큼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선 두 명 정도 배치될 청소 일에 아프리카에서는 네 명 정도 배치되서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인부가 많은 만큼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셋째, 벌레가 생각만큼 없다. 아프리카의 겨울(6월)이라 그랬는지 이 캠핑지에는 벌레가 하나도 없었다. 야외에서 지내게 되면 벌레 때문에 고생할 줄 알았는데 하루살이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건 내가 아프리카의 우기와 건기, 사계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 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북으로 올라 갈수록 모기가 많아지긴 했다.)
넷째, 아프리카는 덥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밤은 춥다. 아프리카 하면 대번 더운 날씨가 떠오르지만, '눈만 안 왔지'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이곳의 밤에 있다. 또 Namutoni 캠핑장에서 지냈던 날은 한국의 맑은 가을 날씨와 같았다.
우리는 씻은 다음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틀고 노래를 부르고 아침체조도 했다. 룬두로 이동하는 날이었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충분했다. 저녁 10시나 돼서야 잠비아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계획대로 안 되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일찍 룬두에 도착해 있기로 했다. (미리 얘기하자면 일찍 출발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로비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에토샤 국립공원을 빠져나왔다. 나가는 길목에 군인들의 검문이 있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총 들고 있는 군인들이 검문을 하니 괜히 긴장이 되었다. 그 모습을 예지가 액션캠으로 촬영했다. 그러자 여군이 '그게 뭔지, 뭘 찍고 있는지' 물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전 과정을 다 촬영하고 있어서 예지도 습관적으로 찍었는데 여군이 제동을 건 것이다. 그때 예지가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방금 찍은 사진이 나오지 않게 반대편으로 사진을 넘기며 전날 동물들 사진을 보여준 것이다. 여군은 미심쩍어했지만 넘어가 주었다. 애가 탄 건 나였다. 검문이 있기 전부터 차량 앞 유리에 액션캠을 달아두었는데 그게 이 검문 과정을 전부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액션캠이 걸릴까 봐 나는 노심초사했다. 우리는 밀렵 같은 나쁜 짓도 안 하고, 비자도 모두 갖고 있었지만 딴지 걸릴까 봐 괜히 긴장했다. 군인들은 우리 차량과 짐들을 꼼꼼히 검문한 뒤 통과시켜주었다. 우리는 출구에서 국립공원에 대한 값을 지불하고 에토샤 국립공원을 완전히 빠져나왔다.(에토샤 국립공원은 입장할 때는 요금 확인만 하고 퇴장할 때 요금을 지불하는 운영 정책을 가지고 있다.)
[돌발상황 #16] 에토샤 국립공원을 빠져나올 때 군인들의 검문이 있었다. 우리의 부주의로 검문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있었다. 시시비비를 따지고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질 뻔했지만 임기응변으로 큰 문제없이 출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