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싶었다> #48
기다림. 가장 어렵지만 꼭 필요한 삶의 요소.
영상 제작을 하는 업의 특성 때문인지 다양한 브랜드 혹은 대행사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여러 번 작업을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사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는 편이 맞을 정도.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대화란 걸 이어가기 위해 가끔 나에게 묻는다. '태호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만큼 어려운 질문도 없는 듯하다. 장점을 이야기해달라는 걸까. 성향을 한 번에 대답해 달라는 것일까. 내 속을 제아무리 마음의 눈으로 바라 보아도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그리고 서른이 다 되어서야 내 마음에 쏙 드는 답을 찾아냈다.
"저는 잘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잘 기다리는 사람. 어쩌면 굉장히 슬픈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대답이라. 나를 굉장히 우울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만큼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많이 겪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부터 마음의 기다림까지. 나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들도 늘 기다림을 안고 살아가지만. 보다 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앞서가는 이가 뒤에 오는 이를 기다리듯. 기다림은 서로에게 필요한 절대적 시간의 차이가 생길 때마다 찾아온다. 그 시간의 차이는 늘 상대적이어서 기다리는 이에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춰야만 하는 긴 시간으로. 찾아가는 이에겐 스스로가 낼 수 있는 제한된 속도로 인해 상대가 기다림을 포기하지는 않을까 싶은 조바심 가득한 시간으로 느껴진다.
기다리는 입장보다 쫓아가야 하는 입장에 더 많이 서있던 나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기다려 주다 이윽고 나를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늘 안타깝고 힘들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었다면 하는 뒤늦은 후회가 혼자 남았던 나의 주위를 달처럼 공전하며 맴돌았다. 그래서 뒤에서 쫓아가는 이보단 앞에서 기다려주는 이가 되려 노력하기로 했다. 내가 놓쳤을 때 느꼈던 안타깝고 힘듦의 감정을 상대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기다림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시간도. 기다리는 동안 지치지 않게 할 스스로의 대체재를 찾아 버틸 노력도. 무엇보다 뒤따라올 사람에게 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믿음도. 그러나 기다림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이도 노력하지만 따라오는 사람도 힘들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잘 기다리기 위해 ‘잘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답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