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목소리가 조금은 좋아지려 합니다
"잘 자요~"
침대 머리맡에 베개와 나란히 놓아둔 파란 mp3에서 그날 밤도 어김없이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정하고도 따스한 그 말이 끝나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에 들곤 했다. 24시간 중 12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게 만들던 학생의 일상을 마무리해주는 포근한 목소리였다. 여성 라디오 BJ 보단 남성 BJ 들의 목소리를 나는 줄곧 찬양하곤 했다. 왜 그랬을까. 남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편안해서였다. 덧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솔직한 마음의 이유는 그들의 목소리가 나와는 정 반대였기 때문에.
언제부터였을까. 스스로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싶어 졌던 것은. 분명한 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2차 성징이 시작되고 끝날 무렵이 었던 것도 같다. 지금도 아이들은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의 남자아이들은 목젖이 있는 것을 자랑하곤 했다. 다가온 변성기에 며칠 정도는 우울해했지만. 어느새 멋진 목소리를 갖게 된 본인들의 목소리를 힘껏 뽐내기도 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본인만의 멋진 목소리를 가져가는 동안. 나는 미성의 목소리로 홀로 남겨져 가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근데 목소리가 완전 그대로네! 변성기가 오지 않았니?"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사람들을 뜻하지 않게 마주치게 되면 종종 듣는 소리였다. 내 목소리가 좋아서였는지. 목소리 변하지 않은 게 신기해서 그렇게 말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나는 목소리의 '목'자만 꺼내어도 싫었다. 종종 듣다 보니 나에게 변성기는 꼭 와야만 했었던 시기이고. 변하지 않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대신 외면하게 만들었다.
27살일 때의 이야기이다. 매거진 마케팅 일을 배우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다른 부서와 함께 회식을 하던 날이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한 팀장님이 나에게 취한 채로 눈이 반쯤 풀려 말했다.
"자기는 외모는 괜찮은데 목소리가 너무 하이톤이야"
소주에 위스키며 온갖 술을 뱃속에 때려 넣었건만. 그 한마디에 술기운이 확 달아나 버렸다. 얼마나 분했는지 그 자리에서 같은 팀 선배에게 일러다 바쳤다. 너무한 거 아니냐고. 내 목소리가 그렇게 하이톤이냐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나는 하이톤이 되는 사람이었다. 막내여서 늘 즐거워야 했고. 여초 회사 속에서 조용히 보단 활기차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마저 환경을 따라 늘 하이톤의 사람이 되어버렸었다.
"그런 판단을 할 가치 조차 없는 사람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저는 제 목소리를 너무 싫어해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소년미가 있는 걸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 목소리에 대해 불평을 늘어놨다. 나의 푸념 섞인 이야기를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기 띈 얼굴에 나는 그냥 싫어한다고. 너무 어려 보이는 목소리라 일을 할 때에 방해되는 편이라고 연속된 부정을 나열해 댔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띠며 다른 시각을 가지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소년미라니. 나이 30대에 소년미라니. 누군가는 굉장히 부러운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처음 그 이야기의 들었을 때 나의 속 마음은 이랬다.
'그래도 전 제 목소리가 싫어요.'
스스로의 목소리에 대한 부정과 중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대한 로망이 있다 보니. 언젠가는 나도 그런 목소리를 갖게 되는 날이 오면 '오디오북'이라는 것을 반드시 해보리라 벼르고 있었다. 사실 스스로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해서 20대 중반에 이미 도전해 보았던 적도 있다. 그 누구도 몰랐겠지만. 3개 정도의 오디오 파일들을 만든 뒤. 깔끔하게 머릿속에 좋지 않은 추억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렇게 그 도전은 시작과 동시에 끝을 냈었다. 그렇게 끝을 냈었는데 여전히 나는 '오디오북'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 보니 언젠가는 시작할 것 같기는 했었다.
"나 오디오북 해볼까?"
설렘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정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응, 나는 자기 목소리가 소년 미가 있어서 좋은데. 책 읽을 때는 조금 달라. 덤덤하게 읽어서 좋아"
낭독하는 오디오북을 하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피는 말을 들어 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다. 최대한 덤덤하고 담담하게. 누군가들에게 들려주는 오디오북이 아닌. 내 목소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생각하며 낯 간지럽지만 열심히 읽었다. 숙제 검사를 맡는 느낌이 들었어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사랑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읽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낭독하는 콘텐츠를 올리면 곤욕스러운 시간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치고 싶어서 내 목소리를 틀어놓고 자자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정말 매일같이 틀기 시작했고 나는 난색을 표현했지만 틀어놓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말에 참아내기로 했다. 나의 난색에도 꾸준히 내 목소리를 틀어준 탓인지 지금은 내 손으로 낭독한 영상을 틀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되려 묻는다.
"오늘은 뭐 틀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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