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

by 윤목

부모의 욕심보다 가지고 있는 학업에 대한 욕심이 훨씬 큰 아이가 있다. 실제로도 그러한가에 대하여는 의문의 부호가 띄워질 수 있지만 적어도 양쪽을 모두 대화해 본 나의 입장에서는 그러하다. 아이와 처음으로 함께한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아이와 나 모두 둘 다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실망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욕심이 앞서면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공부에서도 당연하게도 적용되는 듯했다. 앞서가는 욕심에 개념보다는 늘 문제풀이에 얽매여 30여 문제 중 오답은 늘 10개를 넘어섰다. 여타 과목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개념과 더불어 이해가 가장 중요한 국어 과목인데.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려 드니 조금만 꼬아 낸다고 하면 아니나 다를까 정답이라고 유혹하는 오답을 여지없이 선택하는 모습이었다. 문제를 풀며 위안을 얻는다는 아이의 이야기에 뭔지 모를 애잔함이 느껴졌지만 결코 좌시하고 있지 않기로 했다.


이과생의 특성상 국어 과목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국어는 기본만 있으면 많은 시간을 투여하지 않고도 높은 점수를 낼 수 있는 과목임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일주일에 딱 3번 '하루에 30분씩 배운 작품과 필기한 것들을 소리 내어 읽을 것'을 노력해 달라 했다. 한 달 여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연스레 뇌리에 박힌 작품에 대한 내용들은 10개 언저리를 넘나들던 오답의 숫자를 6~7개의 사이로 줄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더 잡아야 할 것이 남았다. 오답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고 풀어보라 하면 아이는 늘 2개 3개를 제외하고는 정답을 골라내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하나뿐이었다. 선택지를 대충 읽는다는 것. 이는 쉽사리 고쳐지지는 않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한 달 안에 가장 핵심의 문제라 생각되는 두 가지 모두를 고치는 것보다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일단은 문제를 풀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 본인이 틀리는 이유에 대하여 꾸준히 인지시켜 주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았다.


"내일 시험 보고 잘 보면 저 뭐 해주실 거예요?"


애는 애였다. 전날 하루 온종일 옆에서 시험 준비를 해주는 봉사를 하고 있는 나에게 뱉는 말이란 저런 말이라니. 이기적인 것을 앞서서 공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차피 저런 발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왜?"라는 답변을 할 것이라고 나를 파악한 것일까. 예상을 했다면 아이는 어쩌면 뿌듯했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세 글자로 답했으니까.


"내가 왜?"


자신감에 가득 차기도 하고 호기롭기까지 했던 녀석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도 연락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잘 봤으면 지속적인 전화로 나의 단잠마저 방해하고도 남았을 아이의 성격상 그다지 잘 보지는 못했겠구나 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따가 시험지 보내 드릴게요'


다음날이 되어서야 시험지와 답안지가 찍힌 사진들을 보내왔다. 이미 채점은 매겨져 있었지만 10개 이상을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이윽고 '휴우' 하는 한숨과 함께 아쉬움으로 변했다. 틀린 문제 여섯 개. 그중 알면서도 틀렸을 문제 4개.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도 알고 있었다. 본인 서두름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어머님...'


식상한 인사로 시작하는 기나긴 문자를 아이의 어머님께 보냈다. 그간의 학업의 방향과 시험 결과로 인해 무엇보다 스트레스받고 자책하고 있을 아이라 격려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한 순간에 습관을 고치기는 힘들지만 올해 안에는 반드시 고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 아이를 지켜봤을 사람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시험기간 컨디션 안 좋아서 걱정하셨었죠? 격려해 주시고 자신감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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