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영화 있어?"
"보고 싶은 영화 있어?"
휘몰아치는 2주가량의 중간고사 일정이 끝난 마지막 날 평온한 밤이었다. 저녁 11시. 며칠 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치킨을 시켜놓고 먹기에 앞서 왠지 영화 한 편을 끝까지 함께 보고 싶은 날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있는 우리라서 평범하고도 소소한 시간일 수도 있지만 하루의 마무리를 알차게 하고 싶었나 보다. 보통의 나라면 무언가를 먹는 시간에 분명 음식에 관한 예능을 켜 놓을 법했으나 이날은 이상하게도 함께 볼 무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었다.
"잔잔하고 깨달음이 있는 영화를 보고 싶어"
돌아오는 대답에 나는 넷플릭스에 떠있는 수많은 영화들을 빠르게 스캔했다. 수많은 영화의 포스터들 혹은 썸네일들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일전에 한 유튜브 소개에서 본 영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화 <인턴>을 골라 재생시켰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그리했다. 70대 고령 인턴 남자와 30대 사업가 여성이 함께하는 이야기였다. 잠시나마 두 사람의 러브라인을 상상했던 우리의 예상을 깨는 이야기에 뻘쭘하기도 했었다. 20대의 우리가 보았다면 영화의 감상평은 어떠했을까. 어쩌면 그때의 우리가 이 영화를 봤다면 '열정적으로 일하고 성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구나, 역시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로 30대 사업가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구나' 이런 식의 보다 성공과 안정감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했을 법했다.
몇 년 전 20대 때에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보다 여유와 단단함을 갖고 살아가자는 대화를 하며 나는 깨달았다. 그래, 70대 주인공의 단정한 옷매무새와 행동들 그리고 대화들은 단단한 신념과 바름을 통해 어느 한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아껴놓은 말 한마디를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어 놓아 듣는 이와 보는 이 모두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자세는 한순간에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걸음마를 떼 듯 한 걸음 두 걸음발을 떼면 어느새 갖출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내가 시험 기간에 지나치게 말을 빨리 한 것 같아"
영화를 본 다음날 오후, 그녀가 나에게 무심코 전한 말이었다. 함께 있다가 한 순간 들려온 말이었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세심한 성격이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지난 2주간의 본인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영화를 보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대처하면 큰 탈 없이 넘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서 였을까 시험 기간에 정신없어 나에게 말을 막 뱉었다고 했다고 했다. 정작 받아들이는 나는 전혀 못 느꼈었는데 말이다. 행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신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고 이해했을 거였다.
30대의 우리는 아니, 30대라서가 아니라 그녀와 나는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여기서의 대화란 시답지 않은 농담들을 지칭하는 것 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가 주를 이룬다. 연인 간의 대화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 어떤 관계도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흔들리는 순간이 왔을 때 그 흔들림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얼마나 서로 대화를 통해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를 알고 있는지가 포인트가 된다.
영화를 다 본 우리는 그런 관점에서 대화를 했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명예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안정화된 후라서 저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는 하루 이틀 만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그가 가지고 있는 여유로움과 단단함은 안정적이거나 불안정한 평생을 바쳐 지켜오고 쌓아온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서로의 공감대 가득한 대화가 방안과 어두운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우리가 행여나 너무 성공이나 재물에 욕심을 부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거나 채찍질당하고 있어서 정작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해 오히려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너무 빨리 달리는 KTX를 타다 무궁화호를 타면 보다 바깥의 풍경을 진득하니 구경할 수 있듯 지나가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 빨리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작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밤이었다.
무엇보다 영화에 나오는 70대 주인공 벤의 10초 자기소개
'홀아비에 아들 하나, 손주 둘. 무용지물이 된 전화번호부 책 제작일을 했으며, 요즘은 인턴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결국은 우리는 즐겁기 위해서 살고 있는 거였다. 다만 즐겁기 위해 현실을 힘들게 버틴다고 우리는 수 없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옛말에 나이가 들 수록 아이 때의 모습이 나타난다고들 한다. 나이가 들어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얼굴에 띄며 서로를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즐겁고 행복하게 늙어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