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버이날에 찾아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들을 대며 어떻게든 본가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을 나였다. 필히 나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거라 위안 삼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거니까 당연히 갖게 되는 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당연한 태도라면 내가 죄책감이나 마음 한 구석의 불편함이라는 감정 따위는 갖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부모님과 일심동체가 되어 생각이 비슷하고, 내가 당신들의 바람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본가에 간다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부부도 일심동체가 힘든 마당에 자식이라고 가능할까. 결국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살아가는 방향은 같을 수 있고 실제로 추구하는 방향은 같았다. 과정을 겪어봐 길을 가본 부모님과 과정을 스스로 겪어 보고 싶어 하는 나 스스로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갈등과 이야기들이 본가에 가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보다 편하고 안전한 길을 가길 바라는 부모님의 뜻과는 다르게 늘 어려운 길을 택하고 몇 번이나 무너지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까닭에 만나면 유독 부모님은 나에게 대화의 시간을 갖기를 요청했고 꾸준히 본인들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부모님과 늘 틀린 것 같은 나의 반박이 한데 어울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억압의 시간을 회피하느라 급급했다.
이번에도 만약 혼자 가야 하는 길이었다면, 구태여 시간을 내지도, 마치 즐거운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언제 갈 거라고 몇 주 전부터 전화와 카톡을 통해 확인하는 부산스럽고도 수고스러운 작업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여행지에서 먹거리와 이동 루트를 짜듯 그렇게 이번 본가 방문은 짜인 시간의 틀 속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5월의 한창인 중순, 나와 그녀는 결국 평일 이틀의 시간을 내어 함께 본가를 방문하기로 했다. 서로의 고향이 같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커플들과는 보다 수월하게 의사 결정이 되었다. 함께 내려가는 중 우리는 서로의 부모님께 보다 충실하자며 내려가는 길 내내 다짐했다. 그래야 서로가 서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여 드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틀간에 치러지는 우리의 본가 방문 일정은 빠듯했다. 첫날은 나의 집에, 두 번째 날은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일정인지라 우리 두 사람은 어찌 보면 서울에서 각자 일을 하고 있을 때 보다 더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 까닭은 딱 두 가지였다. 지난 설 명절 때 얼굴을 비추지 못한 이유와 간 김에 양가에 인사를 한번 더 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친해지는 것보다 지금부터 어느 정도 서로 왕래를 해 가며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둘의 판단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시간, 조금 일찍 도착한 그녀가 아빠와 함께 나란히 거실의 창 밖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찰칵'
조심스레 두 손을 고이 모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 팔짱을 낀 채 본 적 없는 어색함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말투와 제스처로 이야기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진 나는 폰을 들어 열심히 찍어 댔다.
32년 동안 처음 보는 광경. 처음 느껴보는 뭉클함. 들릴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소리의 주파수를 내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며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저녁을 준비하던 손을 멈추고 한 없이 그 아름다움을 채 담지 못한 사진을 지긋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도 모르게 홀로 조용히 행복의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이 고요함과 평안함이 정말 좋다."
저녁을 먹고 부모님의 텃밭을 함께 구경간 그녀가 나에게 와서 조용히 소곤대었다. 행여 불편한 게 있어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미리 걱정했었다.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예상을 빗나가는 뜻밖에 들려온 행복으로 충만한 목소리는 자각할 틈 없이 미소가 얼굴에 지어지게 만들었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마스크 뒤에 미소를 띤 채 텃밭에 함께 있는 그녀와 부모님, 동생, 그리고 반려견을 번갈아 보았다. 저물고 있는 태양의 주황빛이 사라져 가고, 어스름한 어두움이 찾아드는 넓은 텃밭을 거닐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따스함과 평온함 그 자체의 정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포근하게 감싸 안겨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눈에 담고 기억하고 싶은 것처럼 그리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세상을 떠난다면 가장 보고 싶을 마지막 광경'
행복감과 지금은 그나마 뚜렷하게 기억하겠지만, 몇 년이 지나면 제아무리 기억력이 좋다고 한들 아련해지는 날이 오겠지...라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러나 다행히 아쉬움보다 행복감이 더 커서였는지 이런 게 바로 진정한 평온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뇌에 잔상으로 한참을 남았다. 내가 본가에 오는 시간이 그토록 괴로웠던 이유는 부모님을,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적당한 때에 적당한 여유로움으로 함께 하는 것. 이 평온함을 알게 하기 위해 그토록 그동안 괴로웠던 것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