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홀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중요한 당신에게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의 거리를 주기가 어려웠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누군가가 채어갈까봐 걱정되어서 라기엔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어 뭐라 형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홀로의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과 일상이 재미 없어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는 당신의 그 시간들은 나의 별볼일 없는 유머 감각에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지길 바라고 바라며 쓰지 않던 잔머리 까지 굴려 보았지만 되려 날이 갈 수록 깊어지는 권태로움들을 확인 했을 뿐. 그래서 내가 당신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결정을 내렸다.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의 도움을 당신에게 주기로. 그 후 혼자의 시간을 주겠다고 먹은 마음을 언제 선물을 해야 할지 시간을 재고 있었다.
나는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이라 여겼다. 타인의 삶을 엿보는 순간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을 항상 받았으니까 말이다. 비록 그 방향이 부정적이었을 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이 찾아옴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던 지난 일요일 전시회에 다녀오라며 만오천원짜리 모바일 티켓을 건넸다. 종이 티켓을 건넸다면 조금 더 아날로그 감성을 힘입어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티켓을 건네면서도 만오천원의 전시에 마음이 조금 나아진다면 슬플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을 것이다.
전시회에 다녀온 당신이 나에게 수줍게. 아니 수줍다는 표현보다는 우당탕함이 더 맞다. 비록 그 뒤에는 수줍음의 감정이 숨어있더라도. 그렇게 편지를 건넸다. 머물게 되었던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더불어 고마움과 응원 그리고 애정까지.
스스로가 미련했다. 때로는 당신에게 건넨 혼자의 시간이 우리를 더욱이 돈독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긴시간은 주지 못하더라도 잠시의 시간은 종종 내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