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목 Oct 07. 2021

모든 것의 이유는 중요하다

30대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14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거역할 수 없는 세상의 진리.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최근 '30대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소재로 글을 적고 있는 것에는 역시 현재 스스로의 모습이 조금 더 나은 모습이었다면, 그리고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삶에 대한 회의감 가득한 감정이 이유로 버티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글을 보고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않겠냐며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줄 테다. 그러나 나는 그 손길을 잡으려다 위로의 말과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감사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또한 어떤 이유가 있어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 발짝 뒤로 멀어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타산적인 사람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베푸는 선행의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행동하는 것 역시 사랑에도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제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러나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행동들의 이유는 상대가 나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동하는 것들인 만큼 관점 자체가 다르다. 선행이라는 지인이나 타인에게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단어로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행동을 한정 짓기에는 지인 간의 선행이라는 어구의 그릇이 너무 작으니 사랑은 논외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 지인이라 불리는 아는 사람과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에 대한 마음 씀씀이에 대한 질이 다르니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이유 없는 선행은 없다는 이야기가 불편히 들릴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무언가를 빌려주면서 늘 대가를 바라는 사람이냐고, 어린 시절 그런 풋풋함 따위는 없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애매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기억은 늘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현실 생활이 아주 넉넉하지 하거나 마음이 여유로 가득 차 있지 않는 한. 설령 있었을지도 모를 어린 시절의 대가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삶을 미화하는 기억들을 아무리 뒤져도 그런 행동은 나오지 않는다. 늘 그 끝에는 이유가 있었다.


 선의라 생각되는 상대의 나에 대한 행동들은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거나 행복감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는다. 늘 새드 앤딩을 만들어내어 서로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때로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세계 3차 대전을 일으킬 모양으로 싸우다가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하고, 때로는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끊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상대에게 돌리고 싶었던 경우는 없었다. 상대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 일어났던 일들이고 결국 행동에 대한 이유도 내가 만들었고 행동도 내가 했으며 책임도 오롯이 내가 져야 할 몫이기 때문에.


 선택과 행동, 책임 모두 자의에 의해 일어났다는 부분은 모질게도, 냉정하게도 느껴지게 되어 스스로를 얽매는 족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족쇄가 되어버린 결과들은 또 다른 이유가 되어  다시금 다른 결과들을 만들어내어 왔고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룩한다. 거창할 것 없는 사소한 이유들이 연쇄하여 만들어진 나를.


 이렇게 사고의 흐름을 적어가다 보면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인지 그 어긋남의 시작점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삶의 실타래를 풀어보려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생각한다. '이런 방향으로 다른 이유를 찾아 행동했더라면?'이라는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나올 생각의 흐름으로 점점 복잡한 사고의 과정을 지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미 지나버린 이유와 결과들을 하나하나 대조해 가며 그 당시의 최선을 찾으려 하던 그 노력은 결국 더욱 꼬여버린 실타래들이 한 무더기가 되어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몇 시간, 며칠이고 고민하고 되짚어 보더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같은 일이 다가왔을 때 조금 더 현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곱씹고 회상하고 다짐할 뿐. 돌아봄의 과정을 겪을 때 겪지 않을 때의 차이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순간의 감정과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성향이 강한 나에게 조금이나마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과거를 통한 이유를 만들어 준다는 것. 행여나 같은 결과를 불러일으킬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았더라도 조금은 덜 힘들 수 있는 마음의 완충재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는 부분. 그러니 모든 일들에 대한 이유는 중요하다 다음에 덜 다칠 수 있기 위해.

 



작가의 이전글 늘 똑 부러질 필요는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