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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Oct 14. 2021

2021.10.13 수요일

기록 8일 차


2021.10.13 수요일 



  보이는 것에 예민한 편이다. 일정한 규칙을 어그러뜨리는 자그마한 티끌들에 불편함을 느끼고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진다. 옮겨지는 시선만큼은 나의 의지가 아닌 무의식으로 인한 이동이며 이때 나의 안구는 신경 쓰지 말라는 생각을 뇌가 하기에 앞서 상황을 파악한다. 이는 안온함 속 위험을 감지하는 생존을 위한 본능일 수 있지만 때로는 과한 반응으로 안온함을 해치기도 한다.


  ‘사람의 양안을 굴리지 않았을 때의 시야각은 약 180도, 양안을 굴렸을 때는 최대 240도까지의 시야각을 확보할 수 있다.’


  책을 보는 동안 나의 시야각은 대략 180-190도 정도 되지 않을까. 양손에 쥐고 있는 책의 글자를 따라 양안이 굴러간다. 데구르르 소리는 나지 않지만 분명 글자들이 뇌에 박히는 것을 보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글을 읽어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글자를 읽는 것이 집중하다 보면 시야각은 실제보다 자연스레 좁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한가한 지하철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옆의 조그마한 움직임이 더더욱 크게만 느껴진다.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는 오늘이 그랬다. 책과의 물리적 거리감은 그대로였지만 집중한 탓에 심리적 거리감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모난 화면 속의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의 한창일 때였다. 오른쪽 하단의 귀퉁이에서 나의 시선을 빼앗아가는 자꾸만 움직이는 검은 물체의 정체. 거리두기로 인해 한자리 띄어 앉은 이의 검은 신발이었다. 발이 저린지 자꾸만 흔들어댔다. 발을 꼬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그 모습에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책을 덮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 - -



  요즘 같은 시국에는 지하철에 한 자리가 비어있어도 누군가들의 사이에 끼어 앉는 행위 자체가 꺼려진다. 내가 병균이 있거나 혹은 그들이 병균을 갖고 있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하루의 시작과 끝의 지하철은 늘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불편한 합석을 하게 된다. 애초에 모르는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옷이 맞닿는 것조차 불편한 나이기 때문에 요즘 같은 때에는 더더욱 조심스럽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잘도 껴앉는 이들도 많다. 앉는 것에 핀잔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앉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그렇게 나의 좌우엔 모르는 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넓게 펴고 앉았던 나의 어깨는 자연스레 움츠러들고 그들의 어깨는 넓어진다. 좁아든 어깨의 불편함에 앉아있는 것이 되려 불편해졌지만 이 불편함은 다행히도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나의 어깨는 다시 제 넓이를 찾아가고 보다 활짝 폈던 그들의 어깨 역시 다시 제 넓이를 찾아간다. 그렇게 초면의 어깨들은 넓이를 맞추어 목적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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