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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Oct 13. 2021

2021.10.12 화요일

기록 7일 차


2021.10.12 화요일 


  오늘도 여느날과 다름 없이 책을 펴들 준비를 하고 열리는 지하철 문을 향해 빠르게 들어간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미 앉아버린 자리라 다시 일어나기는 민망한 상황,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도 나는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나와 한칸 띄어진 그 자리에는 하얀 패딩이 누렇게 변할 정도로 빨지 않은 옷과 마스크도 쓰지 않은채 꼬릿함과 알콜의 냄새를 풍기는 어르신이 앉아계셨다. 너무나도 어색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그렇지만 지하철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옷차림과 또렷한 눈망울들과는 너무나도 이질감이 느껴진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떨어진 이방인과 같은 그의 행색에 하나 둘 옆칸으로 자리를 옮긴다. 나 역시 옮긴다고 해도 알콜내를 풍기며 앉은 채 숙면을 취하고 있는 그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 뻔하지만 옮기지 않았다. 오랜만에 가식으로 가득했던 지하철에 꼬릿한 사람의 냄새가 난다.


 누군가가 다가가 마스크의 여분을 가져다 주었고 어르신은 마저 앉아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펴들고 지하철에 탄지 5분이 지나서야 글자를 눈에 새기기 시작했다. 기뻤다. 마스크를 주는 누군가의 행동이 아직 '이타적'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세상인 것 같았고, 그 행동으로 인해 지하철은 그나마 조금 더 안전해 졌고 나는 그 누릿한 냄새 안에서 안온함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하늘이 보였다. 우연히 보인 것인지 세상이 넓어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인지는 모를 이유이다. 하늘을 보니 괜히 예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싹을 틔우는 듯 하다. 그래서 나는 수 많은 미사여구를 떠올려 본다. 그러나 저 자연의 모습을 온전하게 표현 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아름답다' 였을 뿐. 단어들의 조합들 속에서 나는 적절한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채 행여나 해가 빨리 저물까 걱정되어 서둘러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소리가 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진다. 내가 이래서 소리나게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지 라는 생각이 스치며 아차 싶었다. 잘못한 것 하나 없지만 재빠르게 지하철의 수 많은 인파로 숨어들었다. 그래도 마치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 같다.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이제 사진이라도 더욱더 예쁘게 남기고 싶어졌다. 욕심이랄까. 오랜만에 보정 어플을 열고 채도, 명도, 색온도를 만지작 거린다. 로봇의 전자장치를 하나하나 만져 행동을 입력하듯 데이터화된 자연에 인공을 가미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몇분의 시간내내 만지작 거리다 이윽고 어플을 꺼버린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없다. 결국은 보정하지 않은 사진이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었다. 허나 그것마저 실제 눈으로 담았던 것 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기억이 이미 왜곡하기 시작해서 일까 아니면 정말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예뻤던 것일까. 다시 올라가 자연을 확인하기엔 이미 해가 더욱 져버렸고 나는 수 십명의 사람에 둘러 싸여 있다.


- - -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는 순간 나의 눈은 누군가를 찾느라 쉴 새 없이 돌아다니기 바뻤다. 그리고 개찰구의 정면에서 수줍게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나를 찾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손엔 그녀와 아주 잘 어울리는 꽃 한송이가 들려 있었다. 그녀와 나의 거리가 좁혀져오자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 오늘 힘들었을 건데 " 


 수줍음을 담아 위안을 건네는 꽃을 제대로 쳐다 볼 수 없었다. 입은 웃고 있어도 분명 좋지 않은 표정을 갖고있었을 텐데. 어쩌면 내가 웃으며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올 꽃을 보고 이미 마음이 먼저 달려갔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에게서 나에게 꽃이 넘어오는 그 순간만큼은 꽃 송이에 붙어 있던 꽃 잎들이 우리를 에워 싸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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