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잔이 깨졌다

단편소설

by 윤목

고개를 내려 바닥을 내려다 본다. 길에 짙게 깔린 안개 탓인지 발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60mm 사이즈의 발바닥이 무언가를 밟았다 떼었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나는 걷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코 앞의 물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깔린 안개에 시야가 가려진 채 걸음을 옮긴다. 바닥에 놓여있는 무언가들이 자꾸만 발에 채인다. 플라스틱인지 캔인지 모를 발에 채이던 그것들은 딱딱한 바닥을 긁어댔고 둔탁한 소리들을 만들어 낸다. 그 차가운 소리들은 괜히 안개에 스산함을 더하면서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옥죄어오는 듯 하게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 밖에 없다.


두려움에 젖은 채 재촉한 몇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다. 꽤나 강렬해 보이는 가로등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에워싼 안개가 너무 짙어 불빛만이 허공에 붕 떠 있을 뿐. 그 어디에도 기둥이나 주변 사물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의 불빛이 있다면 기둥은 당연히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금. 기둥이라도 잡으면 그나마 안전함이 느껴질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가로등의 기둥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텁’



잡기 위해 뻗은 손이 되려 잡혔음을 알리는 소리가 난다. 그와 동시에 익숙지 않은 촉각이 느껴진다. 재빠르게 뻗은 손을 당기려 했지만 팔목을 잡은 무엇인가의 악력이 생각보다 세다. 결국 뻗은 손을 회수 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뻗어온 것이 나의 손을 낚아 챘으니 기둥을 향해 뻗어가던 손을 잡아 챈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했다. 여전히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이 앞서지만 촉감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확실했다.



“누..누구세요?”


“당신도 길을 잃었군요?”



왠지 모를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분명 동네에 사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목소리가 이렇게 익숙할 수가 없었으니까. 경계가 가득했던 몸과 팔에서 힘이 조금 빠져 나갔다. 짙은 안개 때문에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도 나의 목소리를 알아 보았는지 한층 경계가 풀린듯한 느낌이다. 이미 길을 잃었음을 알고 있는 그에게 우리가 있는 이 곳이 어디인지 물어 보기로 했다.



“여기는 어딘가요? 언제 부터 이 길을 걷고 있었죠?”


“그쪽도 눈을 떠보니 이 안개 가득한 곳을 걷고 있었나요? 저는 분명 집에서 위스키 한잔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 곳에 서있더라구요.”



짙은 안개 탓에 서로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마주보고 서있음이 분명했다. 비록 우리가 서있는 장소에 대하여는 그 역시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듯 했지만 서로 서있는 이 곳을 두려워 하는 것은 피차일반이었다. 나도, 그도 지금은 우리 두 사람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듯 했다.


20대 초반의 목소리를 가진 그는 중저음에 해당하는 목소리는 아닌 꽤나 높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위스키를 마셨는지 위스키 통에서 목욕을 하고 나왔는지 의아할 정도로 술 찌든 냄새가 나는 것을 빼고는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신기한 점은 술 냄새가 엄청 나는 것에 비해서 목소리나 말투는 전혀 취하지 않은 말짱한 사람같았다는 점이었다. 서로 보이지 않는 시야를 가진 우리는 나란히 서서 팔짱을 낀채 걷기로 했다. 길을 걷다 보면 그와 만난 것 처럼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와 한참을 걷다보니 문득 나는 우리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을 보니 비슷한 키겠거니 했지만 걷는 보폭 마저도 흡사 했다. 간혹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오차범위 내에서 발걸음이 꼬이기도 했지만 대개는 순조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무엇이라도 나오겠거니 하는 기대감을 안은채로. 그러나 우리가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수록 우리의 적막은 짙어만 지는 듯 했다. 단 한마디 없이 얼마나 걸었을까. 기나긴 침묵을 이기지 못하겠는지 그가 먼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아뇨 아직 못했어요. 집에 도착 한 후에 좀 더 있다가 밥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 했는데…지금 이 꼴이네요.”


“배고프시겠어요. 그나저나 여기는 어딘데 이렇게 안개가 가득 끼었는지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들도 좀 만나면 마음이 편할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식사에 대한 안부로 시작하여 끝없이 이어졌다. 그와의 대화 끝에 나는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 낼 수 있었다. 물론 그가 그의 입으로 직접 말해 준 것이지만. 목소리를 미루어 보아 20대 초반일 것 이라던 나의 예상을 보기좋게 뒤엎은 30대 초반이라는 것. 자영업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요즘은 좀 힘들어서 매일 매일을 술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왜 그의 몸에서 이토록 술냄새가 찌들도록 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섣불리 건네었다가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걱정되어 나는 그의 이야기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나의 침묵으로 인한 적막이 다시 우리 사이를 채우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발 소리도 네발의 소리가 들리건만 어째서인지 자꾸 혼자 걷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때마침 그도 그랬는지 이번에도 한숨과 함께 한마디를 내뱉었다.



“후..이럴 때 술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술을 입에 털어 넣듯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내 보는게 어때요? 무엇이 그렇게 힘들어요?”


“…”



위로와 공감을 가장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한 질문에 그는 갑작스레 침묵했다. 역시나 처음 본 사람에게 본인의 힘든 점을 말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무엇이 그렇게 힘드냐는 이야기가 고깝게 들렸을까. 힘든 사람에게 무엇이 그렇게 힘드냐고 물어 본다면 상대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었다. 섣불리 물어본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그에게 말을 건넸다.



“ 아. 미안합니다. 지금 같은 처지니까 조금 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요. 지금은 같은 처치라 칩시다. 그럼 이길에서 벗어나면요? 이 끝없는 안개 지옥에서 벗어나서 각자 사는 집에 들어가면 어차피 다른 처지니까 그래요? 본인은 지금 안힘드니까 남의 힘듦은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들어주면 내가 좀 나아질거라 생각하면서?”


“미안해요..”



의도하지 않은 반응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내심 어찌 이리 사람이 꼬일 수있는지 되려 화가나기 시작했다. 세상 사는게 본인만 힘든가 다 각자의 자리에서 힘든일이 있는거지. 나는 그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그와 걸어가는 발걸음의 수가 늘어날 수록 나의 숨소리는 분노로 점점 거칠어져만 갔다. 바로 옆에서 함께 걷던 그가 보이지는 않더라도 나의 그러한 심경 변화를 알아채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온통 적막만이 가득한 세상의 가운데 아까부터 들리던 소리는 우리의 발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이야기 소리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어색하고도 불편한 걸음이 계속되었고 불만 섞인 숨소리와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자 그가 한발 물러섰다.



“어차피 이야기 해봤자 모를거에요.”


“됐어요.어차피 궁금하지도 않아요.”



잔뜩 성이난 나는 그의 이야기에 한껏 뾰루퉁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는 궁금하지 않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누군가의 호의를 받는게 익숙하지가 않아서..저는 호의를 받는 것 보다 베푸는게 더 익숙한 사람이라서요.”


“그럼 아까 제가 호의를 베풀어 물었을 때 그 반응은 뭔가요? 본인은 남을 무시하거나 시덥지 않은 배려를 하기 위해서 호의를 베푸는 건가요?”



나는 그를 더욱 다그쳤다. 그러나 내심 양심의 한켠이 불편하다. 나도 온전한 호의로 그에게 상황을 이야기 해 보라고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의 상태를 진정으로 걱정했다기 보다는 우리가 걷고 있는 이 한치 앞도 안보이는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을 덜기위한 목적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내 멋대로 나의 거짓된 배려에 대한 죄책감과 그의 부정적인 태도에 대한 분노를 상쇄시키기로 했다. 그는 알 턱이 없지만 멋쩍어진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쳤다.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찍으며 말했다.



“이야기 해 봐요”


“요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더라구요. 인간관계에서 늘 손해만 보는 것은 제 쪽인 것 같고. 도통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관계가 어떤 것 같아요?”


“늘 반복 되는 것 같아요. 서로 해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배려 하면서 지내면 좋다고 생각 했는데. 다들 그렇지 않나봐요. 배려를 하면 어느덧 그 배려가 당연해 지고. 더 나아가서는 배려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타인에게 최선을 다해 배려하려고 하는 건가요?”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점점더 그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 졌다. 정확히는 뒷 사건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배려를 하는 이유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나갔고 그는 답하는데 재미가 들렸는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 나갔다.



“사실 언제 부터인지 모르겠어요. 음 그러니까 저는…”



갑작스레 본인의 마음을 터 놓는 것이 어색했는지 그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정리하지 않고 뱉어진 말을 듣는다면 정리해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니 그가 정리할 때까지 시간을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의 정리하는 시간과 함께 우리는 여전히 걸음을 옮겼다.


몇 분이 지나자 걷힐 기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주변의 안개가 조금은 옅어졌다. 아까는 코앞도 보이지 않더니 팔꿈치에서 어깨까지는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가 말을 이었다.



“어릴 때 부터였던 것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집안이 좀 엄한 편이었어요. 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 늘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게 다예요?”


“그 뿐만 아니라 남동생과 여동생에겐 늘 모범을 보여야 했어요. 양보를 하는 것은 오빠와 형으로써 당연했어요. 비단 가족 관계 뿐만이 아니었죠. 학교에서도 그랬고 학원에서도 그랬고 늘 양보하는 배려심을 종용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야 다툼이 발생 했을때 덜 혼나거나 칭찬을 받았거든요”


“그러면 지금은 베푸는 배려나 양보도 다 칭찬을 받기 위한 것인가요?”


“…”



그의 목소리가 다시 멈추었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그가 혼란스럽다는 듯이 말을 꺼낸다.



“지금 생각 해 보니 어쩌면 제가 한 것은 배려가 아닐 수도 있겠어요.”


“무슨 그런 애매한 말이 다 있어요? 배려면 배려고 아니면 아니지.”


“그러니까 배려는 명목적으로 하는 말일 뿐이고 사실은 스스로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양보하는 행동을 했다는 거죠.”


“…”


“이봐요 그렇게 이해 안된다는 듯하게 침묵하지 말아요. 이런거죠. 양보하는 습관이 어릴 때 부터 길들여 졌고 양보 했을 때에 타인이 즐거워하거나 칭찬해 주는 것에 대한 인정욕구가 생각보다 커져버린 것 같아요. 그러니 양보를 받는 이들이 나의 행동을 배려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인정의 언어들을 나에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인 거죠.”


“그렇다면 결국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아니라 스스로를 희생하는 양보가 문제네요.”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그에게 문제점을 되새겨 주었다. 이제 갓 본인의 상처를 들여다본 그에게 한번 더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불편함이 찾아 들었지만 남일같지 않았기 때문에. 더는 그가 남에게 스스로를 희생하는 양보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주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서운함을 느끼고 주저앉을 것이 너무나도 뻔했으니까.



“그렇죠. 그렇네요. 양보하지 않고 갈등이 생기는 그 과정에서 양보못한 스스로의 탓이라 느끼는 것 역시 지금까지 큰 몫을 한 것 같네요. 아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져요. 남들과 갈등을 일으키느니 차라리 양보하자. 아쉬운 소리를 들을 바에는 나를 희생하자는 생각이 든 이유들이요!”



자욱했던 안개가 다 사라져 버린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내 눈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더벅머리. 안경을 쓴 눈. 코 위에 점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의 모습에서는 이질감 하나 없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아침마다 거울에서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는 무엇인가 나에게 웃으며 말하려 했지만 더이상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몸은 의자에 앉혀 있었다. 그리고는 거의 비워버린 위스키 한병만이 비어있는 책상 위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술김에 떨어 뜨린 듯한 위스키의 술잔이 바닥에 산산조각 나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몸을 일으킨다. 안개속 거리를 함께 거닐던 그에게서 나던 술에 찌든 냄새와 같은 냄새가 난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 남은 위스키를 다시 입에 댈까 고민해 본다. 그러나 이미 따라마실 잔도 깨져 버렸다는 사실에 흥도 깨져버렸다. 무엇보다 술을 마실 이유도 없어졌다. 술에 찌들었던 안개 속 그가 알았으니 이제 나도 알았다. 그러니 남은 위스키는 변기에 붓고 깨어져 버린 유리와 빈병은 쓰레기통으로 넣어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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