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9 화요일
오늘의 날씨는 제법 가을 같았다. 겁도 없이 반팔에 얇은 코트를 입은 나의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몇일간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던 가을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거리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을을 만끽하는 옷차림이다. 트렌치코트, 스카프, 롱 가디건… 쌀쌀함을 즐기는 이들은 지하철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맞이하는 가을바람에 잠시 웅크리지만 이내 옷깃을 여미고 웃으며 온전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다들 잃어 버릴 때가 되어서야 가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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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간 수업을 나갈때면 늘 800페이지의 책을 들고 집을 나선다. 지하철에서 이동하며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여지없이 가지고 나왔다. 오늘은 왠지 웹툰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왼손에는 책을, 오른손에는 웹툰을 켰다. 등 뒤엔 분명 책이 들어가고도 남을 넉넉할 가방을 메고 있으면서도 굳이 책을 들고 플랫폼에 들어섰다. 폰을 들고 고개를 내려보자 가증스런 스스로의 모습이 보인다.
책을 넣지 않은 이유는 분명했다. 가방에 넣기 귀찮아 그랬다는 변명은 할 수가 없다.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정리 할 때 부터 웹툰을 보며 집에 가기로 했으니까. 그저 대학 신입생의 시절 전공 서적을 들고다니던 때와 마찬가지로 책 읽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허영심을 부리고 싶었으리라. 모두가 폰을 보는 지하철에서 나는 적어도 책을 읽을 줄은 아는 사람이라고 그 소리없는 외침을 보이고 싶었나 보다. 이런 마음이 부끄러운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싶었나 보다’ 라는 서술은 책임을 회피하기 딱 좋은 문장 이니 ‘싶었다’ 라는 보다 사실적인 서술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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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라 그런지 목이 좋지 않아 호올스를 두개 정도 입에 넣은 채 지하철에 올랐다. 텅 비어있던 지하철에 사람들이 차기 시작했고 내 옆에도 누군가들이 앉았다. 반 정거장 정도를 지났을 때 호올스의 그 청량함을 머금은 침을 잘못 삼키어졌다. 목이 간지러워 지고 재채기가 나올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온갖 힘을 써서 참았다. 누군지 모를 누군가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새어나오는 몇번의 기침까지 멎게 할 수는 없었다.
“저 코로나 아니에요. 사탕을 잘못 먹었어요.”
외치고 싶었다. 참으로 구질구질하고 볼품없는 변명이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 역시 참아냈다. 나는 이름도 목소리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최선을 하고 있었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침 한 두번을 뱉어냈어도 삼켜낸 수십번의 기침에 나의 얼굴엔 열이 올라왔고 머리는 충분히 지끈거리었다. 그러니 이 정도의 노력과 배려는 낯선이에게 베푸는 매너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