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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Oct 16. 2021

2021.10.16. 토요일

기록 11일 차


 2021.10.16 토요일




  마주치는 모든 아이들이 나에게 말하고 지나간다. 오늘 왜이렇게 피곤해 보이냐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더욱 피곤에 쩔어보이게 만들어 한없이 볼품 없어진다. 아이들 앞에서 늘 밝은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텐션 자체가 떨어져 있으면 아이들도 같이 텐션이 떨어지기 마련이라 그냥 이런날도 있겠거니 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영 불편하다. 그러니 애써 처진 눈꼬리에 웃는 입꼬리를 만들어 어떻게든 괜찮은 모습을 만드려 노력해 보았다. 애석히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나의 모든 노력은 무용 지물이었을 테고 웃음에 대한 노력의 댓가는 조금 더 처지는 눈꼬리로 돌아와 시간이 지날 수록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다 백신을 맞고 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내가 늦게 잠들었다 해도 백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1차 백신을 맞은 일주일간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온갖 부작용에 대한 소문들이 들려와 이러다 정말 소장이 썩고 심장이 멎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다행히 소장이 썩지도, 심장이 멎지도 않았지만 편두통은 아직까지도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힌다. 조금만 신경 쓰일 일이 생기면 예민이 중간즈음에 올라오자마자 분출 할 틈도 없이 편두통이 일어난다. 오늘도 그랬다. 조금의 스트레스는 삽시간에 왼쪽 뒤통수를 콕콕 찔러대는 편두통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시간. 멍하니 기력하나 없는 산 송장의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아이들 뒤로 버티고 있는 그 공허한 공간을 응시한다. 정확히는 응시라고 할 수 없는 허공에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빛을 보낸다. 마주치는 사물도 돌아오는 눈빛도 없지만 그저 그렇게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허한 눈빛을 뿌려댄다. 그러다 이내 눈꺼풀이 기어이 감겨오면 몸에 대한 제어를 스스로 할 수 없는 지경임을 인지하고 공허의 눈빛을 거두어 들인다. 아, 오늘 나는 산송장의 기분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바닥과 같은 컨디션으로 돌아와 지금은 소파의 산송장이 되어 있다.


- - -


  


  최근 글을 적으며 드는 아쉬운 생각들이 있다. 나름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있어서 보는이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 아직 완독하지 못한 ‘불안의 서’에는 이런 나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마음에 와 닿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문법에 얽매여 글을 적을 때 나는 나의 표현이 오히려 제약을 받는 듯 하다’


  가만보면 시에서 사용 된 시적 허용이나 예전의 산문들이 가지고 있는 옛스런 문법의 문장들이 되려 감정이 잘 전달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책을 좀 읽는 다는 사람들이 고전을 많이 읽을 지도 모르겠다. 삶이 대한 지혜가 담겨 많이 읽을 수도 있지만 고전 안에 들어있는 그 수려하고도 완곡한 표현 속의 재치란 현대의 문법에 얽매인 지금은 따라가기 힘들지 않을까.


  나의 감정을 누군가들에게 전달하는데 있어서 굳이 문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겠다는 위안을 받고 나니 보다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진 것 같아 글쓰기가 설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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