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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Mar 28. 2022

우리는 그렇게 행복을 찾아

아침 세미나가 있어 참석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전날 ‘일상 속 행복’이라는 주제를 전달 받았던 터라 오늘의 세미나는 30여명의 인원들이 모두 각자의 행복감을 느끼는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테다. 다행스럽게도 평소 행복감이 어디서 찾아오는지에 대해 간간히 생각하는 편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은 주제이긴 하지만 삶에 있어서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도 않게 느껴진다.​


서로의 안부의 인사를 묻는 것으로 세미나가 시작된다. 비록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 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남들에 앞서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편인 나는 중간정도의 순서에서 발표 하겠노라 다짐을 하며 귀를 쫑긋 세우기 시작했다. 세미나의 주제에서 알 수 있듯 참석자는 모두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많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잘 익은 삶들. 굴곡이 있는 삶의 사이사이에서 찾아내어온 것들이 궁금했다.​


삶의 과정은 모두 다 다르겠지만 행복감을 주는 것들은 비슷하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맛있다는 표현을 해줄 때, 매일매일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할 때 등등. 그들 보다 삶의 연륜이 결코 깊지는 않지만 비슷한 맥락이다. 모두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자 나도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한 명, 두 명, 세 명의 발표가 지나가고 한 중년 남성의 차례가 찾아 왔다. 굉장히 점잖은 외양을 가진 그는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더 많았고 주름살들이 곱게 잡혀 있어 인자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이야기들을 담다하게 풀어갈지 내심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오감이 그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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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깨끗하게 솔질하고 난 후 씻기 위해 들어갔을때 모든 쇠붙이에서 빛이 번쩍번쩍 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

그렇게 곱고도 잔잔한 목소리를 가진 그가 뱉어내는 행복한 일상의 내용에 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연달아 터지는 웃음들 때문에 줌 화면에 수십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물론 그 중에는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이내 웃음이 잦아 들고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 시작했다.​


일전에 과탄산소다를 이용하여 수도꼭지를 비롯한 화장실 청소를 하며 뿌듯해 했던 스스로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묵은 때가 벗겨져 흰 줄눈이 본연의 색을 되 찾고,  잃어버린 광택을 되찾은 수도꼭지를 보며 수도 없이 자랑을 늘어 놓던 그 모습이 말이다. 비록 나에게 일상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말하는 행복감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는 지레 짐작이 간다.

그로 부터 몇 사람의 차례가 지나가고 더이상 늦춰지면 안될 것 같은 마음에 손을 들어 발표를 청했다. 자신감이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하게 들고 있는 화면 속 나의 이름이 호명된다. 마스크를 쓴 덕에 멋쩍은 표정을 감춘 채 발표를 시작했다.

​​


“제 삶에 있어 행복은 저녁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 됩니다. 평소…”

​​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의 발표가 끝이 났다. 생각해 놓은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주욱 읊어나간 발표가 끝나자 공감하는 몇몇의 표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감할 수 있는 몇이라도 있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하루의 일상을 정신 없이 보내고 그나마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먹는 시간을 제하고는 얼마 없다는 공감 섞인 푸념들이 들려온다. 그러나 이내 다른 이들의 행복감에 대한 설명에 푸념들은 잠잠해져 갔고 행복감을 주는 다른 소재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화제가 전환 되었다.

2시간 가량의 세미나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말 아침에 헛되이 시간을 사용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올 무렵 마음을 울리는 마무리 멘트가 들려온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던 것들을 돌아 보세요. 어떠한 결과에 의한 행복감이 찾아 왔다기 보다는 과정 자체가 행복했을 겁니다.”​


마무리 멘트로 인해 잠시 넋을 잃어버렸다. 줌을 끄는 것도 잊은채. 아무도 남지 않은 그 빈 줌 회의방에서 홀로 상념에 잠긴다. 그리고는 다시금 마무리 멘트를 곱씹어 보기 시작한다. 발표했던 대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살피는 것에 행복감이 찾아 온 것은 맞다. 그 행위가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음식을 하는것 조차 행복감이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한 것들을 이어가는 과정 끝에서 더 큰 행복을 찾으리라는 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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