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가을 "건축과 인연"
이번 호를 작업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건 인연이라는 단어의 영문 표현을 고르는 일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이유로 한국에서 쓰이는 단어엔 불교적 표현이 엄청 많은데, 인연도 그중 하나입니다. 본디 ‘원인이 되는 결과의 과정’, 그러니까 인과의 흐름만을 뜻해 흔히 말하는 ‘우리가 모를 뿐이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도로 무덤덤한 표현입니다. 어떤 사건과 결과엔 의도가 없으니 애쓰고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이어지기도 하고요.
물론 지금의 인연은 조금 다르게 쓰입니다. ‘전생의 인연이 닿았다.’ 같은 표현에서 인과의 존재보단 운명적인 만남, 혹은 관계의 이어짐에 더 뜻이 실리기 시작한 거죠. 그 결과 우리는 사람 사이에 맺어진 관계 혹은 그로 인해 지속된 만남을 인연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언뜻 추상적이고 교훈적인 단어가 어느새 로맨틱하고 멋들어진 표현이 되었습니다.
기원에서 추론할 수 있듯, 인연이 꼭 사람 사이에만 쓸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맨날 잃어버리지만 어떻게든 다시 찾아내는 낡은 지갑과도 지독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다 보니 각자 다른 실이 중간에 만나 매듭을 짓고 이어지며 계속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미지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붉은 실 설화에 끌린 까닭도 있겠죠.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매듭의 영어 표현인 ‘tie’를 이번 ‘건축과 인연’의 영문명으로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사전에 등재된 영문 표현 중 하나이기도 했고, 아무 힌트 없이 잡담러들에게 번역명 추천을 받을 때 가장 많이 선택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모두가 은연중에 가진 공감대 때문이겠죠.
이번 가을호에서 잡담러들은 저마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과 인연’을 풀어냈습니다. 다분히 개인적인 장소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고, 건축을 전공하며 생기는 인연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드디어 길었던 폭염이 끝나고, 어느덧 선선해진 바람을 맞을 때 떠오르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잡담]을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link.tumblbug.com/G4ZCJA5zT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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