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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May 22. 2022

사진잡담 : 서울시청, 돈의문 박물관

9호_건축과 성냥_일상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I

게재 : Vol.9 건축과 성냥, 2019년 가을

 

 

서울시청: 디자인 논란


I: 저번 학기 '건축의장'이라는 과목에서 우리 팀플 주제가 서울시청이었어. 나는 파사드나 매스 디자인에는 크게 불만 없는 편이지만 저 사마귀 눈만큼은 정말…… 별로야. 유리인 줄 알았는데 심지어 재질도 달라.


Y: 지나다니면서 사마귀 눈이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묘해. 원설계자는 한국의 처마 곡선을 재해석한 매스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여? 어쨌든 듣는 소리는 "거대한 곤충이다, 쓰나미 같다"라는 말들이잖아. 사용자나 건물 옆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면 의도는 소용이 없지.


I: 팀플 자료 조사하면서 초기 디자인 안을 봤는데, 컨셉이 좀 다르더라. 지금은 한 덩어리인 하늘광장은 원래 둥그런 매스 세 개가 공중에 풍선처럼 떠 있는 형태였어. 덕분에 그 매스가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부분도 비교적 자연스러운 느낌이었고. 물론 그림이랑 실제 건축물은 또 달라졌겠지만. 그걸 보고 나니 시공사에서 디자인 원안을 수정할 때 기존의 방식(design method)을 그대로 따올 게 아니라 수정안에 어울리도록 다듬었다면 사마귀 눈도 조금은 보기 좋아졌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과연 있었을까….



서울시청: 내부공간


Y: 내부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꽤 괜찮았어. 유리를 통과해 투명하고 따뜻하게 들어오는 햇빛이나 주변 수목들 덕분에 온실처럼 느껴졌거든.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고 하지만, 뭐. 도시 한복판의 유리 파사드가 이질적인 만큼 특별해 보이긴 해.


I: 외부가 비판받는 것에 비해서 내부 공간은 공을 많이 들였다는 생각이 들어. 1층 로비부터 8층 하늘광장 바닥까지가 뻥 뚫려 있는데, 건물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게 탁 트인 보이드(void)라 꽤 인상적인 느낌을 줘. 개인적으론 이때 시선의 끝이 미치는 하늘광장 바닥 면 마감이 좀 더 세련됐다면 시각적으로 훨씬 좋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나선 계단인데 계단의 아랫부분을 조그만 서점으로 만들어서 센스 있게 조화시켰어. 나선 계단이 휘감는 보이드를 여유 있게 만들어서 계단실 자체가 지하층의 천창 역할을 하기도 해. 지하층 전체적으로 보면 가운데에 있어서 1층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공간에 좋은 느낌을 주더라고. 그림자도 멋있게 고이고.


Y: 확실히 빛이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 빛이 드는 방향이나 빛이 고일 재질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거겠지. 이런 걸 보면 고층 빌딩 위주인 도시 한복판에 이질적인 건물을 떨어뜨려 놓은 건축가의 의도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하늘광장 2층에 있는 카페 공간도 좋더라. 특별한 공간을 누리는 느낌이었어.


I: 난 카페 자체는 위치적 이점을 많이 활용하지 못한 듯해 아쉬웠어. 밖이 잘 안 보이거든. 거대한 매스 가운데 9층 높이에 떠 있는 공간인데 유리 파사드를 통해 바깥 풍경이 잘 보였다면 얼마나 멋있었겠어! 그래도 집 근처에 이런 공공공간이 있다면 기분 내킬 때 노트 챙겨서 나오기엔 좋을 거야. 카페 테이블만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도 꽤 마련되어 있어. 밖이 잘 안 보이더라도 거대한 구조부재가 햇빛을 역광으로 받는 모습은, 어쨌든, 특별한 감흥을 줘.


Y: 시청과 비슷한 예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떠올랐어. DDP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의 손에서 태어났지만 온갖 혹평을 받았었잖아. "동대문 한복판에 떨어진 UFO 같다"는 말을 듣던 때에 비해 지금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었지. 서울패션위크, 전시회, 플리마켓 등 DDP를 배경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꾸준히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한 결과 계속해서 찾아가고 싶은 장소로 변화한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시청도, 시민들이 우리가 얘기했던 시청의 좋은 공간들을 경험하고 쓰나미 모양 파사드나 사마귀 눈 같은 매스 디자인 외에도 좋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앞으로 오래 사랑받는 건축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Y: 해외를 가 봐도, 국내에서 비교해 봐도 서울만큼 다양한 모습을 가진 도시는 흔치 않다고 생각해. 여행을 가서 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높게 들어선 고층 건물들 사이로 열대의 나무들과 모노레일이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였어. 이 도시를 보고 딱 떠오른 생각이 뭔지 알아? "한국의 서울만큼이나 이상한 도시구나!" 서울도 스카이라인에는 마천루들이 늘어서 있지만 북쪽으로는 낮은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기도 하고, 높은 빌딩들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이 이상하게 안 어울리면서도 어우러지는 도시잖아.


 사진 속 풍선들 사이로 보이는 유리로 된 현대·근대식 건물,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도시의 풍경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외국인들, 우리나라의 찬란했던, 그리고 아픈 역사의 흔적들…. 이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공존하는 이곳을 보고 있자니 내가 있는 여기는 어디지? 싶어 기분이 이상해.



서울이라는 도시


I: 나는 고유의 아이덴티티 없이 무질서하고 무개성하게 복잡하기만 하다고 생각해서 서울을 별로 안 좋아했었어. 그런데 <레인 월드(Rain World)>라는 게임의 제작자가 게임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서울을 언급하더라고. 다층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살았던 경험이 영감이 되었다고. (이 게임의 필드도 미로 같은 맵이 몇 겹씩 겹쳐 쌓여 있어.)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서울이 조금 좋아진 것 같아. 아파트와 판자촌이 맞닿아 있고 빌라 단지 사이에 한옥이 듬성듬성 있는 도시의 모습이 그 자체로 아이덴티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홍콩 밤거리에 제멋대로 튀어나와 있는 가지각색의 간판들이 그 도시의 얼굴이 된 것처럼.


Y: 빌라촌 뒤로 한옥들이, 저 너머로는 마천루로 이뤄진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곳이지. 확실히 이게 서울이라는 도시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이번 비엔날레 도시전 장소여서 가 봤는데, 서울만이 주는 분위기와 공간이 잘 느껴지는 곳이었어. 이런 이벤트들 또한 서울에 색다른 분위기를 부여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이 도시를 좀 더 풍족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듯해.


I: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이런 서울의 곳곳을 배경으로 열린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 여기저기서 배너 걸고 홍보하고 하니 정말 도시 전체의 축제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2017년 1회 비엔날레 당시에는 새내기였는데, 9월 내내 프로그램을 챙기느라 서울을 헤집고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이 도시를 알기 시작했어. 너무 곳곳에 흩어져 있고 안내 책자도 가독성보다는 디자인을 신경 쓴 듯해 일정 정리하기가 좀 힘들긴 했지만.



일회성 공간?


Y: # SNS_핫플, 맛집, 감성카페, 레트로. '요즘 청년들'의 키워드를 정리해 보자면 이 정도?


I: 정말 별로야.


Y: 이제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 수요와 공급이 엄청나고 그만큼 다양한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어. 요새는 레트로 열풍으로 좁은 골목길과 옛날식 건물들이 있는 장소가 뜨고 있어.


 하지만 새롭게 뜨는 곳이 있다면 지는 곳도 있겠지. 관광객들과 젊은 사람들로 매번 붐비던 장소가 이제는 발길이 끊기고 상권이 죽어가는 곳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보여. 이런 걸 보면서 과연 일회용품처럼 한 동네를, 공간을 반짝 소비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싶었어. 네덜란드 친구는 반대로 이런 서울의 풍경이 재미있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대. 유럽의 경우에는 한 번 꽃집이 생기면 대개 10년은 그 자리에 꽃집으로 남아있어.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유행에 맞춰 공간이 빠르게 바뀌는 현상이 흥미롭다고 하더라. 그때그때 가 보면 달라져 있는 공간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I: 예술계에서는 건축이 가장 늦게 변화하는 분야라고 말하는데, 한국은 공간과 건축마저도 '빨리빨리' 당했네. 확실히 이제는 도시의 많은 요소가—도시 자체도 이미지로 환원되고 또 소비되는 것 같아. 이런 흐름 속에서 공간이 영속성을 갖고 그 자체로서 새로운 이미지가 되기는 힘들지, 유럽의 10년 된 고즈넉한 꽃집처럼.


 유행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것 또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속성 중 하나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플래시가 터지듯 빠르게 바뀌는 공간, 이미지, 도시. 이 자체가 서울의 풍경이라면. 그렇다면 나 같은 아날로그 사람이 할 일은 좋아하는 공간의 좋아했던 순간을 늦지 않게 기록하는 것이겠네.



도판출처

사진제공 | 프로잡담러 Y 안지연  

 




WRITTEN BY

프로잡담러 I |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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