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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Dec 17. 2022

건축가의 탕비실에서 건축가를 만나다

10호_건축과 피크닉_특별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Z

게재 : Vol.10 건축과 피크닉, 2020년 봄

 

 

용산구의 한 재개발구역에서 건축가의 탕비실이 생겼다. 세 명의 소장이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이자 카페인 3F/LOBBY다. 용산역을 나와 높은 건물들을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서면 서울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난 소박한 동네가 시작된다. 아리송한 마음을 품고 ‘숙이네’, ‘시골집’을 지나쳐 걷다 보면 반짝거리는 입간판을 갑자기 마주하게 된다. 서울의 중심에서 서울답지 않은, 그러나 어쩌면 가장 서울다운 동네에서 세 명의 건축가를 만나봤다.


왼쪽부터 안종훈(이하 안), 김동현(이하 현), 김수영(이하 영) 소장. 사진제공 | LOBBYST


Q. 세 분은 어떤 관계이신가요? 

현: 저희는 세 명 전부 5-6년 차의 건축가입니다. 원래는 각자 다른 사무실에서 각각 단독 주택, 리조트와 주상 복합, 고층 건물을 주로 설계했었어요. 지금은 세 명이 각각 개인 사업자가 있는 소장이고, 하나의 법인으로 세 사무소가 묶여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로비스트 법인 안에 사업자가 3개 있는 것이죠. 


Q. 왜 카페를 같이 시작하게 되셨나요? 

안: 음…….  되게 복합적이에요. 우선은 월세 같은 고정 비용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한동안은 우리가 독립해서 사무실을 차리면 건축주를 쉽게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것에 집중했어요. 공간을 마련해서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혼자하게 될 때의 어려움을 고민하던 와중에 세 명이 모이게 되엇어요. 아무래도 여러 가지 것들이 숙성되고 때를 만나면서 이루어진 것 같아요. 사실 카페와 사무소를 같이하는 경우는 선배 대에서부터 종종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리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죠. 


현: 맞아요. 그런데 제가 방문했던 경험에서는 건축사 사무소와 카페를 같이 운영하는 경우에 어느 정도 물리적 거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2층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1층은 카페로, 2층은 사무소로 이용한다든가. 우리처럼 이렇게 직접적으로 딱 보이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이 좁은 공간에서 카페 공간을 최대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더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요. 사실 저희는 사람이 없어도 사무실 조명을 켜놓으려고 해요.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죠. 평일에는 정말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말에는 비어 있는 사무실을 보며 상상할 수 있어요. 



Q. 사무소 이름이 LOBBYST, 카페 이름이 3F/LOBBY에요. 왜 LOBBY를 컨셉으로 정했는지 궁금해요. 

현 : 보통 로비에서는 되게 많은 일이 일어나죠. 종종 업무의 연장도 이루어지고, 누군가는 쉬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만나는 장소로서 기능한다는 것에서 되게 다양한 이야기가 일어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사무실 한편에 카페가 있는 것이니 업무의 연장이 이루어진다고도 볼 수 있겠고, 건축주와 미팅도 할 수 있을 거고요. 또 모든 사람이 로비처럼 이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기를 바랐어요. 결국 세 명이 상상했던 것은 3F/LOBBY가 열려 있는 공간으로서 사람들에게 기능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서 사무실의 분주함과 카페의 느긋함의 경계를 깨고 섞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죠. 


Q. ‘건축가의 탕비실’이라는 부제, 3F/LOBBY, LOBBYST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요? 

안 : 처음부터 ‘건축가들의 탕비실’이라는 컨셉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고요, 시공이 끝나고 나니까 “우리 그런데 탕비실이 너무 고급스럽고 사무실이 너무 허접하다”, “우리는 고급스러운 탕비실을 가지고 있다”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부제로 쓰게 되었어요. 


영 : 3F/는 부동산을 찾고, 로비라는 컨셉을 만들고 나서 넣었어요. 저희가 모종의 이유로 3층에 자리 잡게 되었거든요. 보통 현판에 1층에 뭐 있고, 2층에 뭐 있고 이런 게 쓰여 있잖아요? 그런데 3층에 로비가 쓰여 있으면 되게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카페 이름에도 층수를 넣은 거죠. 또 한편으로는 ‘/’ 기호 자체의 의미가 ‘쉼’이에요. 그래서 쉬면서 머물다 가라는 뜻도 있었고요. 한편으로는 건축적인 표현 방법이 이름과 로고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안 : 또 ‘LOBBYST’라는 워딩이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만들잖아요. ST를 붙여서 일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고, ST가 스튜디오가 될 수도 있겠고요. 맨 처음에는 로비에서 일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만들었어요. 우선 카페 이름이 정해진 후에 붙인 거죠. 


Q: 부동산을 알아볼 때는 어떤 기준이 있으셨나요? 

안 : 처음에 우리가 가용 가능한 예산으로 어떤 규모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을지 알아봤어요. 우리의 예산으로 1층에 들어가게 되면, 10평 정도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사실은 10평도 쉽지 않았죠. 그런데 2층이나 3층으로 올라가면 같은 예산에서 면적이 2배, 3배로 늘어났어요. 계단을 올라가며 생기는 공간을 재미있게 이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절약되는 비용을 마케팅에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 : 세 명의 집에서 이르는 거리를 생각해서 용산으로 오게 되었어요. 후보지는 을지로, 옥수동, 충무로와 이곳이었죠. 


영 : 여기는 재개발지역이에요. 재개발 조합도 이미 설립되었죠. 정말 빠르면 5, 6년 안에, 결국 언젠가는 다 허물어질 거에요. 보통 이런 곳에 미래가 정해져 있어서 월세가 싸거든요. 


함석 커피 테이블, 사진제공 | LOBBYST


Q. 여기 있는 가구들은 어떻게 고르신 건가요? 

현 : 셋이 함께 골랐어요. 로비에서 쓸 법한 가구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래서 비례감, 높낮이, 넓이는 가져오되 밝은 톤의 색갈로 골랐어요.

 

안 : 사실 여기가 층고도 높지 않고, 평면도 크지 않아요. 그래서 넓어 보이고 답답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 밝은 톤을 쓴 것도 있어요. 또 커피를 내리는 테이블은 로비의 리셉션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축 외장으로 가장 잘 쓰이는 돌이면서도 무게감을 줄 수 있는 함석을 이용했죠. 


영 : 그렇지만 로비의 느낌을 단순히 모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현: 로비가 원래 살짝 무거운 느낌이 있죠. 그런데 카페는 너무 무겁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트렌드도 따라가야 했죠. 그래서 밝게, 햇살이랑 잘 어울리게. 


안 : 우리가 로비 생각했을 때, 긴장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사무실보다는 조금 느슨해야 한다. 뭐 그런 것들. 높이가 낮고 기댈 수 있는 가구가 있으면 그런 느낌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또, 재질은 다양하게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Q. 소품들도 건축가 느낌을 내기 위해서 놓인 것인가요? 

현 : 당연하죠, 뭔가 은근하게, 보면 재밌게. 건축가의 느낌. 


영: 사실 일반인들은 스케일 자 같은 게 건축하는 사람들이 쓰는 거인 줄 모를걸요? 아닌가. 아는 사람들은 피식할 수 있고요. 


현 : 도자기는 우리 아는 스님이 기운을 막 넣어서 주신 거예요. 


영: 6, 70년대 건축사무소에 무조건 저런 도자기 있지 않았나요. 


안 : 난이랑


현 : 난 저거 좋은데. 무게감을 주잖아. (웃음) 엑소노 메트릭은 우리가 오픈할 즈음에 학교에 크리틱을 하러 다녀왔는데, 1학년들이 해 놓은 것을 보고 너무 예뻐서 장당 5천 원에 사 온 거에요. 콘타는 만원. 후배들한테 삥 뜯어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어차피 버릴 거라며 엄청나게 좋아했죠. 


Q. 커피를 주문하면 카드를 주더라고요. 

안, 현, 영 : 네 맞아요. 커피마다 다른 카드. 


현 : 원두를 먹어보고 떠오르는 대중적인 건축물을 골라서 사진으로 넣은 거예요. 그러니까 커피의 맛과 어울리는 건축물이 들어있어요. 예가체프 마시니까 롱샹성당이 떠오르지 않나요? 


안 : 어떻게 연결된 거냐 하면, 케냐는 바디감이 좋고 묵직한 느낌으로, 맞이 굉장히 풍부해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평면을 보면 단조롭고 선이 굵잖아요. 근데 막상 가서 보면 공간감이 풍부하죠. 그래서 연결되었고, 예가체프는 산미가 있으면서 맛이 날카롭고 섬세해요. 롱샹성당에 빛이 들어올 때 보면 그 표현이 굉장히 섬세하고 다채롭잖아요. 그래서 연결했고요. 콜롬비아는 부드러운 커피의 대표주자인데, 구겐하임 미술관과 곡선과 부드러운 공간감이 떠올라서 연결했어요. 


사진제공 | LOBBYST


Q. 되게 많은 분이 로비를 찾고 있어요. 바리스타로서의 삶과 건축가로서의 삶에서 어떻게 밸런스를 맞추고 계신가요? 

안 :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 주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지금은 저희 예상치의 5배 정도예요. 1년 정도 지나고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빠를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 했죠. 


현 : 세 명이 돌아가며 한 사람씩 카페 근무를 서요.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은 건축일을 해요. 카페가 쉬는 월요일이 세 명이 함께 건축일을 할 수 잇는 유일한 날이에요. 1주일간 각자의 일이 산발적이다 보니, 사실 월요일에 3명이 함께 건축일을 하기는 어려운 것 같고, 셋이 회의를 하거나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 짜고, 청소하고, 그렇게 보내요. 


안 : 그래도 프로젝트가 멈출 수는 없기 때문에, 한 프로젝트에 메인 과 서브 건축가를 한 명씩 배정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현 : 확실히 카페에서 수익이 받쳐주는 것은 좋지만, 집중도는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업무의 흐름이 계속 끊기고, 하루는 카페에 매달려야 하니까요. 장기적으로는 카페 자체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Q. 이 공간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또는 로비에 오기 위해 멀리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읽혔으면 좋겠나요? 

현 : 시내를 걸어보면 매력적인 상점들로 가득 차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옛날 동네이고,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는 동네예요. 역에서부터 걸어오면서 ‘없을 것 같은데?’ 하다가 되게 낡은 건물에, 낡은 복도를 올라왔을 때 이런 트렌디한 공간이 있는 그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으면 해요. 또 저는 욕심이 많아서, 이 공간이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간직되었으면 좋겠어요. 


영 : 저는 을지로와 성수동을 굉장히 좋아했었어요. 지금 이 동네를 보면 아직 그렇게 되려면 멀었지만, 옛날 을지로와 성수동의 느낌이 있어요. 젊은 감성으로 운영하려는 공간들이 막 생겨나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동네가 을지로나 성수동처럼 매력적인 거리로 조금씩 바뀌어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바뀜 속에 우리가 섞여 있었으면 좋겠고요. 이 동네 자체가 가진 정체성과 매력이 빛을 낼 수 잇기를 바라요. 


안 : 저는 이렇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제 생각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3F/LOBBY에 오셨던 손님들은 각자 다른 것들에 관심을 보였어요. 패키지에 관심 있는 분도,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분도, 바에 굉장히 흥미를 느끼는 분도 있었죠. 그래서 저는 이 공간과 활동이 마음껏 오역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든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꼭 주인공일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가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작은 바람이에요. 



세 명의 건축가, 혹은 바리스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처음으로 고민을 해보았다. 막연히 석사 유학을 가겠다는 나의 생각이 어쩌면 당장의 고민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새삼 나와 나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세 명의 건축가가 스튜디오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학교를 꽤 오래 다녔음에도 여전히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인지에 대해서는 단어 한 마디 뱉기도 망설여지는 요즘이다. 


“제 생각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라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유무형의 어떤 건축들에 대하여 비판적으로만 바라봤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건축가의 의도나 생각을 알아내려 애쓰고, 배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자동으로 눈이 감기며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창피한 내 생각들, 시도들, 노력들에 대하여. 


건축에 대하여 과한 상상력을 가지고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던 나의 모습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건축으로 행태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했다면, 지금부터는 더 나아가 건축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각자가 어떻게 방향을 바꾸어 갈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해본다. 좋은 건축과 나쁜 건축에 대한 생각의 경계를 허물고 건축의 입체성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LOBBYST 건축가들은 3F/LOBBY에서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생활하며 모두의 공간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건축가의 탕비실이자 누군가의 로비에서 오갔던 오늘의 대화를 기억하며, 우리의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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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잡담러 Z | P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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