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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Dec 25. 2022

건축이라는 단어

14호_건축과 설레임_특별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B

게재 : Vol.14 건축과 설레임, 2021년 봄

 

 

한자어를 사용하는 한자어 문화권, 동아시아권(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내, 외부의 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건축建築’이라고 말한다. 건축은 세울 건建과 지을 축築이라는두 한자가 붙어 만들어진 한자어인데 한자어의 뜻 그대로 무언가를 구축하여 만들어내는 일을 뜻한다. 한자의 모습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적어도 조선시대 이전부터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에 뚝 떨어졌을 때 네가 누구냐고 묻는 지방수령의 말에 建築 學生이라고 쓰면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을까? 아마 수령은 건축 학생이라는 당신의 말에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건축이 뭔가? 


한자문화권에서 ‘건축’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서양에서 사용되는 architecture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세계 최초의 건축가는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 피라미드를 설계한 Imhotep(임호테프)로 알려져 있다. 임호테프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건축자이자 공학자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그렇다고해서 임호테프가 최초의 Architect는 아니다. Architect라는 말을 건축가를 칭하는 명칭으로써 처음 사용한 건 그리스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The Historeis)에서부터이다. 그리스어로 teckton은 artistan, craftman, 즉 예술가나 조형가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에 ‘최고의’라는 접두어 archi가 만나 Architecton, Architect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Architect 라는 말이 등장하고 이내 이 단어는 조형 책임자(chief craftman), 건물 등 건설의 감독(superintendent in erection of buildings & others)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단어의 시작부터 teckton, 조형가로부터 시작하기에 서양에서는 건축가의 소양 중 조형적 능력을 상당히 중요하게 보았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는 7대 건축가로 크레타 섬의 미로를 만든 다이달로스, 파르테논 신전을 설계한 익티너스 등과 함께 도시설계가 디노크라테스와 군 공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를 꼽는다. 이는 처음 architect라는 말이 사용되었을 당시에는 건축과 도시설계, 공학의 영역이 분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무미건조한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 교수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넌 건축가가 되고 싶은 거니, 건축업자가 되고 싶은 거니?” 고대 그리스에도 건축업자를 가리키는 말이 있었다. Man making houses의 의미를 가진 Oikodomeo가 바로 그것인데 후술할 ‘건축’ 단어의 사용 계기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표현이다. 


 서양에서 architecture로 설명되는 현재 건축의 개념을 ‘건축’이고 부르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건축이 동아시아권에서 architecture의 번역어가 되기 전, 각 나라에서는 ‘공간을 만드는 일’을 서로 다른 용어로 소통하고 있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공간을 만드는 일은 영조營造라 불렀다. 경영할 영에 지을 조를 쓰는 이 단어는 무언가 짓는 일 전체를 경영하고 감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실 건축 설계만 생각해도 설계를 하는 일은 단순히 공간을 계획하고 구조를 짜고 시공을 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건축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을 널리 익히고 각 요소가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 또한 건축가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조는 하나의 건물을 만드는 마스터 플랜을 기획하는 건축가의 역할을 잘 설명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조가 造家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을 조에 집 가. 말그대로 집을 짓는 일이다. 造를 ‘무언가를 짓다’라는 의미로만 생각하면 조가가 집을 짓는다는 직관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造가 조형(造形)에도 사용되는 한자라는 것을 상기시키면 지을 조를 건조한 시공의 의미만으로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서양의 architecture로 해석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강민 교수의 대한건축학회 논문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 건축이 공식적인 용어로 자리잡은 것은 1897년 일본의 조가학회가 건축학회로 이름을 바꾼 지점으로 보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건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따라서 ‘건축’이라는 말은 해당 사건이 일어났을 즈음해서 만들어진 신조어라는 것이다. 


 앞서 조가에서 造의 의미가 어쩌면 공학적인, 건조한 구축의 의미로 읽히지만 조형에서도 같은 글자가 쓰인다는 점에서 미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말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에서 처음 조가를 건축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를 했을 때 펼쳐졌던 논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조가의 명칭을 서양의 architecture의 의미에 맞춰 명칭을 바꿔야한다는 주장을 펼친 이들은 造를 공학적인 글자로 보고 architecture가 담고자 하는 예술성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造의 대상을 미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실용적 공간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집(家)’으로 한정하면서 더욱이 조가가 공학적인 성격이 강하게 느껴지며 architect이 아닌 Oikodomeo의 영역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가’의 대체어로는 두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지을 조造가 아닌 다른 글자를 가지고 와 미적인 구축의 영역을 표현할 수 있을 것, 실용적 공간뿐만 아니라 기념비, 공원 건축 등 장식적인 공간들을 짓는 행위를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 그리하여 선택된 글자가 세울 건建과 지을 축築이며 다양한 성격의 공간을 포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지칭 대상을 지우기로 했다. 


 이후 일본 내에서 ‘건축’이라는 용어, 건축에 담긴 의미와 영역의 문제 등으로 여러 논의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조가도, 건축도 모두 아닌 단어들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일련의 과정 끝에 결국 ‘건축 建築’은 서양의 Architecture의 번역어로서 채택되었다. 일본에서 먼저 예부터 쓰이던 조가를 폐지하고 건축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당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이 사용하는 용어가 조선에도 들어오며 우리나라에서도 ‘영조’ 대신 건축이 ‘공간을 짓는 일’의 공용어가 되었다. 현재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建築이 공용어로 사용되는데 이들 국가들도 architecture 번역어를 가지고 와 사용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건축’이라는 ‘말’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와 건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경위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실 처음 대학교에 들어와 건축이 우리나라 고유의 표현은 아니고 일본식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건축’이 최소한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한자문화권에 존재하는 단어였고 서양에서 사용되는 architecture와 유사한 의미를 가졌기에 두 단어의 대응관계가 성립되어 자연스럽게 서로의 번역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번 글을 기획하고 자료를 탐색하면서 알게 된 건축의 유래는 상당히 충격에 가까웠다. 나름의 신조어라니.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단어라는 점에서 놀랐고 더불어 그 유래가 서양언어의 대체어를 찾기 위함이었다는 점에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지금까지 실용적인 공간만을 포함했던 건축의 범주를 넓혀 건축가의 영역을 확장시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그 의도에 동의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동양건축의 장식성, 미적 가치를 서양의 장식보다 뒤진다고 생각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태초부터 예술가의 의미를 담아 쓰이던 서양의 말이 예술적 가치가 더 높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기존에 쓰이던 말을 대체하여 만든 말 치고 세울 건建 과 지을 축築 두 글자에서 예술과 관련된 언어적 단서를 찾기 힘들지 않나. 


글자 자체의 의미 분석으로만 보았을 때는 오히려 지을 조를 사용한 영조, 조가 등의 말보다 더 공학적이고 구조적인 의미에 가까워진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원래 사용하던 단어를 지우고 좀 더 발전적인 의미를 담아 새로 사용할 단어를 찾은 만큼 원래 사용하던 단어의 좋은 의미는 가져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미 널리 통용적으로 사용하여 언어의 사회적 동의를 얻은 단어를 다시 고치기는 어려운 일이다. 대신 건축이라는 단어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그 이전에 사용하던 단어들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며 내가 취하고자하는 건축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WRITTEN BY

프로잡담러 B | N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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