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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Nov 28. 2022

하라던 설계는 안 하더니 - 잡담 동문 인터뷰 (2)

19호_건축과 여행_잡담의 잡담

*'하라던 설계는 안 하더니 - 잡담 동문 인터뷰(1)' 에서 이어집니다.




3. 설계 안 하는 동안 어땠나요?

T : 설계 대신 [잡담]이나 하게 된 사연에 대해 들어봤다. 그럼 ‘하라는 설계는 안 하고 [잡담]이나 하는 동안’ 얻은 경험에 대해 듣고 싶다.

I : 하고 싶은 건 다 쓰고, 마음대로 했다.

S : 만화를 그려서 싣기도 했다. 딱딱한 글이 아닌 콘텐츠도 의미를 갖고 기여할 수 있었다.

A : 특히 S의 만화는 대체할 수 없는 개성이 있었다.


T : (S의 작업물을 뒤져보다가) 여기 무지개가 많다.

I : 내용도 무지개다(‘향수 향수 가게 주인의 향수 향수와 형수 향수 형수 강매당한 썰’, [잡담] 5호 건축과 향수).


J : 모든 게 처음이었던 만큼 틀이 전혀 없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잡지를 만들었고, 부족하지만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할 기회가 많았다.




T : ‘잡담회’나 ‘무비나이뜨’는 처음부터 있던 [잡담]만의 콘텐츠인데, 그런 시도의 결과인가.

A : 우리 ‘잡담회’ 왜 했더라, 구독자 모으려고 했던 거 아니었나.

H1 : 홍보 겸.


A : 첫 ‘잡담회’를 서울역에서 장소를 빌려 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내용도 글도 정리가 안 되고 엉망이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왜 이렇게 썼을까 싶을 정도로. 건축학과에서 자기 과 사람하고만 얘기하다 보면 생각을 확장하기 어렵다. 현직자나 업계의 이슈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관심을 가진 분야가 있을 테니,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Z : ‘잡담회’는 정말 좋은 행사였다. 내가 진행했던 ‘잡담회’의 글은 아직도 더 많은 분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T : 찾아보니 전통 건축에 관한 내용이었다. “전통을 다루는 건 한국인만의 특권인가?”로 시작하는 발제가 인상적이다.

Z : 그 글엔 건축계에 통용되지 않을 비전문적인 어휘들이 많지만, 문제의식은 여전히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당시에 건축 전공이 아니었으니 이런 주제를 다룰 기회가 소중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해본 게 아니구나.’


A : 결국 끝나고 놀기 위한 구실 중 하나였지만, “너도 이런 얘기 하는 거 좋아해? 그럼 다음에 놀러 와” 같은 자리를 만들고 콘텐츠가 되는 과정이 의미 있지 않나. 잡지는 태생적으로 단방향 소통의 매체지만, 이런 자리를 만들면 양방향 소통을 구현할 수 있다. 우리만의 방법으로 커뮤니티를 활성화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Z : ‘잡담회’를 홍보하는 단계부터 건축을 최대한 쉽게 다루려 노력했다. 카드 뉴스의 문장도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썼다. 담론의 주제만큼은 쉬운지, 어려운지 따지는 것보단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를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접근성만큼은 최대한 높이려 했다.



J : ‘무비나이뜨’도 ‘잡담회’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T : “영화 보고 놀자, 근데 겸사겸사 건축 얘기도 좀 끼워 넣어서 글도 쓰자?”

A : 정답이다.

J : 글을 쓰는 것도 있지만, 결국 그걸 핑계 삼아 놀거릴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던 결과였다. 일종의 문화를 만드는 과정.


A : 생산성만 따지면 MT가 차라리 더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신입 잡담러’가 들어오면 작업 과정을 알려줄 방법도 고민했었다.

T : 워크숍 같은 느낌일까.

A : 그렇다. 다만 실제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해서 실행된 적은 없다.


T : 팀 작업인 만큼 ‘신입 잡담러’가 프로세스에 적응하는 일이 중요하겠다.

H1 : 건축도 그렇지만, 잡지는 마감이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시간, 완성도와 동시에 싸워야 한다. 마치 설계 프로젝트처럼 완성도를 포기하면 편하지만, 쉽게 그럴 수 없기에 날을 새게 된다. 함께 모여서 극복하고, 마감을 지키면서 최대의 결과물을 내는 훈련이 도움 된 것 같다. 혼자 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T : 프로의 자세를 배운 건가. 그렇다고 해도 학업과 병행하는 게 만만치 않았을 텐데.

: 모든 ‘잡담러’가 적어도 한 학기는 “학점을 내주고 책을 취했다.” 그만큼 할 일은 많은데, 보람 말고는 만족스러운 대가를 얻기 어렵다. 내가 편집장이 될 때도 나는 ‘뒤풀이하려고 만들었다’라는 우스개를 진지하게 여겨서, 학생 잡지이니 대충하고 노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 뒤풀이도 못 하고, 대면 회의도 못 하는 데 일은 출판사처럼 많다. 돈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미안하고 힘들긴 했다.


H2 : 사람들이 순수하고, 정말 ‘이런 거’를 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라는 게 좋았다. 회의하는 날에 만나면 다른 얘긴 하지도 않고 건축 얘기만 종일 했다. ‘하라던 설계 안’ 한다더니,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아닌 척하면서 마음은 뜨거웠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환된 게 아쉽다.


T : 대면 행사도 거의 못 했겠다.

H2 : ‘잡담회’와 ‘무비나이뜨’는 한 번씩 경험했지만, MT를 못 가본 건 아쉽다. 이런 순수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라 정말 재밌었을 것 같다.


T : [잡담]에 실린 글에 관한 얘기를 좀 들어보고 싶다.

H2 : [잡담]엔 당시 가장 관심 있던 것들을 썼다. 내 첫 글은 공모전에 탈락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중엔 입상도 하고, 잡담 활동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T : 전통 건축에 대한 세 편짜리 시리즈가 인상 깊었다.

H2 : 처음엔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편집장의 허락을 받아 시리즈를 만들었다. 건축물의 사진만 보고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걸 느껴 여행을 많이 다녔다. 글에도 직접 찍은 사진을 담으려 노력했다. 취재와 조사하는 과정에서 바로 부딪히는 경험들이 건축 태도에도 변화를 주었다. 내 글, 내 시리즈에 책임감도 엄청났다.


T : 확실히, 글에서 대상(전통 건축)을 소중히 다루려는 자세가 느껴졌다.

H2 : 주제가 주제인 만큼 조심스럽기도 했고, 이왕 진지하게 쓸 글이니 오랫동안 열심히 작업했다. 특히 3편의 도산 서원은, 그동안 세 번을 다녀오며 나만의 장소가 된 기분이다. 어느새 친해져서 생각나면 갈 수 있게 되었다.


T : 장소와 친해졌다는 표현이 좋다. 3편이면 거의 한 해를 다 쓴 셈이기도 하니, 도산 서원에 대한 감정만큼은 남다르겠다.




4. 요즘은 뭐 하세요?

H1 : 베를린에서 인턴 중이다. 현재 졸업 학년이고, 서울에서 인턴 하던 아뜰리에(소규모 건축사무소) 소장님의 출장을 따라왔다.


J : 나도 아뜰리에를 다니고 있다. 이제 2년 된 것 같다.


A : 지금은 회계법인에서 부동산 컨설팅 일을 하고 있다. 이직 전엔 상업 건축물 사업 관리 업무를 했고, 건설 현장에 나가보기도 했다.


S : 나는 대학원생이다. 설계하기 싫다는 꿈은 이뤘지만, 건축에서 완전히 도망가진 못했다. 도시, 경제 분야의 공부를 하는데, 이번 주말에만 회의가 세 번 있다. 다른 분들도 대학원을 추천하고 싶다. 이왕 할 거 박사까지 하시라. 별이 다섯 개.


T : 별이 혹시 지명수배 단계인가.

S : 진심이다. 한량도 이런 한량이 없다. I도 대학원 아직 늦지 않았다.

I : 싫다.


T : I는 올해 졸전이 끝나면 어떤 계획이 있나.

I : 대학원은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아마 아뜰리에를 가지 않을까.


Z : 지금은 4학년이다(AA School,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 도시와 정치, 사회의 역학을 주로 다루고 있고, 건축사 라이센스는 따겠지만 현상설계보다 건축학 공부를 더 많이 할 것 같다.


H2 : 올해 갓 졸업해서 아뜰리에를 다니고 있다. 설계는 안 하려 했지만 결국 하는 것 같다.


T : 생각보다 다들 소규모 건축사무소에 많이 다닌다.

H2 : 일부러 소규모 사무소에 골라 지원했다. 설계는 혼자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넓어서 6인만 넘어가도 프로젝트의 규모는 커지지만 내 업무의 비중은 작아진다. 그럼 단기간에 내가 원하는 경험을 분히 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특히 이미 유명하거나 큰 사무소는 설립자나 대표에 의해 정립된 스타일이 강하다. 하지만 갓 시작한 회사일수록 아직 성장과 발전의 여지가 크기 때문에, 소장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그 과정을 함께 겪을 수 있다.


T : 극한의 ‘부딪히며 배우기’인가.

H2 : 그런 셈이다.



*'하라던 설계는 안 하더니 - 잡담 동문 인터뷰 (3)完' 에서 계속-


  



하라던 설계는 안 하더니 - 잡담 동문 인터뷰 (2)

[잡담] 2022 여름/가을 특별호 "건축과 여행" 수록

WRITTEN BY

프로잡담러 T | 김준우 | agk123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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