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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Jul 24. 2023

건축학도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행숙소들(제주도편)

15호_건축과 방학_특별잡담

건축을 배우면 스스로 의식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흔히들 ‘직업병’이라고 하는데, 공간을 다루는 학문을 배우는 건축학도들은 무의식적으로 일상의 공간들을 건축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 본인은 아니라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층고가 특이한 공간을 보거나 중정이 있는 곳을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건축적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보통 건축에서 다루는 공간은 주로 집이나 상업적인 건물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쉼의 공간인 여행숙소들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방학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과 충전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날 때에 사람마다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들이 제각각이지만, 기본적인 의식주 중 ‘주’를 말하는 여행숙소는 그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단순히 비싸고 호화로운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여행의 목적, 혹은 일행의 유무에 따라 어떤 숙소가 나에게 가장 잘 맞을 지 알 수 있다.


건축적으로 잘 빚어진 공간과 여행객이 묵기 좋은 숙소는 일맥상통하면서도 분명히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일개 건축학부 3학년의 학생이 어떤 공간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판단은 내릴 수 없지만 건축을 배우는 한 학생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여행숙소들에 대한 견해를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 여름에는 제주도로 떠나 제주만의 감성을 가진 독채 숙소들에 묵었다. 게스트하우스, 호텔 등 다른 일반적인 숙소들과는 다르게 독채 숙소들은 여럿이서 독립된 공간을 오롯이 쓸 수 있다는 독보적인 특징이 있다. 집 또는 건물을 통째로 쓰는 것은 내부 공간뿐만 아니라 전체 건물의 분위기, 구조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여행에서의 또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에 다녀온 제주의 두 독채 숙소들은 독채의 특징을 비슷하게 지니면서도 다른 점들이 뚜렷이 존재했다. 건축학도가 묵은 두 숙소들에 같이 한 번 들어가보자.



우주오리(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12길 62-14)


제주시 한경면에 위치한 우주오리(SPACE DUCK)는 문훈 건축가의 ‘바람의 집’을 독채 스테이로 재탄생시킨 여행숙소이다. 괴짜 건축가로 유명한 문훈 건축가는 바람이 불어올 때 흩날리는 여자의 머리칼을 보고 영감을 받아 헤어드라이어, 오리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양을 구상했고 원래 지으려 했던 바람 박물관(WIND MUSEUM) 대신 바람의 집(WIND HOUSE)에 적용시켰다고 한다.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시야에 걸리는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과 땅이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방향을 바라보아도 제주도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우주오리는 수평적 트임을 이용해 단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제주의 지평선과 꼭 닮아있다. 층고도 2m를 조금 넘는 높이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높지 않은 층고를 통해 수평적인 시야를 강조한 것이 돋보였다.


사분원의 형태를 가진 평면을 기준으로 바깥 면들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는 마당을 사이에 둔 객실들이 존재한다. 꽤 높은 돌담은 안쪽의 비교적 낮은 층고와 대비되어 수평적인 흐름을 강조하고 그 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오리 모양의 객실은 이 수평적 흐름을 깨트리지 않으면서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풍경에 변화를 주었다. 까만색의 돌담, 그 안의 어두운 색 건물, 그리고 그 위로 솟아 있는 노란색의 오리는 흔치 않은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주동과 오리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주오리는 1층 우주동(최대 인원 6인), 그리고 오리를 형상화한 별도의 오리동(최대 인원 2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객실은 완전히 분리되어 각각의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보호하며 주변의 트인 환경으로부터 여행객들을 독립시켜준다. 이 중 이번에 묵은 우주동으로 함께 들어가보자.



돌담으로 가로막혀 있는 입구로 들어가면 주차공간과 함께 조그만 앞마당을 만나게 된다. 앞마당을 지나면 내부로 들어가는 현관이 나오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통창은 우주동 별도의 뒷마당을 한눈에 담을 수 있게 하였다. 뒷마당은 높은 돌담으로 막혀 밖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해 오롯이 우주동에 묵는 손님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넓게 깔린 잔디 위로 개별 바베큐와 야외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자유로운 야외 활동을 가능케 한다.


‘침실-부엌-거실’의 수평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내부는 별도의 문이나 가림막 없이 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침실은 단차를 이용해 다른 공간들과 분리시켜 휴식의 공간을 보장하였고 침실 옆의 조그만 창은 통창과는 별개로 제주의 풍경을 침실까지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침실 옆의 부엌은 통창과 마주하여 탁 트인 개방감을 가지고 침실과 거실의 이어주며 완충역할을 한다. 화장실과 함께 위치한 거실의 휴식공간은 오히려 부엌보다 폐쇄적인 공간으로 침실과 더불어 전체 숙소의 양끝에 위치하고 있다. 양끝에는 여행객들의 휴식을 위한 리빙[LIVING]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전체 공간의 소통을 담당하는 다이닝[DINING]의 공간을 배치시킨 것이다.


여행 전 묵을 숙소에 대해 알아볼 때, 우주오리는 외관만으로도 가장 인상적인 숙소였다. 여러 조건들을 확인한 뒤 망설임 없이 바로 예약했고 실제로 묵어보니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강렬했다. 다소 평범한 풍경의 사이에서 우뚝 솟은 우주오리는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았고 묘하게 제주의 감성을 모두 품고 있으면서도 통통 튀는 모습은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안으로 진입한 뒤에는 넓은 뒷마당이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가로로 뻗은 시선은 제주의 하늘과 돌담을 숙소 안까지 들여온다.


흔하디 흔한 펜션과 단조로운 호텔에서 벗어나 나만 아는 제주 숙소를 찾는다면 우주오리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제주스러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으로 여행객들을 감탄시킨다. 제주에 왔으니 제주만의 감성을 원하면서도 남들 다 하는 평범함은 거부하는 개성 강한 당신에게 우주오리를 추천한다.



제주집 두모공(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모11길 49)


제주 서쪽 끝에 위치한 제주집 두모공은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의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여행객들이 붐비는 관광 해변이 아닌 조용한 포구 앞에 있어 바다를 온전히 느낄 수 있고 뒤로는 한라산의 풍경을 담고 있다.

 건축주는 갑갑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제주에 새로운 집을 짓고 싶어했지만 예산에 맞는 제주의 땅을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 중 제주의 서쪽 두모포구 앞에 있는 50평의 잉여 땅을 발견했고 여기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용적률과 건폐율이 적고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그 땅은 돈이나 실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땅은 아니었지만 건축주에게는 딱 맞는 부지였던 것이다. 삼각형 모양 자투리 땅의 약점들은 설계를 통해 극복해나갔고 결국 건축주의 니즈에 맞는 집 ‘제주집 두모공’이 탄생하였다.


제주집 두모공은 3층 전체를 쓸 수 있는 독채 숙소로 전체 공간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1층과 2층 사이의 1.5층을 이용해 공간을 새롭게 분리시켰다. 전체 건물은 큰 도로를 등지며 벽돌담으로 감싸고 있는 형태로, 안쪽 풀밭 안에는 돌담으로 이루어진 별도의 데크가 있어 개별 바비큐가 가능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삼각형 형태의 대지에서 도로와 맞대고 있는 가장 긴 변을 기준으로 메인 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나머지 뾰족한 부분에는 데크를 이용한 야외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일반적인 건축물을 짓기에는 불리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벽돌담과 돌담의 조화를 이용하여 적합한 내외부의 구조를 설계하였다.




주차공간을 지나 두 겹의 벽돌별을 지난 뒤 현관 입구로 들어가면 길게 앞으로 뻗어진 동선이 펼쳐진다. 가로로 좁고 세로로 긴 복도의 끝까지 이어지는 시선의 이동과 그 앞으로 연결되는 통창은 좁은 면적의 한계를 극복시킨다. 1층에는 건식 화장실과 부엌, 그리고 큰 테이블이 위치하고 옆쪽 통창의 바깥에는 야외 테크가 내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층은 별도의 개별공간인 1.5층과 연결되어 높은 층고를 가지고 1층에서 바라보았을 때 2,3층이 가려지면서 1,1.5층과 2,3층을 따로 분리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계단을 따라 올라다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은 2층으로 도달하기 전 다락방과 같은 1.5층의 비밀공간이다. 단순한 잉여 공간이 아니라 1층과 연결되면서도 층고로 분리된 1.5층의 공간은 제주집 두모공의 가장 독보적인 공간 중 하나이다.


이 공간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3면 전체가 창으로 이루어진 메인 거실이 나타난다. 제주의 바다, 마을, 산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사이트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면마다 창을 배치하였고 이를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제주의 다양한 얼굴을 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다. 탁 트인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다이닝을 가진 작업실과 함께 아늑한 침실이 나타난다. 층이 많아 다소 번거로울 수 있는 동선을 위해 작업실에는 다이닝의 공간을 작게나마 포함시켰고 아늑한 느낌을 위해 창이 거의 없는 침실과는 달리 바다를 향한 창을 통해 좁은 공간의 느낌을 해방시켰다. 이 작업실과 스킵플로어로 구분되어 있는 침실은 전체 외관의 모양에 맞게 삼각형의 지붕을 그대로 내부로 가져왔고 나무 특유의 따뜻한 느낌을 조명을 통해 극대화시켜 아늑한 공간을 완성시켰다.


제주집 두모공은 2019 제주건축문화대상에 입상한 건축물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묵기에 충분하다. 제주에서 흔히 보이는 현무암의 돌담과 적벽돌의 조화로 이루어져 높게 쌓여 있는 외관은 바다 앞의 포구에서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고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제주집 두모공의 진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메인 공간과 이를 감싸는 벽과 담들은 외부에서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을 부여하고 내부 공간에 대한 예측을 불가하게 만든다. 처음 건물에 진입하였을 때 일반적인 예상을 깨는 동선과 공간의 구성으로 여행객들을 놀라게 하고 눈에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의 분리를 통해 다채로운 시선의 이동을 만들어낸다. 각 층마다 다른 공간의 쓰임에 맞게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가져가면서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인 3층에 도달하기까지 따뜻한 분위기가 심화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면적 자체는 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층별 공간 활용을 이용해 한정된 면적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공간의 구석 구석에 여행객들을 위한 사소한 배려들이 돋보였고 창 하나, 소품 하나에도 그 고민들이 담겨있었다. 손님을 최우선으로 배려한 제주집 두모공은 건축적으로도 다양한 영감을 품고 있다. 평면, 단면, 입면의 다채로운 구성, 스킵플로어와 다락 등을 이용한 일반적 층 개념의 탈피 등 건축학도에게 익숙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들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는 것에 감탄했다. 하룻밤을 머물면서 거듭해서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였고 정말 세심하게 모든 공간들이 짜여져 있다는 것에 놀랐다. 건축적인 면뿐만 아니라 일개 여행객으로서도 완벽한 하루를 보냈기에 시끄러운 도심에서 벗어나 제주의 산, 바다와 함께 나만의 휴식을 원하는 당신에게 제주집 두모공을 추천한다.


참고문헌

전MOONHOON.COM/문훈 발전소

우주오리(SPACE DUCK)

제주집 두모공

전원주택 라이프(2020년 8월호)


도판출처

사진제공 | 프로잡담러 X  

  


게재 : Vol.15 건축과 방학, 2021년 여름

작성 : 프로잡담러 X | K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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