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담 Aug 28. 2023

사진잡담 : 제주도의 건축

15호_건축과 방학_일상잡담


사진1-본태박물관


1. 본태박물관

#안도 다다오 #노출 콘크리트

X: 외관에서부터 안도 다다오의 시그니처인 노출 콘크리트가 돋보여. 본태(本態: 본래의 형태) 미술관인 만큼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요소들이 많이 더해져 있어. 미술관의 동선을 따라 기와가 사용된 전통 담장과 노출 콘크리트가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적이야.


I: 입구만 봐도 안도 다다오지. 노출 콘크리트를 저렇게까지 탐닉할 수 있다니 대단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해. 나는 무슨 재료를 보더라도 콘크리트의 질감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데 학부생이 모든 프로젝트를 각이 맞아떨어지는 콘크리트 박스로만 만들 수는 없잖아. 실무자가 되더라도 웬만한 이름값을 업지 않는 한 힘들 테고. 


개인적 선호를 떠나 노출 콘크리트가 그의 시그니처인 이유가 있어. 아무래도 속한 시대가 다르다 보니 근대 이전의 재료들과 콘크리트는 어우러지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기왓장에 더해 전통 주택을 연상시키는 패턴의 담과도 이질감이 없도록 다룬 모양을 보면 감탄만 나와.


X: 여기선 안도 다다오 특유의 시퀀스 구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해. 작은 복도를 지나면 큰 중심 공간이 나타나는 기본적인 구성은 중정의 양옆에 내부 공간이 위치하고 그 두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가 나오는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과 매우 흡사해. 이런 구성이 사용자의 동선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면서 공간의 흐름을 따라가게 하여 박물관의 공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


#물


X: 건축물에서 물이라는 오브제의 사용은 그 방식에 따라 정반대의 이미지를 부여하기도 해. 본태박물관에서는 물이 고여 있는 공간을 이용해 물의 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했고, 대리석을 이용해 물이 흐르는 듯한 모습을 나타내면서 물의 유동성을 강조하기도 했어. 이런 물의 흐름은 전체 동선과 맞물리면서 공간 시퀀스를 더욱더 부각시키고 노출 콘크리트와는 물성의 대비를 보여줘.


I: 여기서도 그렇고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는 물이 참 잘 어울려. 콘크리트의 고요하고 사늘한 이미지와 어우러져서 그렇겠지?


지난 학기 스튜디오에서 산책로(promenade)를 주제로 잡으면서 설계에 물을 도입하는 것에 관해 처음으로 생각해 봤어. 호이안에서 보았던 강과 다리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 갔는데, 교수님께서 맥락상 뜬금없을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기각했지. 그때부터 물이 사용된 공용공간(public space)에 눈길이 가더라. 어떤 맥락에서라야 물이 뜬금없지 않을까, 저 물은 어떻게 관리될까, 어떤 효과를 의도했을까 하는 고민들과 함께.


분수대가 ‘공원’ 혹은 ‘정원’의 심볼로 기능해 온 것을 보면 물의 이미지가 보편적으로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추측해볼 수 있지. 그런 이미지에는 물의 시각적 유동성과 촉각적 심상(서늘함), 그리고 청각적 자극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해. 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공용공간의 말소리의 배경으로 적합하다는 것이 중심 공간에 분수가 주로 도입된 큰 요소였으리라 추측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물이 들어간 건축물은 제주도 돌 박물관 입구의 대형 분수였어. 물의 양이 엄청나니 소리도 컸을 텐데 그저 고요하게만 느껴졌던 것 같아. 거대한 물 더미와 그 정적인 심상은 아마 앞으로도 못 잊을 거야.



2. 유민미술관

사진2-유민미술관

#섭지코지 #자연, 조화


X: 본태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안도 다다오의 시그니처인 노출 콘크리트가 주를 이루고 있어. 제주의 섭지코지에 위치해 있는데, 여러 장치들과 공간 구성을 통해 건축물 속에 그 자연을 그대로 담고 있어.


I: 한 화면 안에 화산암과 콘크리트가 자연스레 어울리도록 한 솜씨를 보면 역시 노련해.


#스토리텔링


X: 유민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건축물 전체에 건축가가 의도한 스토리텔링인 것 같아.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지나는 복도, 옆의 창과 기둥까지 전부 이어지며 제주의 스토리가 하나하나 담겨 있어. 특히 제주의 성산 일출봉을 액자의 그림처럼 담는 벽은 다들 한 번씩 본 적 있을 거야.


#제주도의 돌담


X: 제주도에 가면 어느 거리, 건물을 방문해도 돌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그만큼 제주를 대표하는 오브제이고 존재만으로도 제주의 분위기를 낼 수 있지. 유민미술관에서도 돌담은 제주의 자연과 어울려 그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해.


I: 여기 살던 때는 돌담에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방인이 되어서 가보니 참 신기한 풍경이더라고. 차를 타고 바다 주변 도로를 도는 내내 시야에서 떠나질 않더라. 그 정도로 모든 곳에 늘어서 있는 줄은 몰랐어. 그렇게 바닷바람과 잘 어울리는 줄도. 색도, 질감도 바다가 주는 심상과 참 잘 어우러졌어. 지역마다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담이 그 자체만으로 제주도의 상징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3. 카카오 스페이스닷원

사진3- 카카오 스페이스닷원

#형상화


X: 카카오의 제주도 사옥인 이 건축물은 제주의 화산동굴과 오름을 형상화해서 디자인했다고 해. 곡면 형태를 바탕으로 하고 제주도에만 존재하는 붉은 화산송이의 색으로 제작된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해 화산동굴의 느낌을 자아내고 있어. 연결되는 내부에는 버섯 모양의 중앙 기둥을 기준으로 공간들이 서로 분리되기도, 합쳐지기도 하며 펼쳐지고 있어.


I: 컨셉이 말장난으로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매스 디자인을 정말 잘했어. 두꺼운 슬래브와 전면창이 확실히 대비되어서 의도한 흐름이 한눈에 보이지. 화산송이의 석색도 정말 직관적이고.


#전면창


I: 전면창 디자인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 하늘 혹은 바다를 비추는 깨끗하고 평활한 전면창은 아주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잖아? 근데 그걸 생각만큼 아름답게 만들려면 노력이 많이 필요하더라고. 우선 멀리온을 눈에 거슬리지 않게 절묘하게 디자인하는 것부터 비용과 이상 사이의 타협점—유리의 크기—를 찾는 것까지. 게다가 전면창이 늘어선 모습 자체를 컨셉의 일부로 삼았더니 층별 코어 같은 프라이버시 수준이 높은 요소들을 구겨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았어. 컨셉과 프라이버시 사이의 줄타기 같은 거지.


#이미지


X: 일반적이고 뻔한 걸 최대한 피하려고 한 게 보였어. 보통 제주 하면 돌담이나 바다가 생각나잖아. 근데 카카오는 그중에서 화산이라는 흔하지 않은 소재를 선택해서 좀 더 눈에 띄는 것 같아. 카카오의 가치가 개방과 소통이라는데 거기에 맞게 내부에도 공간들이 단조롭지 않고 창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어. 지루한 사옥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게 느껴진다고 할까?



4.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사진 4-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유리 난간


I: 난간은 보통 설계 프로젝트의 중후반부에 디자인하다 보니 컨셉을 해치는 눈엣가시가 되기 일쑤지. 이때 유리 난간은 설계 과정에서 의도했던 공간감과 매스 디자인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야. 사진에서만 봐도 저 아름답게 각진 매스들 위에 유리 대신 가볍지 않은 소재의 난간이 들어갔다면 참 아쉬웠을 거야. 이번 설계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선택을 했었는데, 어떻게 그려야 더 그럴듯해 보일지 이리저리 검색해보다 보니 유리 난간의 디자인도 꽤 다양하더라고. 유리의 크기와 철 손잡이의 두께는 물론이고 둘의 연결 방법과 그 접합부의 모양에 따라서도 느낌이 많이 달라졌어.


#물방울, 물과 빛


X: 실제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김창열 화백의 작품과 미술관 공간의 조화였어. ‘물방울 화가’인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모티브로 만들어져 공간 구석구석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극대화해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어.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물방울을 공간에서의 빛과 어둠의 대비로 보여주고, 그 형상이 창을 통해 보이는 제주의 풍경과 어우러져 전시 자체를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작품으로 완성하는 거지.


I: 어두운 내부에 드는 빛줄기는 어쩔 수 없이 계시적이지. 정적이고 사느란 물의 이미지와 빛을 아주 멋있게 조화시켜서 ‘물과 빛의 만남을 추구한다’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아. 그 장면이 좁은 틈새로 내다보는 풍경과 대비되어 둘 모두가 그림같이 살아나는 걸 보니 장소성도 참 잘 살렸다는 느낌이 들어.


#회귀의 공간


X: 미술관의 내외부를 잇는 공간은 김창열 화백이 추구하는 회귀의 철학을 그대로 담고있어. 이 미술관의 설계 컨셉이 ‘빛으로의 회귀’였던 만큼 미술관 곳곳에 주제 의식이 분명한 공간 구성이 드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야외 옥상 공간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는데,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고 입구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동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컨셉이 가장 잘 보이는 부분이었어.


도판출처

사진제공ㅣ프로잡담러 X, Z


  

  


게재 : Vol.15 건축과 방학, 2021년 여름

작성 : 프로잡담러 I, X | 김정인, KDI

매거진의 이전글 장식과 범죄, 로스의 눈으로 본 아파트 공화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