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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Sep 04. 2023

Re-Interpretation

15호_건축과 방학_설계 이모저모

하늘보다 낮은 곳에, 땅보다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달과 가장 가까운 동네가 있다. 고층 빌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산을 따라 오밀조밀하게 형성된 판자촌, 달동네를 말하는 것이다. 잡담 15호에서는 판자촌의 주택을 설계한 고려대학교 2학년, 김승민 군의 주택 설계를 다뤄보고자 한다. 



달동네, 판자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이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등을 떠올릴 것이고,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은 드라마 속 가난한 주인공 가족들이 사는 정감 있는 동네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범선 작가의 오발탄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자촌의 어느 모습을 떠올리든, 판자촌은 사람들이 주거지로 선호하는 모습은 아니다.


1960-70년대 도시화 시기,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향했다. 하지만 도시는 이들을 수용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대부분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판자촌이 형성되고, 달동네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판자촌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철거되었다. 고층 빌딩이 하늘을 찌르는 오늘날에 와서도 서울 곳곳에는 판자촌의 흔적이 남아있다. 갈 곳 없는 도시 빈민에게 판자촌은 여전히 삶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왜 판자촌에 집을 짓기를 기피할까? 왜 판자촌은 도시 빈민들의 전유물이 되었을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판자촌에 집을 짓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에는 낮은 접근성, 부족한 인프라, 높은 주택 간의 밀집도, 불규칙한 땅의 형태 등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판자촌이라는 제약이 많은 공간에 건축을 한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단순히 “판자촌의 집은 어때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판자촌이라는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건축을 통해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하는 듯해서 더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물론 인프라나 접근성의 문제처럼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들까지 해결하는 것은 힘들지만, 판자촌에 짓는 집은 어때야 하는지 승민 군은 그의 설계를 통해서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꽤 현실적이고 명확하다.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판자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좁은 부지에 여러 주택이 밀집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생활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인데, 승민 군은 이를 벽과 공간 배치를 통해 해결한다.


건물의 가장 주요한 특징으로 그가 지목한 벽돌 벽은 건물 외관을 둘러 싸고 있다. 벽돌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밖에서는 안을 못 보게 하고, 벽돌에 불규칙한 패턴으로 구멍을 내어 내부에서는 밖을 볼 수 있는 형태를 만들었다. 



공간 분할의 측면에선 시선이 닿는 높이의 개념을 사용한 층의 구분으로 사생활 문제를 해결하였다. 사생활 보호의 중요도가 높은 공간인 침실과 거실 등의 주거 공간은 거리의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3층과 4층으로 올렸고, 사생활 보호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작업 공간 등은 1층과 2층으로 배치하여 오밀조밀한 판자촌에서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저렴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판자촌에 사는 사람을 위한 주택을 설계할 때는 가격 측면의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저렴하게 시공했다 해서 결과마저도 저렴해서는 안 된다. 



프로젝트에서 저렴한 시공을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경량목구조와 징크는 단순히 저렴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경량 목구조 형태는 시공 가격을 저렴하게 할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공법을 사용할 때보다 벽을 얇게 만들어 좁은 부지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내부에 노출한 목구조는 공간에 따뜻한 느낌을 준다.  




판자촌에 짓는 집은 판자촌의 맥락과 함께해야 한다.


건물은 무조건 예쁘게 짓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73제곱미터의 부지에 지은 작은 주택에는 그가 해석한 판자촌의 모습들이 조밀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깨끗하고 현대적인 주택이지만, 주변 풍경, 주택들과 비교했을 때 모나지 않은 형태를 하고 있다. Perforated Bricks 패턴을 사용한 벽돌 벽은 판자촌의 실금이 간 오래된 벽들과 잘 어우러지고, 앞에서도 언급했던 천장의 징크는 판자촌의 언어를 공유하는 판자 지붕이었다.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공간을 만들고 건물을 짓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건축가는 공간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Re-Interpretation은 건축을 함에 있어서 “나쁜 땅”, ”좋은 땅”은 없음을 보여준다.


그저 부지의 여러가지 특징이 있을 뿐이다.


부정적 요소가 강해 보이는 공간이라도,

건축의 과정을 통해 그러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게재 : Vol.15 건축과 방학, 2021년 여름 프로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Q | 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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