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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Oct 15. 2023

유휴! 쉬고 있는 공간

15호_건축과 방학_특별잡담

공간의 쉼


유휴 공간의 ‘遊休’는 ‘놀 유’에 ‘쉴 휴’로 ‘놀고 쉬는 공간’이다. 놀고 쉬다니, 그 누구보다 신나는 방학을 보내는 자세 아닌가. 유휴 공간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사용되지 않고 가만히 놀려지는 공간’이다. 유휴공간은 인구 감소, 지역의 쇠퇴, 도시재생사업의 지연 등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긴다. 공간에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며, 공간은 본래의 기능을 잃고 유휴 공간이 된다. 처음에는 티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아무도 찾지 않게 되며 공간의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이러한 몇몇 공간들은 우범지대가 되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때로는 지나치게 많이 쉬면 한없이 늘어지듯이, 오랫동안 쉬는 공간에도 쉼이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누구나 방학을 기다리지만, 학기마다 설계에 치이는 건축학도들에게 방학은 더더욱 반가운 존재이다. 우리는 방학 동안 설계 과제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를 식힌다. 이번 여름 방학을 맞아 잠시 쉬며 ‘건축과 방학’에 대한 기사를 고민하다가, 우리가 학기 내내 잡고 있는 건축물에도 방학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건물에 항상 사람들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한때 수많은 사람들의 복작거림과 함께했음에도 점차 찾는 이가 줄어 아무도 찾지 않게 되는 공간들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공간들을 ‘유휴 공간’이라고 한다. 이런 유휴 공간이 방학을 맞이한 공간이 아닐까.



쉼의 멈춤


공간의 쉼은 종종 디자인이 개선되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이 들어서며 멈춰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공간들은 이전의 흐름을 이어오거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던 공간에서 벗어나 오히려 지역 자체를 활성화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는 것이다.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1976~78년에 지어진 마포구 석유비축기지(현 문화비축기지)는 석유파동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당시 석유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이곳은 22년간 서울 시민이 한 달간 소비할 수 있는 대량의 석유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2년 올림픽을 맞이하며 안전을 위해 폐쇄되었다. 당시 석유비축기지는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이에 마포구 내에서 14m²라는 큰 부지가 유휴부지로만 남게 되었다. 2013년이 되며 해당 부지를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시민 공모를 통해서 현재의 ‘문화’비축기지가 되었다. 과거 석유비축기지의 유류저장탱크는 공연장, 기획 및 상설전시장이 되었으며, 공용주차장은 문화마당, 야생화 정원 등의 야외공간이 되었다. 이 공간은 기존의 탱크 형태를 활용한 설계로 과거 역사, 문화를 보존하며 문화시설로 재생된 것이다. 지금의 석유 비축기지는 ‘석유’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가 비축되고 있다.


 마포 문화비축기지 커뮤니티센터
마포 문화비축기지 공연장
이문 고가하부 ‘지붕마당’



서울시 고가하부 프로젝트


수많은 고가도로가 자리잡고 있는 서울에는 ‘고가하부’ 공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이 공간들은 차량으로 인한 소음, 매연과 고가로 인한 그늘로 인해 쾌적하지 않은 환경을 갖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고가하부를 음습하고 황량한 곳이라 인식한다.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은 이 문제를 인식하고 2018년부터 서울시 고가하부 환경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총 6개로 부정적인 인식의 고가하부가 여러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들로 재탄생되었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던 고가하부가 색다른 야외공간으로 탄생하거나 새로운 건축구조물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공간들은 현재 사람들이 소통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해당 6개의 프로젝트는 2021년 2월에서 4월까지 서울 도시건축 전시관의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고가하부’ 전시에 소개되었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고가하부



NSPACE 


외부의 유휴부지에 새로운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사업에 활용되어 유휴공간이 활성화된 경우도 있다. NSPACE는 도시혁신 서비스 기업으로, 유휴 공간을 활력 있게 전환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업은 곳곳에 비어있는 공간을 공유 공간으로 전환해 사람들이 공간을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유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다양한 곳곳의 공유 공간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유휴 공간의 주인은 그 공간을 통한 수익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순히 공유 공간으로 전환해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 구조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통해 많은 유휴 공간들이 파티룸, 사진 스튜디오 등으로 새롭게 탄생하여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더라도, 해당 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만 변화를 줌으로써도 유휴공간이 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랜 쉼이 아닌 방학


여러 유휴공간이 다양한 방법으로 새롭게 탄생해 다시금 사람들이 찾게 되는 매력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휴 공간은 생기면 안되는 부정적인 공간일까? 유휴 공간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트렌드가 변화하고, 상황이 달라지며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는 공간도 변한다. 이런 면에서 유휴 공간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공간이란 사람이 들어서며 완성되는 만큼 디자인의 개선, 새로운 프로그램의 도입 등 시대에 발맞춘 변화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 유휴 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신호를 놓치지 말고, 해당 공간을 사람들이 다시금 찾을 수 있도록 변화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신호를 놓쳐서 쉼이 지나치게 오래되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된 공간이 될 수 있다. 유휴공간을 가만히 내버려 두기보다는, 끝없는 쉼이 적당한 방학으로 끝날 수 있도록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서울의 공원 - 문화비축기지

NSPACE 홈페이지


도판목록

사진 1, 2 출처 문화비축기지 블로그

사진 3 출처 자치행정신문

사진 4 출처 서울특별시


  


게재 : Vol.15 건축과 방학, 2021년 여름

작성 : 프로잡담러 W | P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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