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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Oct 30. 2023

무비나이뜨 : 성가신 이웃

16호_건축과 시간_일상잡담


르 코르뷔지에가 유일하게 아메리카 대륙에 건축한 ‘쿠르체트 하우스’에 사는 레오나르도는 성공한 디자이너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창 밖으로 벽을 부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주인공은 이웃집에 새로 이사 온 중고차 딜러 빅토르.


빅토르는 레오나르도와 빅토르의 집 사이를 나누는 칸막이 벽에 채광을 위한 창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레오나르도는 그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순간부터, 생활을 위해 약간의 채광이 필요하다는 빅토르와 창문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레오나르도의 논쟁이 시작된다.


이 논쟁의 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2021년 9월 18일 밤, 프로 잡담러들의 무비나이뜨 시작합니다.

창, window, veneta,


ㄴㅅ : 영화 전체에 걸쳐서 ‘창’은 레오나르도와 빅토르가 첫만남을 하고 갈등을 겪으며 이어지는 서사의 중심 소재였습니다.


영화 속에 나온 ‘창’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 차이나 ‘창’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ㅎㅇ : 저는 두 인물의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따른 창을 대하는 태도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성공한 디자이너로서 무려 르코르뷔지에의 쿠르체트 하우스를 자가로 소유한 레오나르도에게 ‘창’은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삶의 질을 조금 더 높여주는 수단, 조금 더 좋은 채광과 경치를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남는 햇빛’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죠.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 속하는 빅토르에게 창은 삶을 위한 최소한의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삶에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그런 점에서 레오나르도가 빅토르에게 창을 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ㅅㅈ : 영화 전체에 걸쳐 카메라가 계속해서 레오나르도의 삶을 비추고 창을 통해 레오나르도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면 볼수록 그 제3자의 입장에서 레오나르도의 삶을 훔쳐보는 느낌이라 점점 내가 이래도 되나 싶고 관찰자로서 저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워지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영화를 보면서 프라이버시를 보장해달라는 레오나르도의 입장에 조금 더 공감이 갔습니다.


ㄴㅅ : 레오나르도의 시선에서 창을 보여주는 것에 대하여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높이가 다른 두 창 사이에서 레오나르도는 항상 창을 통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빅토르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봅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래에서 위를 바라볼 때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각각 창 내부가 보이는 정도가 다릅니다. 대부분 가구들은 바닥에 붙어있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를 볼 때 더 많은 것이 보이기 마련이죠. 그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빅토르의 집을 내려다보며 내가 보이는 것 만큼 빅토르도 나의 집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강하게 프라이버시권을 주장했던 것이죠. 그러다가 레오나르도가 한번 빅토르의 집에 들어가서 직접 드 창으로 자신의 집을 올려다봐요. 그리고 그 이후로는 창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에 프라이버시에 대한 이야기는 슬쩍 빠지죠. 레오나르도는 그때 알았을 거에요.


‘생각보다 아래에서 우리집이 잘 보이지 않는구나’


그 이후의 레오나르도의 창에 대한 집착은 그야말로 집착이었던 거죠.


ㅎㅇ : 빅토르는 레오나르도와 대비되는 창에 대한 입장 변화를 겪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 빅토르에게 창은 정말 일조권 확보를 위한 창문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빅토르는 그 창을 이웃 간 소통의 창구로 이용합니다. 자신이 잘하는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레오나르도의 딸에게 인형극을 보여주기도 하죠.


ㄴㅅ : 저는 창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도 있지만, 제겐 서로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도 눈여겨볼만했습니다.

빅토르는 레오나르도를 존중하고 자기 딴에는 좋은 것들을 이웃에게 나누려고 했는데, 레오나르도는 시종일관 빅토르를 무시했죠.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빅토르를 희화화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창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지는 느낌도 없지 않아서 이 창에 대한 논쟁이 더 흥미롭게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더하니 빅토르는 계속해서 합의점을 찾아 나가려고 노력하고 레오나르도는 창 너머 사는 사람의 입장이나 삶에 대해 존중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영화 속 쿠르체트 하우스

ㅅㅈ : 르코르뷔지에 작품은 항상 흰색의 자기 완결적인 면이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쿠르체트 하우스에서는 그 자기 완결적인 흰 면 안에 상당히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나무가 두드러져 보이더군요. 제가 떠올렸던 르코르뷔지에 작품의 이미지에서는 약간 벗어나지만 흰 벽과 나무가 어우러진 것이 굉장히 아름답게 그려져서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어쩔 수 없는 건축학도인지 영화 속에 언뜻 보이는 디테일이나 마감처리에 감탄이 나더군요.


ㅈㅇ : 르코르뷔지에가 잘 사용하는 경사로가 여기에서는 거실 안으로 들어왔죠. 처음 경사로가 카메라에 잡히는 장면에서 딸이 경사로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데 집 안에 그 정도 규모릐 경사로를 둘 수 있으려면 집 규모가 어느 정도여야 할지, 평면도를 보고 싶어졌어요. 영화 전체적으로 공간을 퍼스펙티브 뷰로 굉장히 건축적으로 보여주면서 르코르뷔지에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들을 정확하게 잡아주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문가의 자문을 구했거나 카메라 감독님이 건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주인공 레오나르도가 극 중에서 디자이너로 나오는데 공간이 디자이너로서의 캐릭터성을 더 잘 살리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디자이너가 쿠르체트 하우스라는 공간을 채우면 어떤 느낌일지 잘 보여주고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ㄴㅅ : 이 건축물이 원래는 병원과 겸하던 주거였음을 생각하면 경사로가 들어가는 거실, 그러니까 병원의 로비가 그렇게 놀랍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딸 방의 버티컬 블라인드와 담장의 대문에 눈길이 갔습니다. 방의 한쪽 면 전체를 버티컬 블라인드로 만들어서 필요에 따라 semi-open과 close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든 점이 신박하게 다가옵니다. 전체가 짙은 색 메시로 된 담장의 대문에만 흰색 프레임이 있는 것도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상에서 처음 대문을 여는 장면을 봤을 때 공중에 떠있는 대문을 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ㅅㅈ : 영화의 배경이 쿠르체트 하우스인 점이 영화의 진행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 건축물에 살아가는 동안 집 앞에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휴식을 취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가는 경험을 오랜 시간 겪었던 레오나르도를 생각하면 영화 초반에 프라이버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납득이 가기도 합니다.


ㅈㅇ : 사실 《성가신 이웃》 은 지난 호였던 ‘건축과 방학’에서 제가 여름 방학에 보기 좋은 건축 영화로 추천했던 작품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작품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 이상으로 건축적으로도 만족스러웠고 영화 기법 또한 세련되게 잘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장면 중에 전문가를 데리고 와서 빅토르가 낸 창문의 위법 여부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전문가가 ‘법은 이러하지만 실제 삶과는 다른 문제이다’라고 답변을 합니다. 학교에서 건축 법규와 설계를 배우면서 느낄 수 있는 법규와 실생활 사이의 간극에 대하여 실제 상황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더불어, 저는 이 영화가 ‘건축-스토리텔링’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간접 서술을 통해 건축에 대한 논의를 비전공인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냈어요. 건축과 관련 없으신 분들께도 현대 사회에서의 소통에 대해 화두를 던질 수 있을 듯합니다.


ㅎㅇ : 주거에 있어 권리의 충돌, 사회적 지위와 대상에 대한 태도가 다른 두 당사자가 갈등을 대하는 태도 차이 등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 많은 영화였습니다. 건축학과 학생으로서 옳고 그름을 가르기 전 창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을 감성적 측면에서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교훈도 있었습니다.


ㅅㅈ : 건축적, 영화적으로 모두 재밌게 보았습니다. 호흡이 상당히 긴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없이 보다 보니 1시간 40분이 빠르게 흘러갔네요. 건축 요소의 의미를 심화하여 표현했다는 점이 흥미롭고, 결말에서 현대 사회에서 소통이 좌절된 것은 현대인 스스로 기회를 버린 탓도 없지 않아 있다는 메시지가 보인 것도 재밌었습니다.


ㄴㅅ :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서사의 밀도가 높고 재미 요소도 많은 영화였습니다. 주거에 있어서 나의 권리가 어디까지이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의 권리와 이웃의 권리 사이에서 얼마만큼의 조율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건축적, 서사적으로도 볼 것이 많은 영화였지만 레오나르도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고 있는, 해석할 여지가 많은 인간상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게재 : Vol.16 건축과 시간, 2021년 가을

작성 : 프로잡담러 B | 남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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