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다면
병원 건물은 오래된 숙박업소를 리모델링해서 진료과와 입원실을 만들고 수술실도 갖춘 규모의 병원이었다. 지역의료원이 도시에서 큰 병원이었고 고만 고만한 병원은 대부분 의원급 병원이었다.
병원은 큰 도시의 의료진이 진료 중이라는 소문 때문에 제법 환자가 있었다. 소도시의 병원급에서 산부인과 진료는 그중 훌륭한 매리트를 가지고 있었고, 혈액검사와 방사선실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소문에 소문을 더해갔다.
혈액검사와 방사선 촬영은 진료 후 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재방문을 위한 수고를 덜 수 있는 진료형태라서 인기가 있었다.
야간 주취자에 의한 사건사고는 빈번한 일상이 되기도 했으며, 크고 작은 문제로 야간은 늘 소란스러웠다.
야간 당직근무자에게는 금기시되는 말이 있는데 오늘은 한가하네였다.
당직근무의 순번을 한참 지나쳐 우연하게 발생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도 허다했다.
음주에 의한 창상환자의 치료과정은 당직근무자에게도 담당의사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환자 대부분이 지역사람이고 다툼의 시작은 사소한 문제였지만 그들에게 모든 일은 매번 의로운 일이었다. 다툼은 응급실을 분리 수거장으로 만들고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좁은 소도시에서 그들을 재진 때 다시 만나면 사돈의 팔촌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과일가게와 카페에서 웃으며 마주치고 안부를 전하는 지역 주민일 뿐이었다.
대부분의 신체검사자들은 다양하고 세분화된 혈액검사를 항목별로 세분화하지 못했다. 직장 취업을 위한 신체검사는 특별한 질병이 없는 한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40대의 그에게도 신체검사는 오전에 마무리되는 예비군 훈련과도 같을 뿐 그의 부인과 매독 검사의 대상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당연히 검사는 배우자와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매독균의 특성상 질병의 치료와 관계없이 검사에서는 양성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빈번했는데 마치 질병의 진행상태에 있는 것처럼 당사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가혹한 주홍글씨처럼 슬라이드 위의 결과는 선명했다.
주홍색의 채도는 본인이 선택한 색이지만 지워지지 않는 색을 선택한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태도 정도로는 지우려 애쓰는 색감을 더욱 깊게 물들게 할 뿐이었다.
질병의 판단과 치료의 과정은 담당의사의 처방에 의한 진료 과정 속에 있었지만 우리의 대면은 병원 어느 곳에서나 불편한 대면이었다.
불편한 대면의 원인을 알고 있는 사람과 그것을 대면하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 있었지만, 행위의 결과를 두고 볼 때 당사자에게는 난감한 일이 분명했다.
혈액검사실 앞에서 마주한 부부와의 대면은 어색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환자에게 질병의 여부와 진행정도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은 권한 밖의 업무였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은 없었다.
다만 우리에게는 다양한 혈액검사의 항목을 알고 있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모든 혈액검사는 채혈 후에 시작하고 간기능검사나 부인과의 검사도 채혈 후에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환자는 갑작스러운 혈액검사를 궁금해했다.
(선택의 정당성은 있을까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