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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은둔자 Jan 31. 2018

프랑스 왕궁을 읽는 기본 개념 5가지

베르사유궁의 예

1. 루이 14세가 베르사유궁에 정착하기 전까지 프랑스왕들은 노마드로 살았다.


Adam Frans van der Meulen - http://www.photo.rmn.fr/archive/12-557560-2C6NU08I7UB9.html

위 그림은 루이 14세가 자신의 왕실을 모두 데리고 베르사유궁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1662년경의 베르사유궁은 아직 왕궁이라기 보다는 별장이었다.


프랑스 전역에는 왕 소유의 궁(혹은 샤토)이 35개 있었다. 그 중 파리에는 7개의 궁이 있었는데, 현재 남은 것은 4개다. (씨떼궁, 루브르궁, 벵센느궁, 룩상부르그궁) 그 외에도 팔레 루와이얄, 프랑스 국회의사당인 부르봉궁, 프랑스 중앙은행의 본사가 자리잡은 오뗄 드 뚤루즈는 루이 14세의 동생, 자녀들 소유 궁이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44살이 되던 해인 1682년 왕실을 모두 데리고 베르사유궁으로 이사해서, 그곳에 정착하기 전까지, 프랑스의 왕들은 모두 노마드로 살았다.   

왕이 이동을 하며 살았던 이유는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사냥과 계절, 그리고 전염병 등이다.  

왕이 이동할 때에는 왕의 가족을 비롯해서, 왕과 함께 국사를 돌보는 관리들과 귀족들, 왕실의 서비스를 담당하는 신하들과 하인들이 모두 왕을 따라 이동했다. 


왕궁의 마구간 의미

왕이 노마드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왕이 왕궁을 옮길 때 마다 왕의 모든 가구와 필요한 물품들이 함께 이동한다는 뜻이다. 즉, 왕실 전체가 이사를 하듯, 짐을 바리바리 싸서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을 비롯한 왕의 가족, 왕실의 귀족, 신하들에게 말과 마차는 필수품이었다.

요즘의 자동차 역할을 당시 말과 마차가 담당한 것이다. 에큐리는 우리말로 마구간이라고 번역되지만, 말이 머무는 장소일 뿐 아니라, 말과 마차를 관리하는 귀족과 하인들의 거주공간이기도 했다.

베르사유궁의 입구에 그랑 에큐리, 쁘띠 에큐리가 있는데, 왕궁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고, 건물도 화려해서 마구간으로 번역하면 웬지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왼쪽은 왕궁 건물과 그랑 에큐리, 쁘띠 에큐리의 도식 / 오른쪽은 배치도로 보는 왕궁과 그랑, 쁘띠 에큐리  왼쪽은 아래 그랑 에큐리에서 위쪽 베르사유 궁전을 그린 것 / 오른쪽은 그랑 에큐리의 내부 공간으로, 베르사유궁 내부에 오페라가 지어지기 전까지 예술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함왼쪽은 베르사유궁 정점에 해당하는 왕의 침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왕의 침대 / 1711년 왕세자의 장례식때, 루이 14세가 왕의 침실에서 교황의 대사와 국외 사절을 맞는 것


왼쪽 아래 그랑 에큐리에서 위쪽 왕궁과 정원을 그린 풍경 / 그랑 에큐리의 내부 사진. 그랑 에큐리는 왕궁 내 오페라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공연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2. 왕궁은 왕의 삶터 이전에 통치의 공간이다.


왕의 침실

가로로 긴 동-서축과 상하의 남-북축이 교차하는 지점의 붉은 점이 왕의 침실이다. 이곳 바로 베르사이유궁 전체의 정점이자 프랑스 권력의 중심핵이다.  

왕의 침실은 잠을 자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향한 이 방은 왕이 깨어나 국사를 시작하는 곳이고, 왕이 국사를 마치고 잠이 드는 곳이다. 왕의 기상은  왕궁에 사는 귀족들이 참관하여 기상의식으로 거행된다. 정교한 위계에 따라 왕의 기상의식을 돕는 일도 정해져 있고, 의식의 순서에 따라 높은 서열의 왕족이 먼저 들어와서 왕을 알현하고, 순차적으로 낮은 서열이 왕을 볼 수 있게 된다.

왕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공식 회담, 면담, 알현, 접견, 사신의 파견 등 공식적인 행사를 한다. 

왕의 침대는 절대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왕의 침실에 왕이 없더라도, 침대를 향해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지나가야 했다. 왕은 죽을 때도 왕궁의 왕실 침대에서 맞아야만 했고 왕의 장례식은 바로 침실에서 시작한다.     


왼쪽은 왕궁 건물과 그랑 에큐리, 쁘띠 에큐리의 도식 / 오른쪽은 배치도로 보는 왕궁과 그랑, 쁘띠 에큐리  왼쪽은 아래 그랑 에큐리에서 위쪽 베르사유 궁전을 그린 것 / 오른쪽은 그랑 에큐리의 내부 공간으로, 베르사유궁 내부에 오페라가 지어지기 전까지 예술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함왼쪽은 베르사유궁 정점에 해당하는 왕의 침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왕의 침대 / 1711년 왕세자의 장례식때, 루이 14세가 왕의 침실에서 교황의 대사와 국외 사절을 맞는 것


왕실 샤펠

왕은 종교적으로 태어나고 죽는다. 

왕의 일상, 왕의 일생, 왕궁의 행사 등은 모두 종교적인 의례로 거행되었다.

왕은 신의 대리인으로 왕국을 지배하고 통치하며, 왕의 권한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것이고 그래서 불가침의 영역이 된다. 대관식 때 교황이 왕관을 씌워주는 것은 이를 상징한다.  

미래의 왕, 왕세자는 왕비의 침실에서 왕과 궁신들이 증인으로 참관한 가운데 태어난다. 이후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왕이 되기 위한 대관식도 렝스 대성당에서 거행된다. 결혼식도 성당에서 거행되며, 왕이 죽으며 왕궁에서의 장례행사는 왕의 침실에서 거행되고, 왕이 영원히 잠드는 곳은 생드니 바실리카다. 생드니 바실리카는 프랑스 왕들의 무덤이다. 

즉, 중세를 지나면서 종교적 영향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중세의 교황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왕의 권한이 커진 것 뿐이다. 루이 14세는 자신이 신의 대리자인 교황의 자리를 넘보는 상황이 되고, 나폴레옹 시기에는 교황을 자신의 포로처럼 좌지우지하며, 황제가 되는 대관식 때 교황은 장식처럼 뒤에 앉히고 스스로 왕관을 쓰는 경지가 되기도 한다.       




3. 왕궁은 왕의 아파트망을 기준으로 왕비의 아파트망, 왕자, 공주, 귀족들의 아파트망이 모인 거대한 집합주거 공간이다.

중앙의 왕과 왕비의 아파트망, 왕세자, 왕자, 공주와 왕실 귀족들이 정교한 위계에 따라 각자의 주거공간(아파트망)을 배정 받는다. 왕궁은 왕과 귀족들, 하인들의 모여사는 집합주거


왕궁 건물의 정중앙에는 왕의 침실이 자리잡고 있다. 왕의 침실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유리의 갤러리는 서향하여 드넓은 정원을 향한다. 

그래서 왼쪽 건물은 북쪽에 있어 북쪽 날개이고, 오른쪽은 남쪽 날개로 불린다. 

루이 14세가 결혼한 마리 테레즈는 더블로 사촌관계에 였다. 이유는 루이 13세가 스페인의 공주와 결혼하고, 스페인의 왕이 프랑스의 공주와 결혼한 것이다. 그들이 각각 아이를 낳았으니,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이다.

이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6명 낳는데, 유일하게 왕세자만 성인이 된다. 아마도 유전적 결합 때문에 생존율이 낮았던 듯 하다. 그래서 중앙에는 왕,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비의 아파트망만 배치되었다.

이후 루이 15세는 전례없는 결혼을 하는데, 자신보다 7살이 많고, 몰락한 폴란드의 왕의 딸인 마리 레진스키가 바로 신데렐라로 불리며 프랑스의 여왕이 된다. 그녀는 후손을 낳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래서 10명의 아이를 낳는데, 덕분에 왕궁에 아파트망이 부족하여(!), 어린 공주들을 수도원에서 자라게 한다.


왕궁의 주건물(중앙 건물(ㄷ자형), 남쪽 날개, 북쪽 날개)은 왕족과 귀족들이 거주하고, 왕궁의 하인들은 정사각형 건물의 그랑 코망에 모여 산다. 이 건물에는 하인들의 주거나 방 외에도 왕궁에서 필요로하는 가구와 물건들을 보관, 제작, 수리하는 공방도 있다.

    

왼쪽 배치도에서 왼쪽 아래의 정방형 건물이 그랑 코망(Grand Commun)이다. 오른쪽 도면은 그랑 코망의 가운데 마당(cour)과 사각으로 둘러싼 건물의 공간구획을 보여준다.




4. 왕의 아파트망과 왕비의 아파트망 안에는 성격이 다른 주거공간 3개가 있다.

왕의 삶은 주로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기상의식으로 하루가 시작하여 취침의식으로 끝이 나는데, 모든 의식은 궁신들이 관람자로 참석한 가운데 벌어지는 것이다. 왕이나 왕의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것도 의식처럼 거행된다. 요즘으로 치면, 버킹검 궁의 근위대 교대식이 수많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식이, 베르사이유궁의 왕족들의 일상에서 항시 벌어지는 것이다. 

아래 푸른색은 왕의 공식 아파트망이다. 13번은 왕의 침실이고, 9번 아폴로 살롱에는 왕좌가 놓여있다.

왕비도 왕처럼 모든 일과가 의식으로 진행된다. 왕비의 공식 아파트망은 초록색이다. 16번이 왕비의 침실이다. 이곳에서 왕과 왕비가 동침을 하고, 왕세자를 비롯한 왕자 공주가 태어나는 곳이다.

  


프랑스 왕궁이 다른 유럽의 왕궁과의 큰 차이점은, 옷을 제대로 차려입은 누구나 왕궁에 들어와서 왕궁과 왕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왕들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보여져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왕궁은 외국의 여행객들, 백성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왕도 사람인지라,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공공에게 개방된 채로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베르사유궁에서 떨어진 그랑 트리아농과 쁘띠 트리아농은 번잡한 왕궁에서 벗어나 가족끼리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별장이었다. 왕궁 안에서도 나름의 해결책을 마련했지만, 더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을 때는 별장으로 향했다.

왕궁 안에는 왕이 선별한 가까운 이들만 들어올 수 있게 통제되는 공간, 왕의 개인 아파트망을 마련했다. 루이 15세 때부터 계몽주의가 전개되고 개인이라는 개념이 퍼지면서, 왕도 점차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틀을 벗어나 개인적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싹튼다. 왕의 공식 아파트망은 의례를 위한 공간으로 거의 변화가 없지만, 개인 아파트망은 왕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변화를 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더 사적인 공간, 즉 자신의 애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망을 조성하고 왕의 개인 아파트망에서 직접 연결되게 하고, 왕의 취미 공간이 조성된 사적 아파트망이 있었다. 루이 15세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아뜰리에를, 루이 16세는 자물쇠를 만들수 있는 아뜰리에를 꾸미는 등 자신의 취미생활을 영위했다. 루이 15세는 자신의 정부들을, 정부를 따로 만들지 않은 루이 16세는 자신의 측근들이 거주하고 왕과 함께 일하는 공간이었다.   

(아파트망appartement 이라는 용어는, 개별단위 주거공간을 뜻하는데, 오늘날의 아파트는 불어의 아파트망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파트망 appartement 의 apart(개별의, 분리된)+ment(-명사형)으로 구성된다.) 

 

푸른색으로 칠해진 공간들은 왕의 개인 아파트망(혹은 '안쪽 아파트망'이라고도 부름)의 방들




5. 왕비의 침대는 왕의 침대보다 크다?


물리적 크기는 비슷할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왕비의 침대가 왕의 침대보다 커야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왕의 침대에서는 왕이 혼자 자고, 왕비의 침대에서는 왕과 왕비가 같이 자기 때문이다. 왕이 왕비를 찾아가서 함께 자기는 하지만, 왕비가 왕을 찾아가서 자지는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왕과 왕비는 각자의 아파트망에서 따로 산다. 각자 기상의식을 거행하고, 각자의 생활을 하되, 왕의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왕실의 공식행사에는 함께 한다. 루이 16세는 할아버지인 루이 15세가 죽고, 그의 정부인 마담 뒤 바리에게서 쁘띠 트리아농을 빼앗는다. 그리고 마리 앙뚜와네뜨에게 선물을 하는데, 왕비는 그곳에서 자신의 파티를 열 때, 왕을 '초대'했다. 왕비의 일정에 늘 왕이 참석하는 것은 아니어서, 왕비의 초대장을 받고 초대 받아야 참석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각자의 침실에서 취침의식을 거행한 뒤에, 왕이 왕비의 침실을 찾아가서 동침을 하는데, 아침의 기상의식 때 왕은 자신의 침실로 돌아와 있는다.

루이 16세는 왕비 마리앙뚜와네뜨의 침실로 가는 동안에 왕궁에 사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몹시 꺼려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소심한 성격에 부부생활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왕비의 침실로 가는 비밀통로를 만들라고 주문한다. 이 통로는 후일 시민혁명때 왕궁으로 쳐들어온 폭도들이 왕비를 찾을 때, 왕이 왕비를 찾아 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그런데 왕비는 일반통로를 택해서 서로 길이 엇갈리는 긴박한 사건이 일어난다.

   

옆에 보이는 거실의 중간 높이에 마련된 비밀 통로로 루이 16세가 왕비의 침실을 찾을 때 이용했다.

 

이 외에도 왕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위계와 에티켓이 중시되는데, 공간에도 정교한 위계가 적용된다. 예를들면 베르사유궁에서 위계가 가장 높은 건물은 왕실샤펠이다. 샤펠의 높이가 왕궁에서 가장 높다. 공간으로는 왕의 침실, 그리고 왕의 왕좌가 있는 아폴로 살롱이 중요하고, 실내의 가구에도 위계가 존재했다.

이런 위계는 왕을 정점으로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상하의 관계, 종속과 복종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도구였으며, 위계는 공간에도 정확하게 적용되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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