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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은둔자 Nov 10. 2020

파리의 6개 역 중 가장 아름다운 곳?

기차의 시대, 파리에 지어진 6개(+1) 역들의 역사

파리에는 현재 6개의 역들이 있다. 서울의 면적이 605.2km2이고, 파리의 면적이 105.4 km2로 파리가 1/6 가량의 크기인데, 그 안에 6개의 역이 있는 것이다.

파리의 기차 시대는 19세기 증기기관과 함께 발전하고, 세계박람회의 개최로 가속화된다.

마차로 시간당 10킬로미터를 이동하다가, 기차로 인해 갑자기 4배로 속도가 빨라진다. 그로 인해, 경제적 여건이 달라지고, 도시계획의 환경도 바뀌게 된다.


1842년, 루이 필립 왕은 파리를 중심으로 전국의 중요 지방을 관통하는 6개 방향 철로를 놓고, 2개의 역을 건설한다. 1859년에는 6개의 철도회사가 개별적으로 역과 철도공사를 한다. 각 회사들은 서로 다른 건축가를 고용하여 역 건물을 설계하게 하면서, 각기 다른 건축양식의 역이 탄생한다. 당시 지어진 역들의 위치는 루이 16세 때의 파리 경계 부분에 모두 모여있다. 역 건물은 규모가 커서, 큰 땅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레일이 지나가는 넓은 길도 확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도심으로는 들어올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파리의 6개 역 위치, 루이 16세 때의 파리 경계 부분에 역들이 지어졌다. RMC découverte


파리에서 최초로 지어진 역은?

바로 생 라자르 역이다.   

생 라자르 역은 파리에서 서쪽으로 19km 떨어진 곳에 있는 생제르망앙레를 연결하고, 1837년 프랑스 최초로 승객을 태운 기차가 생기면서 지어졌다.

생제르망앙레는 루이 14세가 태어난 궁이 있다. 즉 그의 아버지, 루이 13세가 자주 머물던 궁이고, 할아버지 앙리 4세도 주로 거주한 궁이 있는 곳이다. 궁이 있는 곳에는 귀족들의 저택도 함께 지어진다. 왕이 있는 곳에는 귀족들도 따라간다. 그래야, 정치에 참여를 하고, 나랏일에 참여를 해서 왕의 총애를 받든, 잇권을 챙기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제르망앙레 궁은 지금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방문객을 맞는다.

기차가 등장하던 시기에는 지도층을 대상으로 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지도층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까지 폭넓게 이용을 하게 되면서, 역의 초기 수용인원 예상이 지속적으로 초과되었다. 생 라자르 역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이용자가 많은 역이었고, 프랑스의 북서쪽, 노르망디를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1830년에서 1865년 사이에 연평균 이용객이 파리 전체 인구의 2배까지 확대되면서 역의 수용규모가 초과되며 2개의 철로가 5개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용객은 점점 더 증가했고, 3번에 걸쳐 확장공사를 해야 했고, 1878년에는 19개의 철로를 25개로 확대했다. 180년 역사의 생 라자르 역은 현재는 총 27개의 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왼쪽, 1837년의 생 라자르 역 모습, 오른쪽 현재의 생 라자르 역 모습. 위키피디아


파리에서 가장 큰 역은?

바로 북역이다.

현재 독일,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로 가는 기차는 북역에서 탄다. 북역은 1847년 초기에는 릴과 파리를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그러나 무척 빠른 확장을 경험하며, 1860년 총체적 확장 공사를 진행한다. 총면적 36,000 m2, 길이 220m, 넓이 180m, 높이 38m인 북역은 유럽에서 가장 큰 역이고, 세계에서도 3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만큼 통행하는 인구도 많다. 일 년 평균 이용객의 숫자는 파리 전체 인구의 5배가 넘는다.


왼쪽, 북역의 길이 220미터의 파사드 모습, 오른쪽 북역의 탈리스와 유로스타 플랫폼 모습. 위키피디아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은?

프랑스 사람들이 건축으로써 가장 완벽한 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동역이다.

동역은 나폴레옹 3세가 아직 대통령이던 1850년에 완공됐고, 파리와 스트라스부르 연결하는 역이었다. 북역에 비해서 이용자는 1/10 규모이지만, 건축적 우아함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근대의 대성당이라고   있는 역은 산업화의 상징이자 기술력의 표상이었다. 특히 동역은 네오 고전양식 건축으로, 마치 왕궁과 같은 외관을 하고 있다. 파사드의 정상에는 스트라스부르 상징하는 여신이 앉아있고, 유리로  커다란 장미창은 실내에 빛을 들이고 우아함을 더했다. 파리의 동역은 로마, 비엔나, 부다페스트  유럽의 도시에서 역을 지을  모방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 심지어 동역을 확장할  똑같은 형태의 건물을 바로 옆에다 복사해서 붙여놓기 하듯 지어놨다.

1850년에 2개이던 철로가, 1860년에는 4개, 1900년 16개, 1928년에는 똑같은 건물을 확장하며 30개로 확장되었다. 동역은 1984년에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왼쪽, 20세기 초 확장 전의 동역 모습, 오른쪽, 확장후의 동역 현재 모습. 위키피디아


가장 럭셔리한 역은?

리용 역은 니스, 칸, 알프스 근교의 스키장, 더 나아가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의 휴양지로 향하는 럭셔리한 휴양객을 실어 나르는 철로였다.

1855년 5개의 철로가 있었는데, 1900년에는 세계 박람회를 기회로 대규모 확장 공사가 있었다. 그리고 외관도 아름답게, 축제를 위한 역으로 만들고자 했다. 리용 역의 가장 큰 특징은 4면으로 커다란 시계가 있는 시계탑이다. 높이 67m, 가로세로 6.5m인 이 시계탑은 런던의 빅벤과 거의 비슷한 두께를 자랑한다.

1901년에 문을 연 '푸른 기차' 레스토랑은 당시 지도층의 취향이 반영된 실내장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유명 정치인들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이곳 역시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왼쪽, 리용역의 외관, 시계탑이 웅장하다. 오른쪽, 리용역 내의 트랑블루 레스토랑 내부 모습. 위키피디아


파리에서 가장 작은 역은?

오스테리츠역은 파리와 오를레앙을 연결하는 노선이고, 6개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역이었다. 그리고 다른 역들에 비해서 중심에서도 가장 벗어나 있었는데, 1891년 나폴레옹 1세가 지은 오르세 궁에 화재가 나면서, 반전의 기회를 얻는다. 오스테리츠역과 철로를 운영하는 회사가 오르세 궁 부지를 매입하면서, 그 자리에 오르세 역을 짓는다. 그렇게 오르세 역은 센 강을 사이로 루브르궁과 튈르리 정원을 마주 보는, 파리 최중심에 자리 잡게 된다. 오스테리츠역에서 오르세 역까지의 4km를 세느강변 지하로 연결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기차가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여, 많은 연기가 나는데, 증기기관차가 지하로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오스테리츠 역에서 오르세 역으로 이동하는 기차는 전기를 이용한다.

오르세 역은 아름다운 철골 구조물로 만들어졌고, 럭셔리한 호텔과 각종 편의시설도 갖춘 도심의 역이었다. 그런데 기차가 더욱 길어지면서 역을 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역으로의 기능을 잃게 된다. 이후 1986년에 미술관으로 리노베이션 된다. 지금은 역이 아니지만, 미술관으로써 파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장소다. 역에 있던 호텔 건물은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사라졌지만, 당시의 홀은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옛 호텔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프랑스인들은 동역이 가장 아름다운 역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은 역이 아니지만, 오르세 역이 가장 아름다운 역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왼쪽, 오스테리츠 역 모습 (SNCF 자료), 오른쪽, 현재는 미술관으로 리노베이션된 오르세 역 (위키피디아)


모더니즘의 표상이 되는 역은?

몽파르나스 역은 다른 역들과 비슷한 건물 형태였으나, 1969년의 몽파르나스 지역 재개발로 획기적인 변모를 하게 된다. 몽파르나스 역은 동쪽 방향으로 가는 역인데, 다른 역들은 유럽의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만, 이곳은 프랑스의 서쪽이 대서양으로 한계 지어져서 국내선으로 한정된다. 브르타뉴의 렌느, 샤르트르를 연결한다. 1965년에 시작된 재개발로, 지상으로 지어진 역이 허물어지고, 도심으로 향하는 사무소 건물이 지어진다. 58 높이의 몽파르나스 빌딩도 당시의 재개발로 올라간다. 당시의 역와 주변 재개발은 현대화와 민주화를 기치로 내세웠다. 앞서 말했지만, 2제정  지어진 역들은 지도층을 타깃으로 지어졌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현대화된 기술의 표상인 편리한 교통시설, 기차와 역를 제공한다는 목표였다. 사실,  부분에서 당시와 현재의 시각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오페라 가르니에와 오페라 바스티유가 같은 평가를 받는다. 당대와 현대라는 시간의 흐름, 시대의 변화  시각이 엇갈리고, 오늘날은 예전과 반대되는 평가를 받는. 오페라 가르니에는 나폴레옹 3세가 주문하여 황제의 영예, 제국의 영광을 드러내는 오페라였고, 계급의 위계가 관람석에도 적용된다. 반면, 미테랑 대통령이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지은 오페라 바스티유는 관객석에 철저하게 평등 원리를 적용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페라 가르니에를  사랑한다. 오페라를 보지 않더라고, 건물을 관람하려는 사람들 항상 붐비는 곳은 가르니에 쪽이다.


왼쪽, 1920년 재개발 이전의 몽파르나스 역 모습. 오른쪽, 재개발 이후의 현재 몽파르나스 역 모습. 위키피디아


왼쪽, 오페라 가르니에 파사드, 오른쪽, 바스티유 광장에 지어진 오페라 바스티유. 위키피디아

 

역 건축의 특징

기차는 초기에 부르주아들을 타깃으로  고급 건축물이었는데, 점차 사용자들이 확대되면서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된다. 역에서 사람들의 동선이 최대한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었다. 이것은 기능적인 필요 뿐만 아니라, 당대 루이필립 시대와 나폴레옹3세 시대, 사람들이 모이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배자들의 두려움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건축적으로는 기차의 길이를 덮을  있는 거대 구조물을 설계하고, 건축의 구조적인 해결방법을 찾아 시공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구조적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재료가 바로 철골과 유리였다.   


역의 시계

파리에서 최초로 건물에 만들어진 시계는 시테궁의 시계탑이었다. 샤를 5 시기에 만들어진 시계는 파리의 백성들이 왕의 시간에 맞춰서 생활하도록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건물의 파사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계였다. 기차 시간이  지방마다 달랐던 시간을 통일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항상 통일된 같은 시간에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면서, 파리를 중심으로 지방의 시간이 중앙에 맞춰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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