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과 유럽의 순례길: 로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지:
특정 종교에서 신성시하는 장소로 종교의 발상지나 순교가 있었던 지역. 기독교의 예수살렘, 이슬람교의 메카
순례:
종교의 발생지, 종교의 근원이 되거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여 참배하는 것.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함.
중세시대 성지순례는 신앙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성지순례는 예수님의 고행을 따르고, 병을 낫기를 기원하고, 병이 나으면 감사의 의미를 담아 행해졌다.
고대 후기부터, 예수의 삶의 흔적이 남은 장소, 예수 십자가(Passion du Christ)의 길 등이 성지(Terre sainte)에서 재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장소에 성소를 지어, 신자들의 방문을 유도했다. 그렇게 유럽에서 성소의 숫자는 10세기부터 11세기에 확장 일로에 있었다.
지금의 관광객과 관광지, 그것이 산업화되어 관광산업이라고 부르는데, 중세시대의 성지들은 이와 비슷한 성격이 있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 여행의 가장 닮은 점이다.
중세시대에 성지로써 최고봉은 당연 예루살렘이었다. 거기에 로마와 콤포스텔이 추가가 된다.
예루살렘의 생 세풀크르 성당 Eglise du Saint-Sepulcre(불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놓고 장례를 치른 뒤, 안치한 동굴을 모아 하나의 성당으로 만든 성지다.
우리말로는 '성묘교회' 또는 '거룩한 무덤 성당'으로 부르고, 정교회 (동방 교회)에서는 '주님 부활 기념 성당'이라고 부른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불어로는 피에르 Pierre, 바위 돌을 뜻함, 영어로는 피터 Peter. 본래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님이 반석이란 의미를 담은 세례명을 주셨다)의 무덤이 대성전 아래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성전을 지은 것이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예수님이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주며, 그가 가톨릭 교회의 반석이 되도록 했다. 그를 잇는 후계자인 교황은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식스틴 샤펠에서 뽑히고, 베드로 성당에서 일하고, 삶을 영위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하늘나라의 열쇠를 부여받았다. 그래서 베드로를 나타낸 조각이나 그림에는 천상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성인으로 그려진다.
* 고대 그리스어로는 페트로스에서, 라틴어 페트루스, 이태리어 피에트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베드로'로 불린다. 성인의 이름이 이렇게 각 나라별로 다양하여, 나는 초반에 불어로 성인에 대해 읽으며,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름과 달라, 영어 이름과도 달라, 혼돈을 겪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불어로 생 자끄 드 콤포스텔 Saint-Jacques-de-Compostelle)에는 산티아고,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야고보, 스페인어는 보다시피 산티아고(Santiago), 불어로는 자끄(Jacques), 이태리어는 자코모(Giacomo), 영어로는 제임스(James), 독어로는 야코부스(Jakobus)의 무덤 위에 지은 성당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가 둘이라, 제베대오의 아들로 혹은 대(大) 야고보로도 불린다. 야고보의 상징은 조가비, 지팡이, 칼 등이 있고, 수의사, 스페인 그리고 당연히 순례자의 수호성인이다.
야고보의 동생 요한도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한 명으로, 요한은 요한복음서와 요한 서신의 저자다. 요한의 영어 이름은 존 (John), 불어는 장 (Jean), 이태리어는 지오바니 (Giovanni), 스페인어는 후안 (Juan), 독어로 요한 (Johannes)이다. 그런데, 야고보나 요한의 한국 이름이 독일 이름에서 유래된 듯 가장 유사하다.
로마에는 성 요한과 세례자 성 요한에게 봉헌된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이 있다. 이 성당은 로마 교구의 주교좌성당(cathérale)이고, 교구장도 교황이다. 이 성당은 로마에서 가톨릭 성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이고,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교황에게 헌납한 성당이다.
로마에는 4 대 고대 로마양식의 대성전(바실리카)이 있는데,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라테라노 대성당으로 줄여 부르기도), 성 베드로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 그리고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Basilica di San Paolo fuori le mura) 또는 성(城) 밖 성(聖) 바오로 대성당(바오로 성인의 무덤 위에 지어짐)이다. 명실공히 로마가 가톨릭의 순례지로 높은 명성을 가질만하다.
9세기부터 야고보 성인의 시신을 발견한 콤포스텔라에 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 산티아고 성당이 지어지면서,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성지순례는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지순례는 12세기부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루트 중 하나였다.
영국에서, 스칸디나비아에서, 폴란드에서, 독일에서, 네덜란드에서 파리를 거쳐 콤포스텔라로 향했다.
1982년 교황 요한 바로오 2세가 방문하고, 1987년 파울루 코엘류가 '순례자'라는 소설을 발표하며, 다시 각광받게 되었다.
중세시대에 번성한 도시들은 모두 성인의 시신, 성인의 몸 일부, 또는 귀중한 성물을 획득하고, 그것을 안치한 성당 짓기를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렇게,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는 베드로의 무덤이, 스페인 콤포스텔라에는 산티아고(=야보고)의 무덤이,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이태리어/Basilique 불어)은 튀니지에서 마르코 성인의 시신을 가져와 지은 성당이다.
파리는 중세시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는데, 기독교 초기에 로마에서는 멀리 떨어진 변두리이자 야만족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성인의 무덤이 있을 수 없었는데, 파리의 종교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신심이 깊은 루이 9세(나중에 성인으로 추대됨, 그래서 생루이로 불림)가 중대한 결정을 한다. 바로 예수님의 가시관을 사 와서 파리를 성지 못지않은 위상을 갖게 하는 것이다. 파리의 생샤펠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예수님의 가시관을 사 온 생루이(루이 9세)가 왕궁 안에 지은 개인 성당(샤펠 chapelle)이다. 예수님의 가시관을 사 오면서 지불한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국고의 절반, 135 000 livres tournois) 또 가시관을 안치할 성물함으로써 지은 성당 (비용 40 000 livres tournois)은 4-6년 만에 완공하면서도 그야말로 당시 기술의 최정점에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 벽의 골조가 최소화되고 벽면을 높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우면서, 그야말로 아름다운 보석함 같은 아름다운 빛이 가득한 성당으로 탄생한다. (아래, 시테궁에 관한 글에서 생샤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archicitystory/5
현재는 가시관이 노트르담의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 (노트르담의 공사로 박물관의 개관은 아직 미정)
예수님의 가시관은 병을 낫게 해주는 기적을 행한다고 믿어, 왕실의 가족이 아프면, 늘 침상을 지켰고, 왕과 왕비가 가시관의 가시를 작은 귀중품 속에 넣고 늘 간직하고 다녔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중 세례자 성 요한의 그림이 있다. 세례자 성 요한은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 그리스도가 올 것을 미리 예언하는 선지자이고, 예수에게 세례를 줬다. 그는 낙타 가죽을 두르고, 십자가 모양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으며, 두 번째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하늘로부터 오는 예수를 예언하는 동작이다. 그런데 그 세례자 요한의 두 번째 손가락을 성물로 보관한다는 성당들이 여러 곳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박았던 못은 3개나 4개인데, '성스러운 못' 성유물을 가지고 있는 성당이 유럽에만 30곳이 넘는다.
어떤 성물을 가지고 있느냐가 성지로서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대한 사안이기에 발생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그야말로 순례자 유치에 결정적 사안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파리의 생샤펠에 있던 '예수님의 가시관'을 찾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은데 반해, '토리노의 수의'는 교황 장 폴 2세와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방문하는 등 수백만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성지순례의 의미?
종교적 혹은 정신적인 이유, 신체단련의 의미, 세상과 단절되고 싶은 욕망, 원기를 북돋기 위한 휴식의 의미, 성찰의 의미, 혹은 단순하게 한가로운 스페인의 풍경을 보고 싶은 욕망,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은 의지 등. 순례길을 떠나는 이유와 동기는 사람들 마다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정신은 비워내고, 몸은 단련하고, 비슷한 어려움에 도전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의식을 느끼며, 단순하고 소박하게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것은 비슷비슷하리라.
만약 로마에 살고 있다면, 매일매일 성지순례를 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파리가 비록 로마시대에는 야만족이 살던 도시지만, 클로비스 왕(466-511)이 기독교로 개종을 한 이래로, 중세시대에는 다양한 종교활동과 종교시설들이 꽃피는 무대였다. 고딕 양식의 최초 성당은 바로 파리(노트르담 대성당)와 파리 근교(생 드리 바실리카)에서 탄생한다. 지금도 파리에는 수 백개의 크고 작은 성당들이 있고, 매일매일 하나씩 방문을 해도 일 년은 꼬박 걸린다.
파리에서 성지순례를 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누가 아나, 하나씩 성지순례를 하며 파리의 성당 도장깨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종교적으로 고양된 성스런 영혼을 소유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