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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Feb 05. 2018

건축가의 주유천하 III 경상 용장사지

; 스물아홉. 경주 이야기 11. 흘려버리기 쉬운 용장사지


남산을 보지 않고 신라를 안다고 할 수 없다 
-향토사학자 고 윤경렬 선생


신라인들은 남산을 佛國土불국토(아미타불이 상주하고 있는 불교도의 이상향)인 須彌山수미산으로 여겼을 것이다. 

동서로 4㎞, 남북 8㎞로 뻗은 이 산에는 금오봉(해발 468m)과 고위봉(494m)이 마주 보고 있다.

옛 신라인들은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약 400여 년간 단단한 화강암을 쪼아 부처를 새겼고, 평평한 둔덕마다 불탑을 세웠다. 


경주 남산 金鰲峯금오봉(황금거북모양의 봉우리.해발468m).

골짜기마다 석불과 석탑이, 봉우리마다 절터가 있다. 

절터 150곳과 석불·마애불 129기, 탑 99기, 석등 22기, 왕릉 13기, 고분 37기 등 모두 694개.

산 전체가 사적 311호.

2000년 세계 문화유산 등재.

금오봉 8부 능선에는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동편 능선 위에 자리하여 이 계곡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 탑은 천연바위를 기단석으로 삼아 세웠다.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에 탑을 세운 듯하다.

바위에 6cm 정도되는 괴임을 2단으로 마련하고 기단의 한 면은 1장의 큰 석재로, 나머지 3면은 2매의 석재로 결구시켰다. 

탱주는 한 개. 

위에는 탑신 괴임이 2단 마련되었고 2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다.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되어 있고, 2층 탑신은 1층에 비해 체감 효과를 크게 주어 전체적인 안정감을 꾀했다. 

층급받침은 모두 4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의 상면에는 탑신괴임이 2단씩 마련되어 있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고 삼층 옥개석 가운데에 찰주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이 탑은 1924년에 쓰러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는데 2층 옥신 상부에서 네모난 사리공이 확인되었다.


보물 186호.


金時習김시습

본관은 江陵강릉. 호 梅月堂매월당.

매월당은 서울교외에서 충순위의 벼슬을 하던 가난한 문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직 돌도 되지 않아 이웃에 살고 있던 崔致雲최치운(본관은 江陵강릉. 호는 鏡湖경호)이라는 집현전 학자가 이 아기에게 문장을 가르쳐 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외워 버렸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 학이시습지불역열호

- 論語 學而篇 논어 학이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래 이 아이의 이름을 時習시습으로 개명한다.

세종은 이미 이 아이를 재상감으로 지목하고 왕명으로 재상 허조가 김시습을 찾았다.

너는 시를 잘 짓는다고 하던데 나를 위해 늙을 老자를 넣어 시 한 수 지어 보아라.


老木開花心不老노목개화심불로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

과거 준비 중이던 21살의 김시습 삭발하고 「雪岑설잠(눈 덮힌 봉우리)」이라는 이름으로 중이 돼 방랑의 길을 떠난다. 

사육신 역쿠데타 실패하고 새남터 사형장에 널브러진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할 후손도 없어 매월당이 몰래 야밤에 새남터 잠입해서 사육신 시신 대충 묻고 다시 전국 유랑에 나서다 마곡사에 숨었다.

효령대군이 조카인 수양대군에게 김시습을 잡아야한다고 조언하고.

수양대군은 輦연(임금이 타는 가마)을 타고 마곡사 도착하지만 이미 떠났다.

수양은 가마를 버리고 소를 타고 따르며 회유한다.

김시습이 책을 구입하러 한양을 찾으니 주막에 세조의 심복 한명회의 글이 붙어 있다.  


靑春扶社稷 청춘부사직 

白首臥江湖 백수와강호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 


김시습이 꼬아서 올린다. 


靑春亡社稷 청춘망사직 

白首汚江湖 백수오강호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1465년 경주의 용장사에 정착.

앞에 매화나무 즐비하여 梅月堂매월당이라 정한다.

김시습은 이 절에서 30세 때부터 7년간 머물며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을 창작한다.

37세 때에 경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온 뒤 1481년 47세 때 환속해 안씨와 결혼.

부인이 2년 만에 운명을 다하게되고.

49세에 다시 탈속.

1493년 충남 홍산에 있는 무량사에서 일생을 마치니 59세.


매월당 사후 3년 만에 관 뚜껑을 열었다.

사리 1과가 나와 부도를 세워 사리 안치. 

모든 석탑은 하층 기단이 있는데 이 삼층석탑만은 암봉에다 바로 앉혀 놓았다. 

암봉이 해발 350m는 되니 세계 최고 높이에 있는 용장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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