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의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기를...
2019년이 열렸다.
어찌 생각하면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 어제에 이어진 오늘일 뿐인데, 인위적으로 정해 놓은 1년이라는 기간하에 끄트머리가 되고 실마리가 된다.
황금돼지(?)의 해.
이 색도 특별할것은 없다.
그저 흰색, 검정색, 푸른색, 붉은색 다음에 이어지는 색일뿐 엄청난 기운이 도사리지는 않는다.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또 어떤 생각을 통해 만들어졌든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스레 이런 시작과 끝이라는 것에서 마무리라는것을 짓거나 아쉬운것들의 시작을 열수 있다.
한해를 여는 시간 며칠전부터 맴도는 Doolin-Dalton의 OST이기도한 Eagles의 Desperado와 함께 시인 김남조님의 설일雪日을 읽어내려간다.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그녀의 시에서 만들어내는 풍경은 내면의 풍경이다.
모든 옷을 벗고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숙명을 가진 겨울나무가 풍기는 그 지독한 외로움에서 그녀는 외로움을 찾아내지 않고 오히려 가볍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본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듯 어쩌면 우리 마음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비워놓고 사는 삶, 풍경 속에서 찾아내는 삶은 진정 아름답다.
홀로 서 있는 겨울나무에게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이란 존재가 함께 하는 것처럼
늘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우리 삶에도 분명 나를 지켜보는 대상이 존재하기에 살아간다는것은 엄숙한 일이다.
삶은 비록 돌층계를 오르고 자갈밭을 걸어야 하는 고통이지만 은총이자 섭리이다.
어찌보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이 그리자랑 할것도 없고,
욕심에 쩔어 살것도 없고,
그냥 오늘 하루를 선물 받은것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고,
감사하는 맘으로 살아야하지 않을까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웃음
*사진은 몇해전 제주에서 담아온 우도 일출과 영실의 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