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해를 갈무리 하는 시기
동짓달 열아흐렛날에 태어난 왕손이 왕이 될 것이란 무녀의 예언으로 녹두를 죽이려 한 광해(정준호 분)가 왕좌를 향한 집착과 불안으로 광기를 폭발시키고 있는 상황.
-KBS 2TV 월화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
동짓달 기나긴 밤을...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대가 오신 날 밤에 꺼내 드리오다
- 누구없소, 이하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드란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오늘은 동짓달 두번째날입니다.
이상하게 짠하게 다가오는 달이 동짓달 같습니다.
겨울을 접어들며 밤의 길이가 계속 짧아지는 달이라서인지 황진이의 시조도, 이를 인용한 이하이의 음악도, 광해의 어두움이 드리운 드라마에서 조차 차갑고 그립고 아련합니다.
우리말에서 1월부터 12월까지를 나타내는 전통적인 말은 '정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 유월 칠월 팔월 구월 시월 동짓달 섣달'이죠.
동지(冬至)는 24절기의 하나로 양력으로 치면 12월22일경으로 음력으로는 11월 중에 들어 있습니다.
이 날은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지만 이 날을 기점으로 낮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의 기운이 싹튼다고 보아 한 해의 시작으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동지가 든 달이라고 해서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 하죠.
음력 12월은 섣달이라고 하는데 이는 '설이 드는 달'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죠.
지금은 음력 1월1일, 새해 첫날을 설이라고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동짓달을 새해 첫 달로 잡은 적도 있고 음력 12월1일을 설로 쇤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 사람들은 음력 12월을 설이 드는 달이라는 의미에서 '설달'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설달이 섣달로 바뀐 것은 '이틀+날'이 이튿날이 되고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바느질+고리'가 반짇고리로 변한 것과 같은 이치겠죠.
우리말은 'ㄷ'과 'ㄹ'은 넘나드는 현상을 보여 'ㄹ'받침의 말이 딴말과 어울려 'ㄷ'으로 바뀐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한글맞춤법 규정에도 29항을 보면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섣달이란 말은 음력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지만 이 단어 속에는 아주 옛날 '한 해가 시작하는 달'로도 쓰였다는 사실이 화석처럼 남아 있는 것이죠.
동짓달로 다시 돌아가서,
근대 이전에는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이즈음부터 농작물이 자랄 수 없어 생산이 멈추게 되고 사회전체가 긴 동면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에게 11월은 마냥 쉬기만 하는 달이 아니었습니다.
농가에서 할 일을 달의 순서에 따라 읊은 노래인 農家月令歌농가월령가 11월령에는 이렇게 노래 했습니다.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기나긴 겨울밤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논밭에서 하지 못하는 생산활동을 실내의 길쌈질로 대체한 것이죠.
이외에도 메주를 쑤고, 거름을 준비하는 시기 입니다.
그리고 동지와 너무 잘 어울리는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즐기리라
팥죽.
冬至동지는 일년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아 陽양이 부족하고 陰음의 기운이 최고치에 이르른 날이어서 귀신이 가장 움직이기 좋은 날이라고 해서 옛부터 양의 기운을 가장 많이 나타내는 색은 붉은색이기에 양을 상징하는 붉은 팥죽으로 음의 귀신을 물리치려고 동짓날 팥죽을 먹어왔다고 합니다.
그것만은 아니겠죠.
적소두(팥의 한의학명)는 심소장의 경락을 잘 통하게하며 하행하는 성질이 있어 수분을 잘 배출하고 각기와 황달 종기를 없애주고 해독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회계년도의 기산일이 1월 1일인 정부와 각기관에서는 11월에 다음해의 사업계획과 예산을 결정하게 됩니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시기인 동짓달, 주변과 더불어 지친 몸을 보하기에 적절한 음식으로 보입니다.
이제 송년회의 달인 동짓달(양력 12월)의 한해의 마무리를 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