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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an 28. 2020

일식 스시, 사시미 03  おまかせ 오마카세 02

; えどまえすし 에도마에스시

초밥의 변화, 
えどまえ 에도마에 (江戸前).


초밥 좀 먹어 봤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어 본 말입니다

검색을 해 보면 사전적인 해석으로 두가지가 나오는데 첫번째는 ‘사람의 성격, 음식의 풍미 등이 江戸풍임; 江戸식.’이고

두번째가 오늘 이야기 하려는 내용으로 ‘東京 만에서 잡히는 물고기’ 라고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えどわん에도만(江戸湾)과 關東관동(かかわりひがし)

에도마에란 초창기  えどわん에도만(江戸湾) ちば 치바(千葉), しずおか 시즈오카 (静岡), 좀더 넓게 보자면 현재의 關東관동(かかわりひがし)이라 불리는 지역등지에서 생산된 재료들을 이용해 만드는 요리로 손님이 더이상 요리에 제단을 가하지 않고 젓가락이나 손을 이용해 바로 한입에 넣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요리 특징으로는 こいくち코이구치(濃い口)라는 염도가 낮고 색이 진한 간장을 베이스로 많이 쓰고 다시는 かつおぶし가츠오부시를 쓴다는 점이고(そば소바의 つけつゆ즈케쯔유) 이는 염도가 높고 색이 연한 うすくち우스구치를 쓰고 だし다시는 다시마를 이용하는 關西관서와 대비되는 형태입니다.(うどん우동의 かけつゆ가케쯔유)

つけつゆ즈케쯔유와 かけつゆ가케쯔유

이 에도마에에서 잡은 해산물로 만든 음식 또한 에도마에로 불렀으며, 이러한 음식 즉 동경식 해산물 요리 스타일을 에도마에풍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지금은 도쿄 앞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이용하는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런 도쿄 스타일의 스시를 에도마에 스시라고 부르게 된것이죠.

정확한 규정은 없고 이타마에いたまえ (板前; 요리사)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개념일 뿐이죠.


사실 일본 역사에서 초기 초밥은 關西관서(かんさい)지방 비와호수(びわこ비와고) 인근에서 시작됐다고 하는 ふなすし부나즈시(붕어초밥)이라고 합니다. 

호수에서 잡은 붕어를 손질해 배 속에 밥을 채워 넣고 일 년 정도 저장한 후 먹는 일종의 젓갈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일대에 그대로 전해져 있는데, 푹 삭힌 홍어처럼 특별한 애호가가 아니면 쉽게 즐기기 어려운 맛과 향으로 유명합니다. 

びわこ비와고
ふなすし부나즈시(붕어초밥)

그 다음은 일주일 정도 식초나 소금에 절인 생선을 밥과 함께 먹는 형태였습니다. 

밥을 꾹꾹 눌러 만든다고 해서 누른다는 뜻을 지닌 おしずし오시즈시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상자같은 틀에 누른다고 해서 정식명칭은 아니지만 はこずし하코스시라고 부르기도 하죠.

당시 절인 생선 초밥을 먹었던 것은 무엇보다 유통과 냉장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선한 해산물을 얹어 먹는, 요즘 스타일의 니기리스시의 발달은 에도시대 근대도시로의 변화와 지속된 냉장과 유통기술의 발전이라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서겠죠.


이 밖에도 초밥에 여러 종류의 건더기를 합쳐 만드는 ちらしずし치라시스지, まきもの마키모노, のりまき노리마키라고도 부르는발에 김과 초밥을 펴고 그 위에 재료을 놓고 돌돌 만 まきずし마키스지,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유부로 만든 いなりずし이나리즈시(유부초밥)등이 지역별로 다양하게 요리해 왔습니다.

누름초밥이 대세였던 시대에서 한개씩 손으로 쥐어서 만드는 니기리즈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서 일본의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현재의 도쿄)에 막부(군사 정권)을 설치하면서 일본의 중심은 관동지방으로 이동하면서 대세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관동지방은 낙후된 지역이었고, 에도(도쿄)도 그냥 시골 어촌이었을 뿐이었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는 각 지역의 영주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1년을 단위로 각 번의 번주를 정기적으로 에도에 출부시켜 머물게 하는 일종의 인질제도였던 參勤交代참근교대 제도로 각 지역의 영주들을 에도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 전역에 에도로 통하는 길 즉 가도를 만들었습니다.

각 지역의 문물이 에도로 몰려들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가 섞여들면서 이것들이 관동 특히 에도의 토착 문화와 섞인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이후 간단히 서너점으로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지금의 약3배사이즈) 스시는 선풍적인 인기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에도가 일본의 중심지가 되면서 니기리 스시가 초밥의 주류로 떠오르게 된것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스시에 わさび와사비(고추냉이)를 사용한것은 하나야요헤이はなやよへい(華屋 與兵衛)라는 사람이 1824년, 요헤이스시를 열고 화려한 모습의 스시를 만등어내며 사용했다고 합니다.

다른지역에서도 니기리 스시를 만들게 되고 점차 늘어나게 되지만 단순히 니기리 스시일 뿐 에도마에풍의 니기리 스시와는 좀 달랐는데, 동경대지진이 일어나자 일자리를 잃은 동경(에도)의 스시 요리사들이 일본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에도마에풍의 니기리 스시가 일본 전역에 전파되게 된것입니다.


관서요리는 간을 할 때 소금을 주로 사용하고, 관동용리는 간장을 주로 사용합니다.

에도막부가 설치된 이후 오키나와 등지에서 사탕수수를 대량재배하게되면서 설탕 가격이 내려가서 설탕을 많이 사용하게 되며 단맛, 짠맛등 맛이 강한것이 특징이죠.

그리고 しゃり샤리(밥)에 있어서 에도마에스시의 특징은 스시를 쥘 때 그냥 꾹꾹 눌러서 쥐는것이 아니라 밥 알갱이들 사이에 공기층이 충분히 형성되도록 쥔다는것입니다.

이렇게하면 입안에 넣었을 때 밥 알갱이 하나하나가 잘 풀어져서 알알이 씹히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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