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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l 16. 2020

일반인문 CXLV 복허리에 복달임

; 복허리의 시작, 초복

伏복.

복伏 | 명사. 민속. 초복, 중복, 말복이 되는 날. 이날이면 그해의 더위를 물리친다 하여 개장국이나 영계백숙을 먹는 사람이 많다.

복날 伏날 | 명사. 민속. 초복, 중복, 말복이 되는 날. 

복일 伏日 | 명사. 민속. 초복, 중복, 말복이 되는 날. 


초복 初伏 | 명사. 삼복(三伏) 가운데 첫 번째로 드는 복날.

중복 中伏 | 명사. 삼복(三伏) 가운데 중간에 드는 복날.

말복 末伏 | 명사. 삼복(三伏) 가운데 마지막에 드는 복날.


초복부터 중복, 말복까지의 기간은 대략 한달 정도 됩니다.

이 기간을 ‘복중’이라 하기도 하고 ‘복허리’라고도 합니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하지’ 이후 3번째 ‘경일庚日(十干십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을 ‘초복初伏’이라 하고 4번째 ‘경일庚日’을 ‘중복中伏’, 그리고 ‘입추’ 후 첫 ‘경일庚日’을 ‘말복末伏’이라 합니다.

그럼, 왜 경일庚日’ 일까요?


‘경庚’은 ‘오행五行(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에서 ‘쇠(금金)’에 해당합니다.

삼복의 뜨거운 여름날에 쇠가 여름날의 불기운(火)에 녹아 없어지지 않게 땅속에 납작 업드려 뜨거운 기운을 피한다 해서 伏(엎드릴 복) 자를 쓴것입니다.

여름기간이라 할 수 있는 하지 이후부터 입추 바로 후까지의 기간 동안 3번의 庚日(경일)마다 차례대로 伏(엎드릴 복) 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에 불의 기운으로부터 숨어 ‘쇠(금金)’의 계절인 가을에 힘을 쓰기 위함인것입니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의하면 ‘양기에 눌려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로 풀기도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도 그 당시에도 ‘삼복중’에는 건강을 위해 조심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임금이, "비록 작은 역사일지라도 삼복(三伏) 중에 백성을 부려 고단하게 할 수는 없다. 홑옷[單 衣]을 입고 깊은 궁중에 앉아 있어도 더위를 이기지 못하겠는데, 하물며 역인(役人)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직 가을이 되어 서늘해지기를 기다려라." 하였다. 

-태종실록 33권


사람들이 비록 농사꾼은 아니라 하더라도, 삼복고열(三伏苦熱)에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마땅치 않다. 예전에는 백성을 부리는데도 때를 가리었다. 하물며 장맛비 오기 전에 반드시 역사를 마칠 수도 없는 것이니, 마땅히 역사를 정지하고 가을 되기를 기다리게 하라.

-세종실록 8권


복날의 기록은 어디까지 올라갈까요?

‘동국세시기’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기(중국전한, 사마천이 상고시대~한나라의 중국과 주변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에 이르기를 진덕공 2년(BCE676)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냈다

성안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를 막았다고 했다

그래 개 잡는 일이 복날의 옛 행사였고

오늘날에도 개장을 삼복중에 가장 좋은 음식으로 친다


按史記 秦德公二年 初作伏祀 안사기 진덕공2년 초작복사

磔狗四門以禦蟲災 책구사뭄이어충재

磔狗卽伏日 故事 즉구즉복일 고사

而今俗因爲 三伏佳饌 이금속인위 삼복가

- 東國歲時記 동국세시기


여기서 보면 ‘개를 잡았다’고 했는데, ‘복달임’중 하나일것입니다.

‘지봉유설’에서는 ‘삼계탕, 개장국, 육개장, 임자수탕, 적소두죽을 즐겨 먹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오래전 일을 상상해 봅니다.

복날이 왔다.

아침부터 부엌은 바쁘게 움직인다.

서민들은 한여름 햇볕에 온도가 올라가 달궈지기 전 회백토가 깔린 앞마당에 가마솥을 얹고 불을 지핀다.

班家반가의 부엌이 딸린 안채의 앞마당에도 분주히 움직인다.

서민들의 가마솥에는 보신탕, 추어탕이 끊고, 반가의 그것에는 육개장, 삼계탕, 임자수탕(개성)이 끊는다.

행세께나 한다는 집안에서는 민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복달임


복달임 | 명사. 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치는 뜻으로 고기로 국을 끓여 먹음.


삼계탕 蔘鷄湯 | 명사. 어린 햇닭의 내장을 빼고 인삼, 대추, 찹쌀 따위를 넣어서 고아 만드는 보양 음식. 삼복에 보신이 되고 원기를 돕는다. ≒삼계.

육개장 | 명사. 쇠고기를 삶아서 알맞게 뜯어 넣고, 얼큰하게 갖은양념을 하여 끓인 국. ≒육개탕.

임자수탕 荏子水湯 | 명사. 냉국의 하나. 영계를 곤 국물에 껍질을 벗겨 볶은 깨를 갈아 밭친 물을 섞고, 미나리, 오이채, 버섯 따위를 살짝 데쳐 넣는다.

개장국 | 명사. 개고기를 여러 가지 양념, 채소와 함께 고아 끓인 국. 옛날부터 삼복(三伏) 때 또는 병자의 보신을 위하여 이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개장구장지양탕.

추어탕 鰍魚湯 | 명사. 미꾸라지를 삶아 체에 곱게 내린 후, 그 물에 된장을 풀어 우거지 따위와 함께 끓인 국. ≒미꾸라짓국.

적소두 赤小豆 | 명사. 껍질 색깔이 검붉은 팥. =붉은팥.


궁중이나 경제력을 갖춘 양반들은 소고기를 넣은 장국을 뜨끈하게 끓여 먹거나 닭에 갖가지 몸에 이로운 한약재를 넣고 달여낸 삼계탕을 먹어 기운을 북돋우고 단백질을 공급받았지만 일반 서민들에게는 지나치게 비싼 음식이었습니다.

소는 평생의 생업인 농사를 위한 농기구로 떠받들어도 모자란 판이었으니 소를 잡아 그 고기를 넉넉하게 넣고 끓여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같은 닭을 끓여도 백숙이라 하여 물과 닭만 넣고 푹 삶은 탕을 먹었던 서민들은 이나마도 달걀을 낳아 소득을 올려줄 닭이라는 비싼 재료를 사용한 음식이기에 특별한 날 큰마음을 먹지 않는 한, 함부로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온 동네에 비교적 많은 개체수가 확보되어 있고,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수시로 낳으며, 훔쳐갈 만한 물건 없이 빡빡하게 사는 삶 속에 도둑을 지킨다는 기능이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개의 존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루에 두 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조선시대에, 그 두 끼마저 제대로 먹지 못하는 곤궁한 삶을 살았던 우리네 조상님들이 여름을 버텨내기 위해 개장국을 먹었던 것은 쉽게 손가락질하듯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개장국은 최고의 여름 복달임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 궁중과 알려진 양반가에서는 복달임음식으로 민어를 사용한 탕이나 찜을 최고로 쳤습니다.

그래, 복달임음식으로 민어는 일품, 도미는 이품, 개장국은 삼품이라는 말이 내려오는것 같습니다.

민어의 최고 부위는 최고는 단연 부레와 껍질입니다.

부레는 부드러운 부분과 질긴 부분이 붙어 있는데 부드러운 부분은 입에 넣으면 체온만으로도 살살 녹고 질긴 부분은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끓는물로 살짝 데친 껍질은 쫄깃쫄깃한 식감이 좋습니다.

2008년 김래원이 주연한 식객이라는 TV드라마에서 부레로 순대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민어부레순대가 나오는 부분이 있었는데, 김래원은 먹다 뱉아버렸다고 합니다.

이유는 제작진이 드라마처럼 큰 민어부레를 구할 수 없어 제작진이 돼지곱창, 함초열매, 성게 등을 섞어 그럴싸하게 만들었기때문입니다.

어교(魚膠)순대라고도 하는 민어부레순대는 민어의 부레에 소고기와 표고버섯, 숙주·당근·파 등 갖은 채소를 잘게 다져서 채워넣은 다음 냉동실에 얼립니다. 

속까지 꽝꽝 얼리면 안되고, 부레가 딱딱해질 정도라야 합니다.

적당히 얼면 부레순대를 한입 크기로 썹니다. 

부레순대는 쪄낸 다음에는 자를 수가 없어 쪄서 익힌 다음 자르지 않고, 잘라서 찝니다

부레가 거의 100% 콜라겐 덩어리어서 뜨거운 열을 오래 가하면 흐물흐물하게 녹아 내리기때문입니다.

겉보기엔 평범한 돼지 내장을 채워 만든 순대처럼 보이지만 말랑하고 쫄깃한 부레와 속의 환상적인 조화는 돼지순대와는 전혀 다른 맛을 보입니다.

실제 부레순대는 가격을 정하기가 어려워 맛볼수 있는곳이 많지 않습니다.


장어도 복달임의 한몫을 했습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장어를 해만리(海鰻鱺)라고 칭하며 맛이 달콤하고 짙으며 사람에게 이롭다고 기록했습니다. 

품질이 우수한 장어가 조선시대 진상품 중 하나로 알려져 서민들보다는 왕가에서 즐겨 먹던 보양식임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북한에서도 닭을 복달임의 주재료로 즐겨 먹지만, 삼계탕이 아닌 온반의 유형으로 먹었습니다. 

우리 실향민이 장충동 일대에서 운영하는 평양냉면집에서 먹는 온반에서 소고기를 쓰는 것과 달리 평양에서는 닭고기 살을 가늘게 찢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꿩백숙도 즐겨먹었으며 개성 지방에서는 닭고기를 기본으로 끓인 육수에 물고기를 넣어 끓인 개성어죽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복날에 평양의 보신탕 전문식당을 소개하면서 삼복철 대표 보양식은 단고기라며 보신탕의 효능을 강조한다고 하니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북한 사람들이 복달임으로 찾는 인기 재료는 단고기 즉 개고기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쑥녹마국수(감자녹말에 쑥을 섞은 국수)’ 같은 생소한 이름의 복달임도 유행한다고 합니다. 

올 초복은 늦은 장마에 가려져 그 위력을 과시하지 못했지만 이제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며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복허리에 여유를 가지고 복달임하시는것은 어떨까요.

저 같은 애주가(?)들은 핑계삼아 하삭음(河朔飮)!

(7월7일 칠석에는 더위를 피해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칠석음(七夕飮)'...)


*하삭지음河朔之飮 

함안군수시절, 오홍묵은 ‘함안총쇄록 咸安叢瑣錄’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890년 6월 2일 초복날 저녁에 "해가 서쪽에 있을 때 닭을 삶아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하삭지음(河朔之飮)을 본받았다"고

 '하삭지음'은 중국 후한 말 유송(劉松)이라는 사람이 하삭 땅에서 원소의 자제들과 삼복에 밤낮으로 술자리를 벌인 옛일에서 나왔는데 피서를 위하여 꼭지가 돌도록 술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재미로 적어 놓은 ‘칠석음七夕飮’은 이규보 시에서 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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