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不亦快哉行 불역쾌재행,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중국과 일본은 폭우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내고 있는데 지리적으로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만 피해 가다 이제야 비가 제법 내리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이상 폭우도 ‘Indian Ocean Dipole mode(인도양 다이폴)'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천행으로 우리나라만 빠졌습니다.
*다이폴(Dipole)이란 쌍극이라는 뜻으로 인도양 열대 수역의 동쪽과 서쪽에서 뚜렷하한 해수면의 온도차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통 인도양에서는 동쪽이 수온이 더 높습니다.
다이폴모드가 되면 인도양 동부에서 수온이 낮아지고, 반대로 인도양의 중앙부와 서쪽의 수온이 상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동풍이 강해지게되고 동서의 해수면의 온도차가 커지게 됩니다.
인도양 동부의 인도네시아나 오스트레일리아 서부는 가뭄이 발생하고, 인도양 서부의 동아프리카에서는 홍수가 일어나게 됩니다.
더 멀리 동북아시아에도 이때는 고온(무더위)과 인도양 서쪽에 있는 수온의 상승에 의해 증발이 왕성해진 수증기는 편서풍을 타고 넘어와 강수량이 증가하며 올해 같은 폭우를 동반합니다.
우리나라는 평년 장마 종료일은 7월 24~25일인데 비해 올해 장마 종료일은 내주 중(26일~8월 1일)으로 전망되고 있듯 장마기간이 조금 늘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장마는 농사가 중심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 다양한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가물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가물 그루터기는 있어도 장마 그루터기는 없다) : 가뭄은 아무리 심하여도 얼마간의 거둘 것이 있지만 큰 장마가 진 뒤에는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다는 뜻으로, 가뭄에 의한 재난보다 장마로 인한 재난이 더 무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구 년 홍수에 볕 기다리듯 : 구 년 동안 장마가 지고 큰물이 나는 가운데 햇볕 나기를 기다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유월(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 :장맛비가 올 때는 모든 것이 쑥쑥 잘 자란다.
■ 중복물이 안 내리면 말복물이 진다 : 중복에 장마가 지지 아니하면 말복에 가서라도 틀림없이 장마가 진다.
■ 칠 년(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 : 가뭄 피해보다 장마 피해가 더 무서움을 이르는 말.
■ 칠월 장마는 꾸어서 해도 한다 : 우리나라의 칠월에는 으레 장마가 있다
■ 칠월 흉년에 팔월 도깨비 : 음력 칠월에는 가뭄이 들어 곡식이 말라 죽은 데다가 팔월에는 도깨비 장마가 져서 농사를 망치게 되는 자연재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하지 지나 열흘이면 구름장마다 비다 : 하지가 지난 다음에는 장마가 들기 때문에 비가 자주 내린다.
아래는 장마를 비유한 표현들입니다.
■ 백 일 장마에도 하루만 더 비가 왔으면 한다 : 사람이 일기에 대하여 자기 본위로 생각하거나 요구한다
■ 석 달 장마 끝에 해빛을 본 것 같다 : 오래고 지루한 기간을 거쳐 비로소 반가운 일을 만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오뉴월 장마에 토담(호박꽃) 무너지듯(떨어지듯) : 힘없이 내려앉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장마가 무서워 호박을 못 심겠다 : 다소 방해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마땅히 할 일은 하여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장마 개구리 호박잎에 뛰어오르듯 : 귀엽지도 아니한 것이 깡똥하니 올라앉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 : 무엇을 원망하기는 하지만 입 속에서만 웅얼거려 그 말소리가 분명하지 아니한 경우에 이르는 말.
■ 장마 때 홍수 밀려오듯 : 무엇이 갑자기 불어나 밀려오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장마 뒤에 외(오이) 자라듯 : 좋은 기회나 환경을 만나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장마에 떠내려가면서도 가물 징조라 한다 : 아무것도 모르면서 앞일을 예견한다고 주제넘게 장담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꼬는 말.
■ 장마 만난 미장쟁이 : 때를 잘못 만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 칠년 대한에 비 안 오는 날이 없었고 구 년 장마에 볕 안 드는 날이 없었다 : 세상의 모든 일이 궂은일만 계속되지는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강상태인 장마는 잠시 시원한듯하지만 이내 후덥지근하며 눅눅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명나라말, 청나라초의 문예비평가 김인서金人瑞는 벗과 함께 여름철 여행을 나섰다가 장마 비에 발이 묶여 며칠 여관 신세를 진 일이 있었습니다.
심심한 궁리 끝에 두 사람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을 연상하여, 문장의 맨 마지막을 不亦快哉불역쾌재(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란 말로 맺는글짓기 시합을 했습니다.
(동양에선 비가 와 발이 묶이면 무료함을 이렇게 멋지게 승화시켰죠.)
그때 나온 것이 유명한 「쾌설快說」이란 36칙의 문장입니다.
不亦快哉三十三則 불역쾌재삼십삼칙
그 중 일부를 열어보면…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콸콸 넘치는 소리는 마치 수백만의 나팔과 북이 일제히 둥둥 울리는 것 같았다.
처마의 낙숫물도 흡사 폭포와 같이 쏟아졌다.
전신에 흐르던 땀은 금세 사라지고 달아올랐던 대지도 씻은 듯 시원해졌다.
쉬파리도 간데 없었다.
밥도 다시 먹을 수 있었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정약용은 불역쾌재행이라는 시로 이 김인서의 「쾌설」을 패러디 합니다.
활짝 펼친 운전지에 醉中詩가 더디더니
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서까래 같은 붓을 움켜 쥐고 일어나
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不亦快哉行 불역쾌재행 중
-丁若鏞 정약용
거나하게 술이 취해 시흥이 솟구쳐 종이를 활짝 펼쳐 놓고 먹을 갑니다.
하늘이 잔뜩 흐려,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모양으로 툭 건드리면 비를 쏟아낼 듯한 하늘은 머뭇머뭇 좀체 빗방울을 떨구지 못합니다.
단숨에 써질 것 같던 내 시상도 덩달아 꽉 막혀 버려 공연히 수염을 배배 꼬며 붓방아만 찧고 있어 답답합니다.
그러다 마른 번개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더니 그예 하늘은 한바탕 소나기를 시원스레 쏟아 놓자, 배포껏 풀어놓는 굵은 빗줄기를 보다가 솟구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해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 붓에 먹물을 듬뿍 찍고 거침없이 휘두르는 붓질의 아래 위로 후두둑 먹물이 떨어집니다.
거나하게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기운 좋은 시, 장쾌한 글씨에 십년 묵은 체증이 단번에 내려갑니다.
아! 통쾌하다.
위에서 쓰지 않은 속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칠월 신선에 팔월 도깨비라
원두막에서 지내기 때문에 칠월의 삼복더위는 시원하게 지내고 팔월의 장마는 도깨비처럼 피하여 걱정 없이 편안히 지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내일, 중복을 지나 다음주면 장마는 끝이납니다.
이제 남은것은 말복을 지나 가을 바람이 코끝을 닿을때까지 뜨거운 한달여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올해는 ‘인도양 다이폴’의 영향으로 더욱 기세를 더할것 같습니다.
모쪼록 도깨비처럼 지나가는 장마를 보내고, 원두막에서 지내는 삼복더위처럼 올 더위는시원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