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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Sep 24. 2020

일반인문 CXLIX 가을...

; 사비추 士悲秋 선비는 가을을 슬퍼한다

그제(9월 22일)는 마치 계절의 경계점이 되는듯한 추분이었습니다.

새벽에 창을 열면 제법 낮아진 기온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 가을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 가을밭에는 먹을 것이 많다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말

가을 들판이 딸네 집보다 낫다.

가을 들판이 어설픈 친정보다 낫다.

가을비는 떡비요, 겨울비는 술비다. 

● 가을의 바쁜 일상을 이야기하는 속담

가을 들판엔 대부인 마님도 나섰다. 

가을 들판엔 송장도 덤빈다. 

가을엔 부지깽이도 저 혼자 뛴다. 

가을 날씨 좋은 것과 늙은이 기운 좋은 것은 믿을 수 없다. 

● 가을 날씨의 변덕을 꼬집는 속담

가을 날씨 좋은 것과 늙은이 기운 좋은 것은 믿을 수 없다. 

가을장마에 다 된 곡식 썩힌다. 

● 추수철인 가을에 오는 비는 결코 반갑지 않다는 말

가을장마에 다 된 곡식 썩힌다. 

보은 아가씨 추석비에 운다. 

● 노인의 굽은 허리를 펼 만큼 가을 새우의 맛이 뛰어나다는 말

가을 새우는 굽은 허리도 펴게 한다. 

● 가을 아욱 예찬

가을 아욱국은 마누라 내쫓고 먹는다. 

가을 아욱국은 사립문 닫고 먹는다 

● 가을 채소인 상추 예찬

가을 상추는 문 걸어놓고 먹는다. 

● 가을 전어 예찬

가을 전어의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 

가을에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 

가을 고등어와 가을 배는 며느리에게 주지 않는다. 


2013년 ‘한국경제교육학회’지에 발표되었던 ‘가을’과 관련된 속담은 34개로 다른 계절에 비해 압도적입니다.

이는 여름·봄 관련 속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씨를 뿌리고 작물이 자라는 기간이어서 농사일에 바빴기 때문이고, 반면 가을 관련 속담이 가장 많은 것은 조상의 최대 관심사가 추수에 따른 수확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을을 소재로 한 속담엔 우리 선조의 지혜·정서·관찰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가을.

떠도는 어원이 정말 다양합니다.

아래 게시물에 ‘와이로’의 어원처럼 잘못된 말들이 사실처럼 돌아다니는 ‘Urban Legends(뚜렷한 뜻으로 번역이 어려워 원어를 사용합니다)’는 넘칩니다.


다음 해의 농사에 대비하여 가을에 논밭을 미리 갈아 두는 일인 ‘가을갈이(秋耕)’에서 나온 ‘갈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함경도의 ‘가슬(秋)’, 경상도의 ‘가실’에서 어근 ‘갓(갇)’에서 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수확의 계절에 곡식이나 과일을 수확하려면 식물몸체에서 열매를 끊어내야 한다고 해서 ‘ㅇㅇ을 끊다’의 고어인 ‘갓다’에서 왔다는것이죠.

반면 확실히 이것이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가을’의 어원은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봄’의 뜻에서 왔다고 전합니다.

다시말해 ‘가을’과 ‘봄’의 초기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다는것입니다.


‘갈수기渴水期’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해 동안에 강물이 가장 적은 시기로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철과 봄철이 이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가 ㅅ ㄹ]→[가 슬]→[가 ㅡ ㄹ]→[가을(갈)]로 변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봄은 ‘살이 찐다’는 뜻의 [비(肥) 오름]→[ㅂ ㅗ ㄹ]→[봄]이 되었다고 국립국어원은 전합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하죠.

작년 가을, ‘책벌레…’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에 잠시 언급을 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가을을 타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많이 알려진 ‘호르몬 영향’ 외에도 ‘상승정지증후군’이라는 견해와 최근에 발표된 ‘행복 유전자’에 대한 이론입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약학대학 연구진은 50세 이상 성인 1만여 명의 유전자 정보 및 건강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 후 그들에게 외로움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특정 유전자의 정체는 찾지 못했지만 심각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유전적 형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이 연구결과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 외로움의 유전적 소인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앞서 휴스턴 베일러의과대학 등 17개국의 국제공동연구팀이 약 30만명의 유전자를 비교․분석한 결과, 행복에 관한 유전자 변이 3개를 찾아냈습니다.

행복 유전자는 중추신경계와 췌장 조직, 그리고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을 분비하는 부신에서 주로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자신들이 발견한 행복 유전자 3개는 심리 특성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할 뿐 유전자가 개인의 행복과 우울을 결정짓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상승정지증후군’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리던 사람이 더는 성취해야 할 목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심리적으로 허무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모두들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자기 혼자만 뒤쳐진다고 생각할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남성들은 대개 여성들보다 성취욕이 더 강하므로 가을에 이 같은 증후군에 빠질 수 있으며, 중년 남성들이 특히 더 많이 가을을 타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24시간이라는 일주기성에 맞추어 진화해왔고 일주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바로 인체 내에서 생리현상을 조절하는 호르몬입니다.

우울한 느낌을 없애주는 항우울성 호르몬의 경우 일조량이 많을수록 활발하게 분비되며, 반대로 가을처럼 일조량이 줄어들면 분비량도 줄어들게 된다는것입니다.대표적으로 심리적 안정과 엔도르핀 생성을 촉진하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인데, 일조량이 줄면 비타민D 합성이 줄면서 세로토닌 활성도가 낮아져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밤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멜라토닌은 가을에 분비량이 늘어나게 되고 수면주기를 조절하는 멜라토닌은 밤에 많이 생성되는데, 분비량이 늘어나면 에너지 부족, 활동량 저하, 슬픔, 과수면 등의 생화학적 반응이 나타납니다.

햇빛이 풍부한 적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북극 가까이 사는 사람들보다 더 낙천적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남성의 경우 일조량 부족으로 비타민D 합성이 줄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도 줄어들게 되어 우울감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멜라토닌 특성이 여성의 신체리듬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유독 남자가 가을을 더 타는 이유 중 하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悲秋비추는 시인묵객들의 단골 詩題시제가 되어 왔죠.

조선 후기의 문인 李鈺이옥은 士悲秋解사비추해 글에서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도리는 성하면 곧 쇠하니, 사월 이후부터는 음이 생겨나고 양은 점점 쇠한다.

쇠하면서 무릇 서너 달이 지나면 양의 기운이 없어져 다하는데, 옛사람이 그때를 지칭하여 ‘가을’이라고 했다. 

그런즉 가을이라는 것은 음이 성하고 양은 없는 때이다.

동산이 무너지매 낙수의 종이 울고, 자석이 가리키는바 쇠바늘이 달려오니, 물(物)이 또한 그러하다.

오직 사람으로 양의 기운을 타고난 자가 어찌 그 가을을 슬퍼하지 않음과 같겠는가?


중국 최고의 시성 杜甫두보도 登高등고라는 글에서 


만리에 슬픈 가을, 항상 나그네 몸이요, 백년에 많은 질병, 혼자 오르는 산이로다 라고 표현했죠

萬里悲秋常作客 만리비추상작객  百年多病獨登臺 백년다병독등대 


비추3 悲秋 | 명사. 구슬프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가을. / 가을철을 쓸쓸하게 여겨서 슬퍼함.


지루했던 여름을 잊고 잠시 悲秋비추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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