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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l 21. 2021

일반인문 CLXVI 육식주의를 해부한다

;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중복날이라 더 와닿는 이야기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듯, 밥상위의 잔혹함을 위트로 풀어낸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떠오르게도 합니다.

책 제목부터 강렬합니다.


Why we love dogs, eat pigs, and wear cows: an introduction to carnism 리는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스스로 동물 애호가를 자처하며 고기를 먹지 않고, 동물 옷(양털 제외, 죽이지 않으니까)으로 만든 옷은 입지 않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신발, 가방은 품질을 이유로 합성피혁보다는 자연가죽을 선호하죠.


10년 전에 출판된 책으로 ‘고기를 먹으면 왜 안 되는지’가 아니라 ‘고기를 왜 먹는지’를 이야기한 책입니다.

쇠고기, 돼지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떠올리지 않지만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대학 교수로 심리학과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Melanie Joy 멜라니 조이는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인식 과정에는 사라진 연결고리가 있다고 이야기를 열어갑니다.

본문의 짧지만 강렬한 어프로치에서 책 전체의 theme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 받았다고 상상해보자. 그곳에서 당신은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만든,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간 스튜를 먹는다. 허기진 상태에서 먹는 스튜는 더 맛있게 느껴진다. 당신은 그 친구에게 레시피를 물어본다. 그 친구는 이 스튜에 들어간 고기가 맛의 비법이라고 대답한다.

그 고기는 바로 '골든리트리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걸 멈출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화장실로 구토를 하러 갈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화를 낼 수도 있고. 하지만 그 친구가 농담이였다면서 사실은 쇠고기라고 말한다. 쇠고기라고 다시 말해줬어도 여전히 그 스튜를 먹을 수 있을까? 음식은 변하지 않았는데 왜 '쇠고기 스튜' 라고 이름 붙이면 맛있고, '골든리트리버 스튜' 라고 부르면 역겹고, 먹을 수 없는 것이 되는걸까?

-본문 중


육식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동물과 인간이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역사를 넘나드는 각종 사례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별도 박스로 짜 넣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킵니다.


개는 귀엽고 충성스러우며 다정하고 영리하다?

돼지는 더럽고 멍청하며 게으르다?

이런 방식으로 동물을 보는 데는 ‘Cognitive Trio 인식의 트리오’라는 세 가지 방어기제(대상화, 몰개성화, 이분화)가 개입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왜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는 걸까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종은 도축장으로 보내고 다른 종에게는 사랑과 친절을 베풀고 있습니다.


실제로 돼지는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며*1, 굉장히 예민합니다*2.

소들 역시 감정이 매우 풍부하고, 사교적인 동물이다. 자연환경에서는 서로 우정을 쌓기도 하고, 송아지들은 어울려서 같이 놀기도 합니다.

닭들도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 보다 상당히 영리하다 라고 인정했고, 애완동물로 키울 때는 애정을 바라고, 집에서 키우는 개와도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돼지들은 태어나자마자 펜치로 꼬리가 잘리고, 닭들은 부리가 잘려나가고, 송아지들은 거세를 당합니다.

돼지들과 닭들은 좁고 더러운 우리에 갇혀서 자라고, 종종 더러운 위생상태로 인해 병에 걸려 죽는 돼지, 스트레스로 죽는 닭들도 있습니다.

송아지들은 6~12개월 동안 자연상태에서 수유를 하고 우리로 들어가 단백질과 지방보충제로 만들어진 사료를 먹습니다.

도축장으로 보내 질 때는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하고, 닭들은 집어 던져집니다.


*1. 펜실베니아 대학 실험에 따르면 돼지들을 훈련시키면 코로 조이스틱을 움직여서 80%이상의 타겟 적중률을 보여준다.

*2 돼지는 좁은 우리 안에 갇혀있거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의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매우 흡사한 반응을 보여준다.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내재하는 모순을 감추고 우리가 어쩌다 그걸 알아채게 되면 그럴싸하게 해명하고 넘어가는 정신적, 정서적 눈가리개 역할을 합니다.

육류를 먹는 일은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

육식주의라고하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육식주의carnism’라는 말은 ‘채식주의 vegetarianism’와 그 결을 같이하는듯 보이지만 다른 방향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육식주의자는 필요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고기를 먹고있지만 선택이 아닌 듯 보이는 것은 육식주의의 비가시성 때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육식주의가 특정한 유형의 신념체계, 바로 ‘이데올로기’이며, 그것도 정밀한 검토를 쉽사리 허용치 않는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라는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인간에게는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선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근본적 욕구가 있다고 믿기 때문' 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책의 도입에서 이야기한  먹을 수 없는 동물을 먹었을때, 골든 리트리버 - 먹을 수 없는 동물 - 뛰노는 개의 이미지 - 혐오감 - 먹지못함 순으로 인식하지만 소는 먹을 수 있는 동물로 분류되는, 일반화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정신적 분류체계, ‘Schema 스키마’에서 벋어나 '느끼지 않는 법' 대신 차단된 '공감(Sympathy)’을 생각하게 해주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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