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트위스키의 역사, Glenfiddich
The world’s most awarded single malt
글램피딕이 항상 사용하는 홍보 카피인데, 자신감이 흘러 넘칩니다.
윌리엄 그랜트는 9명의 자녀, 1명의 석공과 함께 평생의 꿈인 자신의 증류소를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증류소의 이름을 ‘글렌피딕’으로 지었으며, ‘글렌피딕’은 게일어 (스코틀랜드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사슴이 있는 계곡’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 증류소 인근에는 사슴이 목을 축이고 갈만큼 깨끗한 Robbie Dhu 로비듀(상수동에 동명의 바)라는 청정수가 흐르고 글렌피딕은 마침내 1887년 12월 25일, 1년여의 공사 끝에 글렌피딕 증류소가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직접 쌓아 올린 돌덩어리가 72만개.
초기엔 인지도가 없어서 고전했지만 오직 품질로 서로 추천, 입소문…
글랜피딕의 특이한 삼각형 병은 독일 디자이너 Hans Schleger 한스 슐레거가 1961년 디자인한것으로 위스키 제작시 중요한 물, 공기, 맥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재료 중 물이 가장 중요하고 제조 공정중에는 오크통 숙성이 결정적인데,
일반적으로 병입과정이 주유소가 아닌 대도시 주변에 있다보니 위스키 만들때 쓰는 물과 병입직전 도수를 떨어뜨리기 위해 넣는 물이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글렌피딕은 병입시설이 증류소에 붙어 있어서 위스키 만들때나 병입할때의 물이 똑같은 로비듀 청정수를 사용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청정수인 '로비듀(Robbie Dhu)'를 보호하기 위해 수원지 인근 지역을 포함 150만평 토지를 구입해 관리하며 천연 상태로 보존하고 있는데, 150만평은 평촌 크기입니다.
위스키 풍미의 절반에서 많게는 80%까지 좌우하는 오크통 숙성과 관련해서도 다른 증류소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오크통 제작과 관련해 외주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글랜피딕은 오크통 제작시설 쿠퍼리지를 자신들이 직접 운영한다.
1974년부터는 숙성을 마친 위스키를 다른 오크통 위스키와 섞을때 2,000리터 큰 통에 집어 넣고 안정될때까지 최소 석달이상 기다리는것을 원칙으로 정했는데 이런 marring 메링작업을 할때도 스테인레스 통을 사용하지 않고 반듯이 나무통을 사용하는데 1998년 업계 최초로 solera 솔레라 시스템을 도입해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스페인 셰리와이너리에서 사용하던 방식을 응용해 유러피안 셰리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 새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 이 세가지를 38,000리터 solera vat 솔레라 통에 넣어서 섞은 뒤 이것을 한꺼번에 다 빼내는것이 아니라 일부만 빼서 병에 딤고 그 빼낸 만큼 다시 채워 넣는 독특한 방식으로 글렌피딕 15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혁신 공법을 선도적으로 도입하는 반면, 전통을 그대로 고집하는 부분이 있는데 예를 들어 증류기를 보면 다른 대형 증류소에 비해 크기가 훨신 작은것을 사용합니다.
작은 증류기를 여러대 가동하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창업자가 처음 위스키를 만들때 사용하던 크기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작은 증류기를 사용하는것이죠
심지어 발효실의 발효조만해도 요즘 트렌드는 스테인레스 통을 사용하는것인데 여기는 아직도 수명이 20년 밖에 안되고 관리비도 많이 드는 전통 나무 발효조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창업자 가족이 운영하는 증류소 130여곳 오직 4곳만이 운영되고 있고 글렌피딕은 130년이란 세월동안 5대가 가족경영을 이어오면서 단 한번의 경영권 다툼이 없었고 심지어 회장 자리에 대한 욕심도 없어, 심지어 동생 샌디고든이 회장을 하고 형 찰스 고든이 이를 도와주고 그러다 형이 회장을 하고난 다음, 다음 세대에도 형은 자신의 아들 글렌 고든이 아니라 동생의 아들, 조카 피터고든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식으로 ……
후계선정의 판단기준은 오직 능력으로 지금도 6대직계 후손이 20여명인데 누가 회장이 될지 아무도 알수 없다고 합니다.
그 가문의 독특한 자녀교육은 방학이 되면 자식들을 증류소로 데려와서 굴뚝청소부터 온갖 허드렛일을 다 시킨다고…
이러한 가풍때문인지 이 가문에서는 기부 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장수 했던 사람이 이 집안 사람입니다.
2012년 글렌피딕 창업자의 증손녀 Janet Sheed Roberts 라는 분이 110세 생일 후 돌아가셨는데 글렌피딕 가문에서는 자넷 할머니의 110번째 생일을 기념해 할머니니 인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55년 싱글몰트를 11병 내 놓고 이것을 경매로 팔아 낙찰금 전액을 여러 기부 단체에 전달.(한 병에 4만4000파운드(약 7900만원) 낙찰)
스카치 위스키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8년, 10년간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수출액이 2배이상 성장.
이렇게 몰트 위스키가 주목을 받던일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중반, 몰트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탄생한 이 후 계속 블렌디드 위스키의 폭주가 이어지다보니 스코틀랜드 증류소는 블랜디드 위스키를 만드는 거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증류소 제조 위스키의 대부분을 블랜디드 위스키 제조용으로 납품하는 상화이었는데 이런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이 1950년대부터 경영에 참여한 글렌피딕 창업자 4대손, 샌디고든은 증류소를 찾은 위스키 거래상들의 글렌피딕의 맛에 감탄하는것을 보고 납품만 하지 말고 우리 이름을 걸고 그대로 팔아보자고 주장합니다.
그래, 샌디고든은 고작 1만 파운드(한화 1,600만원)의 홍보비용으로 1963년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싱글 몰트 위스키로는 최초로 글렌피딕 위스키였던 글렌피딕 8년산을 ‘스트레이트 몰트’라는 이름으로 뉴욕시장에 내어놓은것이 브랜디드 위스키 시장에 싱글몰트라는 쟝느가 처음 생기게 된것.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해 글랜피딕은 2015년 1963년 당시의 풍미를 재연해 내놓은것이 ‘디 오리지널’
싱글몰트 시장의 개척자였던 샌디고든은 이후 약 20년간 회장으로 글랜피딕을 이끌며 세계 1등 브랜드로 성장 시키고 작년 12월 89세의 나이로 돌아가시며 올려진 더 타임즈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부고 기사를 올릴만큼의 위치에 있던것이죠.
그는 사실 위스키 사업체를 물려받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변호사나 항공기 설계자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법학과 수학을 복수전공으로 최고성적으로 졸업할때 회장인 아버지가 대장암 판정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부탁으로 글랜피딕에 합류했고 그의 검소함은 회장시절에도 낡은 구두를 고쳐신고는 했다고 합니다.
1987년 글랜피딕 100주년 기념 행사때는 회사에서 15세기에 지어진 대저택을 개조한 호화 호텔 스위트룸을 잡아주니, 자신은 이런 방이 싫다고 자신이 10년간 끌고 다닌 소형 캐러반을 호텔 주차장에 놔두고 생활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어쨌든 모두의 반대에도 끈기와 신념으로 선택한 자신의 의지로 싱글몰트 시장의 탄생을 이끌어내었기애 글랜피딕의 역사가 싱글몰트의 역사라고 이야기하는것입니다.
한가지 더하자면,
예전에 직원들이 글렌피딕의 맛에 반해 위스키를 오크통에서 몰래 빼 먹는 일이 있었다는데 그래서 숙성과정에서 날아가는 위스키를 Angel’s share 라고 부르는갓에 빗대어 직원들이 몰래 빼먹는 것을 Devil’s share 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글렌피딕은 1979년 까지 직원들에게 하루 3번씩 공짜로 위스키를 나눠주는 dramming 드레밍이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 글렌피딕은 환경을 위해 위스크 제작과정에서 나오는 잔여물로 친환경 저탄소 연료까지 만들었고 이 연료로 위스키를 배송하는 트럭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별걸 다 하는 기업이죠)
아, ‘발베니’, ‘몽키숄더’, ‘그란츠’, ‘헨드릭스 진’ ‘세일러 제리’ 등도 이 회사에서 만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