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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문 CLXXXV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루프양자중력이론으로 읽는 인문학시각의 시간

by Architect Y

OTT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그리드'(극본 이수연)가 10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대사는 극을 이끌어가는데 조금은 과한 내용이었지만 덕분에 머리를 식힐겸 책한권을 소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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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태생의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Loop Quantum Gravity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Carlo Rovelli 카를로 로벨리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The Order of Time


지난, 2019년 5월15일 열린 ‘서울포럼 2019’의 기조 강연자로 나서 귀한 지식과 통찰을 청중들에게 들려준 카를로 로벨리는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첫 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등 세 권의 저서를 통해 이미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서 모두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물질, 에너지, 공간에 관한 내용인데 이 책은 그다음 주제인 ‘시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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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 엑스마르세유대 교수는 젊은 시절부터 취직이나 세속적 가치보다는 호기심을 푸는 데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탈리아 Bologna 볼로냐대학에서 Padua 파도바대학으로, 영국 임페리얼칼리지(Imperial College London)와 미국 Yale 예일대, Syracuse 시러큐스대, Pittsburgh 피츠버그대, 프랑스 Aix-Marseille 엑스마르세유대학까지 수많은 동료 연구자, 스승과 학풍을 거쳐온것은 ‘궁금증을 풀다 보니’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될수 밖에 없었던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Trento 트렌토대학 연구팀에 속해 있던 시절에는 자신의 차를 숙소 삼아 몇 달씩 지내기도 하고 논문도 남들보다 늦었지만 물리학의 두 기둥인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사이에서 물리학의 풀리지 않은 숙제에 천착했고 느리고도 철저히 고민한 결과가 바로 루프 양자 중력 이론으로 이전까지 양자 중력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superstring theory (초끈이론)이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로벨리 교수가 1988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세계 최초로 주창한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현대 물리학에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그로인해 카를로 로벨리교수는 제2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Loop Quantum Gravity 루프양자중력이론


fisica49_01.jpg Loop Quantum Gravity and Nature of Reality.-AltExploit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통해 밝혔듯이 시공간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입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 아닌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니?


그럼 멈춰있다는 말인가?

제목부터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입니다.

저자의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 등 상충하는 이론들의 통합을 모색하는 시공간 이론입니다.

이런 연구 분야의 특성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시간’의 본질과 특성에 대해 많은 고찰을 해 왔음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시간’ 연구 분야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가 말합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연속적이고 절대적일 것 같은 ‘시간’이 실은 양자화되어 불연속적으로 존재하고 사건의 관계에 따라 상대적인 위상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은 시간의 양자화라는 개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대표하는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현대 물리학이 시간에 대해 이해해왔던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어디서든 동일하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순서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사건들, 과거는 이미 정해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상식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낱낱이 드러내며 시간의 기준이 단 하나일 것이라는 오해, ‘시간의 유일함’.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오해, ‘시간의 방향성’, 그 외의 현재라는 시점, 시간의 독립성, 시간과 양자개념에 대해 들려줍니다.


2부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특성들을 모두 지우고 난 후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없는 세상’, 즉 ‘시간’의 개념을 물리학적으로 배제하였을 경우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카를로 로벨리’가 연구해온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 등장합니다. 시간의 특성을 해체하고 시간을 배제했던 과정을 거쳐, 그리고 저자의 표현을 빌려 ‘시간을 파괴’ 한 뒤 이제 저자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마지막 3부는 시간의 원천에 관해 이야기해줍니다.

1부와 2부에서 파괴한 시간을 되돌려 그 원천을 다시 찾고 이 긴 여행의 도착점을 우리 자신, 나라는 존재로 하여 돌아옵니다.

뉴턴에 의해 근대 물리학이 등장한 이래로 물리학의 발전이 우리의 시간관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까지 이야기하는 이 책은 일종의 시간 역사서이기도 한데, 여기서 더 나아가 저자는 새로운 양자중력 이론의 도입을 통해 지금까지의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확장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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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간에 관한 이야기로 철저하게 물리학으로 읽혀지기 쉽지만 물리학 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는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인문사회학적 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공간과 시간은 분리할 수 없으나 거리가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거나, 속도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릴 경우 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 사회학적으로는 공간과 시간을 분리하여 바라보려 한다는것이죠.


세상은 ‘사물’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물질로, ‘실체’로, ‘현재에 있는’ 무엇인가로 이루어졌다고 말이다.

혹은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본문 105p


인문철학적으로 바라보면 이제 고정화된 공간 안에서 같은 지식과 같은 전통, 상식이라는 ‘공간의 규칙’을 강요하고, 강요받던 시대가 아닌 각자 다른 시간으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 심지어 같은 공간 안에 한 솥 밥을 먹는 가족 구성원들 마저도 나와 다른 시간으로 인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아니 '다른 생각을 가진다.'라는 시간의 규칙을 인정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과정이자, 사건들이며, 구성물이고 공간과 시간 안에서 제한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라면, 우리의 정체성과 유일성의 기반은 무엇일까?

-본문 180p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라며 던진 질문입니다.

저자의 과학적인 해석이 철학자의 변론처럼 펼쳐지는것을 보자면 오래전에는 철학과 과학은 한 몸이었다는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과 사물을 그리고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여러 방법의 하나로 그 과정에서 평평했던 지구가 사실은 공처럼 생겼고, 태양이 도는 게 아니라 사실은 지구가 도는 거라는 게 밝혀졌다는것입니다.

지금은 상식으로 생각하는 많은 것은 세상이 진리라고 믿던 것을 의심한 과학자들의 반항 때문이었던것이죠.

세상이 평평하든 둥글든, 태양이 돌든 지구가 돌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이지만 과학자들은 진리를 파헤치고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은 그 질문을 믿는 사람들 덕분에 지구에는 더 큰 세상이 있고, 지구는 우주의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시간이란 개념에서 시작해서 커다란 우주까지 이야기한다. 그 우주 속 먼지 같은 공간에서 현재 이 시간의 주인처럼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저명한 물리학자가 아닌 진리를 터득한 현인으로서 조언하며 인도의 대서사시, Mahābhārata 마하바라타를 인용합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

-본문 209p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의 생애는 어떤 모습으로든 저장되어 누군가로부터 기억됩니다.

저자는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벌어진 사건 간의 연결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벌어진 사건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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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프로젝트를 잊기위해 생각을 씻어내려 읽어내려간 책으로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다시 일에 집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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