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로 성큼 다가서는 불금과 고전-白鯨 백경
얼마 전 뜨거운 반응으로 막을 내린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특이한 소재인 고래가 등장했습니다.
그래, 고래가 주인공인 고전을 한권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장편소설, Moby Dick 모비딕(1851년)은 1820년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포경선 Essex 에식스(길이 26.7m, 배수량 238톤급)가 거대한 알비노 향유고래에게 공격당해 침몰한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죠.
길이 26m, 몸무게가 80톤이 넘는 늙은 수컷 알비노 향유고래와 1838년 잡힌 페루의 사나운 고래 흰고래 모카딕(Mocha Dick; 몸길이는 70ft-21.3m였으며 그 몸에선 고래기름 100bbl-15,890l)를 보고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이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것입니다.
미국 문학사의 최고봉을 거론할 때 자주 거론되는 걸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모비딕'은 출간한 지 석 달 동안 채 팔린 책 권수를 합쳐도 2천 부가 채 안됐고 Herman Melville 허먼 멜빌 역시도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사망했을 때는 거의 완전히 잊혀진 작가였을정도로 완전히 버림받은 작품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철저히 그늘에 갇혀 있다가 사후에 극적으로 재조명되며 이제는 확고한 위치에 서면서 작품 자체의 운명도 극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프롤로그 자체가 고래의 어원이라든지 고래와 관련된 다양한 경구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고 19세기 중반에 포경업의 의미라든지 고래잡이 방식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담겨 있는것은 생소하게 느껴지며 중간중간 연극 극본의 대화나 방백처럼 여겨지는 구절, 기나긴 묘사로 이어가는 대목들은 우리가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임을 여실히 보여주기도하며 700페이지라는 양은 완독의 무게를 더욱 가중시킵니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모비딕'은 문학사에서 유명한 시적인 문장들 중 하나로 출발합니다.
바로 Call me Ishmael 즉 ‘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해두자’라는 문장인데, 이 소설에는 세 주인공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Ishmael 이스마엘’은 그 모든 모험과 참극의 끝에서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이면서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올리듯이 성경에 나오는 Abraham 아브라함의 버려진 서자 이름 ‘이스마엘’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합니다.
멜빌은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스마엘이다’가 아니라 ‘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해두자’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모비딕'은 이 거대한 이야기에서 이스마엘의 위치와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소설입니다.
그래 도입부의 긴 독백이 책을 풀어가는 방향이 됩니다.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Ahab 에이해브선장에 관해선 들어본 사람들이 많은것은 그만큼 곁가지 많은 '모비딕'의 이야기에서 가장 강렬한 줄기는 바로 흰 고래 모비딕을 추적하는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극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비롯해 수많은 Reference를 끌어들이고 있는 작법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이해브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폭군 ‘아합’ 왕의 이름에서 가져온것으로 에이해브는 편집증적인 광기 자체인 인물일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광기로 몰아가는 기이하고도 지독한 리더라는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Title role인 흰 고래 Moby Dick 모비딕은 물리적인 위압감 자체가 큰 존재이면서 동시에, 아주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어찌 보면 자연의 위압감을 뜻하는 것도 같고 어찌 보면 삶이나 세계의 우연적이고도 폭압적인 혹은 불가해한 원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모비딕과 대결하는 에이해브 선장이 탄 배가 백인들에 의해 실제로 절멸했었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따온 'Piquaud 피쿼드호'라는 사실을 감안하게 되면 이 소설 자체를 바다로 옮겨진 일종의 서부극처럼 읽어낼 수도 있겠죠.
여담으로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애초 이름이 모비딕에서 따온 Piquaud 피쿼드였다가 1등 항해사, Starbuck 스타벅의 이름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석유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이전이었던 시대인 19세기 초중반 고래기름은 산업혁명을 굴러가게 만든 중요한 에너지원이었습니다.
그래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선원들이 고래를 사냥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어 머나먼 항해를 했는데 대양을 떠돌다가 작은 배에 옮겨타고 작살을 쥔 채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짐승을 사냥하거나 그와 정반대로 고래에 의해서 선원들이 수장되는 광경을 상상하면 뭔가 강렬하고 절박하면서 기괴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요. 심지어는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모비딕은 재해석의 가능성이 많은 작품으로, 에이햅이 모비딕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소설의 1/3 에 불과하고 이스마엘의 사색과 진술로 이뤄져 있지만 책이 접근에 어려움이 있다면 뮤지컬보다는 Chris Hemsworth 크리스 헴스워드(토르) 주연의 2015년 개봉한 영화, In the Heart of the Sea 하트오브더씨를 보는것도 이 가을 깊은 작품에 빠지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