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아케 모리타셰프 vs 스시조 마츠모토 셰프
우리나라의 스시는 2003년 모리타셰프의 등장으로 turning point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모리타 셰프보다 5년 뒤에 조선호텔 스시조에는 마츠모토 셰프가 들어오며 우리나라의 스시는 변화에 박차를 가합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식 정통 스시를 맛볼 수 있는 국내 식당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식문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호텔 일식당에서도 회에 초장을 내고, 마끼에 날치알과 작게 썬 김치를 올리는 등 지금은 동네 횟집에서 맛볼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선보이는 경우가 허다했죠.
아리아케는 1979년 문 열 당시에는 삿포로 ‘스시젠’과 제휴해 대중적인 스시를 내놓았으나 오랜기간 일본에서 유학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 정통 스시에 익숙한 이건희 회장이 호텔신라 일식당을 방문하며, 이런 현실에 실망해 "이 초밥은 2.5류다!"라며 화를 냈다는 일화는 이제 너무 많이 알려졌죠.
이 후 이 회장의 유학시절 단골집이자, 8석의 작지만 일본 황실의 출장 만찬을 전담하고, 남들은 모두 받고 싶어 안달인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거부할 정도의 긴자의 한 스시집, きよだ すし 기요다 스시와 기술 제휴를 맺고 대대적인 변신을 시작합니다.
당시 기요다의 가격은 최소 3만 5천 엔(한화 약 35만 원)임에도 불구하고 6개월 이상 예약이 밀려있을 만큼 인기가 좋았습니다. 지금은 60만원
하루에 2천 톤 이상의 해산물이 거래된다는 츠키지 시장에서 가장 좋은 물건들은 기요다 스시로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료들은 남다릅니다.
단순히 기술제휴에 끝나는것이 아니라 기요다 스시 기무라 셰프는 자신의 뒤를 이을 4대 장인으로 낙점한 제자를 보냅니다.
もりた모리타 씨는 부친이 도쿄 인근 지바에서 초밥 음식점을 해 유년기부터 초밥과 인연을 맺었고 고교 졸업 후 본격적인 초밥 요리사 길로 들어섰는데 맛이 뛰어나기로 근방에 소문이 났습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기무라 씨에 의해 2001년 기요다 스시로 자리를 옮겨 초밥 전문가로서 본격적인 수업을 받다가 2003년 신라호텔 아리아께 측에서 요리사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기무라 씨 추천으로 아리아께로 자리를 옮기게 된것입니다. 공식직함은 과장.
그래 もりた まつい (森田 松己 모리타 마츠이)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를 총괄하고있는데 당시 41세로 과장직급이었고 주방장은 현재 스시 오마카세 중 가장 고가(42만)인 코지마의 박경재셰프였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무렵, 쫄깃하고 강한 초밥 맛에 익숙했던 초밥이 쫄깃한 맛을 즐기는 한국 손님들이 기요다 식의 부드럽고 섬세한 초밥을 인정해 주지 않아 모리타 셰프는 마음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
모리타씨는 아리아께 요리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후
초밥에 쓰이는 해산물과 채소의 성장과정을 셰프들이 모두 꿰고 있을 정도로 재료를 중시하는 기요다의 전통은 그래도 가져오면서도, 숙성기간을 줄이고 쫄깃한 식감을 살려, 손님들 반응이 매우 좋아졌고 아리아께 초밥은 최고라고 받게 된것입니다.
밥 위에 생선을 얹고 마지막에 주먹을 꽉 쥐어 내는, 살짝 뾰족하게 높은 모양의 스시는 모리타 셰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아리아께를 찾는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모리타셰프의 영향력은 스시효 안효주, 스시선수 최지훈, 스시호산 이승철, 스시사찌 장문창, 스시장 장원석등 아리아케 출신 셰프들과 진짜 모리타 계열(모리타와 근무 기간이 5년 이상, 기요다 연수자)이라하는 키즈나 송웅식, 코지마 박경재, 마이 유오균, 호산 이승철, 미토 윤상흠 셰프들의 영향력때문입니다.
조선호텔 스시조는 아리아케보다 6년 늦은 1985년 문 열었습니다.
2008년은 레스토랑 오픈붐이 일었던때입니다.
이 시점에서 23년간 국내 스시계에 터줏대감이던 스시조가 아리아케의 변화까지 인지하고 있었으니, 긴자 최고의 스시 레스토랑과 손을 잡은 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리아케가 기요다와 기술제휴를 했듯 스시조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스시집 중 하나인 도쿄 銀座 久兵衛 ぎんざ すし きゅうべえ 스시 큐베이와 손을 잡습니다.
재밌는것은 스시 큐베이는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자와 인연이 있던곳입니다.
일본뿐아니라 뉴욕등에서 레스토랑 컨설턴트로 이름 난 Marcia Iwatate ましゃ いわたて (67) 마샤 이와타테가 메뉴와 스타일링, 서비스 등을 총괄하며 지하에서 20층으로 옮기고 350년 된 ひのき 히노키(노송나무)를 15년간 자연 건조해 일본의 전문 장인이 만든 것으로, 히노키 향이 스시의 향과 어우러져 그 맛을 더했습니다.
인테리어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Guido Stefanoni 구이도 스테파노니가 맡았습니다.
스시 큐베이는 일본 긴자에 있는 스시 레스토랑으로 오너 셰프인 いまだ ようすけ 이마다 요스케(75ㆍ今田洋輔) 씨의 아버지가 1936년에 긴자에 세운 5층 건물에서 시작했는데 이마다 씨의 아버지의 별명인 ‘큐베이’를 따서 이름 지어졌다고 합니다.
스시조는 기술뿐만 아니라 (2012년 원전사고 이 후 전남 영광에서 도미, 여수에서 하모 등 국내를 수배 사용) 스시 큐베이에서 사용하는 생선을 그대로 공수해 일본과 1일 공수 체제로 오늘 주문하면 내일 점심에는 긴자에 있는 스시 큐베이와 동일한 생선으로 만든 스시를 즐길 수 있을 정도였는데 메뉴판에는 일본 생선과 한국 생선을 표기해 고객이 스시 생선의 국적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모리타 셰프를 영입했듯 스시조 역시 스시 큐베이의 まつもと みずほ 마츠모토 미즈호(松本瑞穂)셰프를 영입해 013년 독립하기 전까지 5년간 스시조를 이끌며 국내 최정상급 스시야(스시 전문점)로 끌어올렸습니다.
2018년부터 스시조는 도쿄 롯폰기에 있는 鮨よしたけ스시 요시타케와 신규 제휴를 통해 진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경력을 쌓은 뒤 뉴욕에서 활약하다 일본으로 돌아온 よしたけ まさひ 요시타케 마사히로 셰프가 운영하는 스시 요시타케는 전통적 스시뿐 아니라 갓포요리를 결합하는 등 스시 트렌드를 이끌며 미쉐린 가이드 3star를 받았습니다.
스시조의 영향력도 스시 마츠모토, 스시 민종우, 스시인(이진욱), 스시 전 (정영진), 나카지마 고에몽(박세진) 아리아케와 함께 우리나라의 하이엔드 스시야를 만들고 있습니다.
식당 분위기는 살짝 릅니다.
아리아께에서는 스시에 집중해 즐기도록 셰프와 손님 사이에 최대한 말을 자제해 손님들도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지 동석한 이들과 속삭이듯 조용하게 말하는 반면 스시조는 상대적으로 쾌활하고 역동적으로 손님과 요리사 대화가 유쾌하게 이어갑니다.
스시 맛도 스시란 샤리와 네타, 간장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생각으로 샤리(밥)와 네타(생선회 등 밥 위에 올리는 재료)가 너무 튀지 않도록 내고있는 아리아케와 달리 스시조는 스시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캐비아(철갑상어알), 트러플(송로버섯) 등 서양의 고급 식재료나 치즈와 된장을 섞은 소스를 사용하는 등 유연하고 과감한 편입니다.
양대 몰트 위스키회사로 비유하자면 정통의 글렌피딕과 과감한 변화와 마케팅의 맥캘런이라고나할까요.
두 호텔 일식당은 서로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최고의 경쟁자로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보통 하이엔드로 가면 실력이 다들 비슷하니 재료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달려있다고 하는데 재료나 칼질,쥠 등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밸런스와 기승전결 입니다.
아무리 재료가 좋다해도 참치나 전어를 첫점부터 먹을수는 없죠.
스시는 흰살생선, 등푸른, 조개, 새우, 장어, 참치등을 15~20점안에 코스를 끝내야합니다.
옅은 맛부터 슬슬 시동을 걸어 참치, 히까리모노로 정점을 찍고 자연스레 안착하는 기승전결이 이루어져야 하니, 요약능력이 부족한 경우, 흐름과 퀄리티의 공극이 만들어집니다.
20개 내외의 코스내에서 그계절의 바다를 잘 표현해내는게 스시 이타마에의 진정한 능력인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