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담巷談,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말
누군가 자유를 반복해서 외친다면 의심하십시요.
그 반복만큼 당신의 자유는 없어질것입니다.
- Noam Chomsky 촘스키
요즘 쇼셜네트워크에서 핫하게 돌아다니는 말이죠.
촘스키의 명언(?)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말입니다.
Urban Legends
이렇게 그럴듯한 이야기는 사회관계망(SNS)의 발달로 엄청난 속도로 전파됩니다.
이런 류의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을 영어로는 ‘Urban Legends’라고 합니다.
정확한 해석이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지만 사실이 아닌 특이한 사건이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잘못 알려진 상식들이죠.
가장 대표적인 urban legend로는 영화 필름 사이에 관객들 몰래 콜라 사진을 끼워넣으면 콜라가 더 잘 팔린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의 무의식을 설명하면서 많이 인용된 사례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죠.
(이런 무의식에 호소하는 광고를 subliminal advertising이라고 합니다.)
WRPA사의 발달심리학자인 이브 위트모어(Eve Whitmore) 박사는 이렇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현상의 핵심은 확증 편견(confirmation bias;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으로 알려진 편향현상이거나, 그들의 믿음과 모순되는 것을 거부하고 무시하면서 기존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정보를 찾고 받아들이려는 경향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편향은 SNS로 빠르게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발생이 가져오는 사회적 폐단에 대한 경고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서 2020년에 소셜 딜레마(social dilemma)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줄거리는 대강…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 플랫폼 기업이 이용자를 플랫폼에 오랜 시간 잡아두기 위해 추천기능, 좋아요 기능을 이용하고 있으며, 보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면서 이용자를 조종하고 있고 온라인상의 활동 내역을 분석해 이용자 성향에 맞춘 광고를 노출시켜 상품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런 과정을 지배, 통제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AI)라는 것이죠.
AI는 이용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가짜뉴스를 추천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용자의 관심사일 뿐 노출되는 정보가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용자에게도 정보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AI가 제공하는 사실만을 진실로 믿으면서 인간의 행동을 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커다란 문제는 믿고 싶은 정보만을 믿고 상대를 배척하면서 좌우의 극심한 대립이 나타나고 있고 이에 따라 토론과 대화를 통해 최적의 대안을 마련하는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Urban Legends
선관위도 속은 알렉시드 토크빌,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In every democracy, the people get the government they deserve.
원문으로 추정되는 문구는 1811년의 것으로 이 기록이 토크빌의 것이라면 그가 6살 때 한 말이 됩니다.
이 ‘선거명언’은 특별한 계기나 근거 없이 토크빌의 말로 와전되었는데, 다른 원전을 따져봐도 메스트르나 플라톤 모두 ‘민주주의의 교훈’을 담기에는 본래 의도된 의미 자체가 전혀 다른 말들입니다.
여전히 이 명언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새뮤얼 스마일스의 이름으로 인용하는 편이 그나마 나아 보입니다.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등장하는신채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의 며느리인 이덕남씨도 같은 문장을 ‘아버님의 말씀’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신채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가 옥중에서 집필한 ‘조선상고사’에 해당 문장이 나온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이 아닙니다.
총 12편으로 구성된 ‘조선상고사’에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약 37차례 등장하는데 한번도 알려진 명언과 비슷한 맥락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대신 이런 말은 있다고도 이야기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이 역시 틀린 주장으로 ‘재생’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저작 중 ‘독사신론’의 서론에서 유사한 문장이 나오지만 정확히 다른 구조의 문장입니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니,
아아, 역사가의 책임이 그 또한 무거운 것이다
해외에서 그 뿌리를 찾는이가 많은데...
윈스턴 처칠의 말로 알고있는 “과거를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도 출처가 확인되지 않고, 미국의 역사학자 겸 작가 데이비드 맥컬러프의 “과거를 잊은 국가는 기억을 잃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지 산타야나의 저서 ‘이성의 일대기: 인류 발전의 단계(The life of reason: Phases of human progress)’에 나온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이지만 애매하기는 마찮가지죠.
무한도전은 2013년 5월 11일과 18일 2주에 걸쳐 한국사 특집 방송에서 ‘단재 신채호’ 이름표를 단 자막을 각각 한번씩 두 번 내보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
철학, 민주주의 하면 소환되는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이다
Dura Lex Sed Lex
기원전 399년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그가 독배를 마시기 직전에 남긴 말로 ‘아무리 가혹한 법률이라도 사회가 합의한 이상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 2004년 헌법재판소의 시정 권고가 있기 전까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 일화가 준법정신 예화로 수록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누명을 벗고자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재판 자리에서 소크라테스는 ‘부당한 법적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과학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
Eppur si muove.
And yet it moves.
갈릴레오의 전기를 집필한 캐나다의 역사학자 Stillman Drake 스틸먼 드레이크에 의하면 갈릴레이에 대한 이 일화는 18세기 여러 해 동안 그는 주로 저술로 생계를 꾸리며 방황하는 삶을 살았던 이탈리아 작가 Giuseppe Marc'Antonio Barett 주세페 바레티의 창작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곧바로 다른 작가들에게 입수되었고, 그들은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소에서 재판이 끝난 직후 혼잣말로 말한 것처럼 재구성하게 된것이죠.
역사 속 악녀로 표현한 마리 앙투아네트,
Qu'ils mangent de la brioche!(불어원문)
Let them eat cake!(흔히 알려진 영역 문장)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프랑스어 원문인 Qu'ils mangent de la brioche 를 직역하면, '그럼 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으라고 하세요!' 이라는 뜻입니다.
'Let them eat cake' 는 저 문장이 영국으로 전달되면서 브리오슈라는 단어보다는 케이크가 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지 단어를 약간 바꾼 번역이죠.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브리오슈의 이런 식의 말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를 '오스트리아의 암탉'이라고 부르며 비웃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소문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오기 전, 그러니까 프랑스 땅을 밟기도 전에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등장합니다.
Enfin je me rappelai le pis-aller d’une grande princesse à qui l’on disait que les paysans n’avaient pas de pain, et qui répondit : Qu’ils mangent de la brioche.
최종적으로 나는 빵이 없다는 농부들의 말에 대한 고귀한 공주의 임시 방편- 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이자!-에 대해 떠올렸다.
-장 자크 루소, 참회록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선의로 했던 말을 악의적으로 곡해한 다음, 그 곡해된 소문을 다시 앙투아네트에게 뒤집어 씌운다는 이중 모함을 한 것입니다.
항담巷談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