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레는 트레일코스가 아닌 곱가름
제주 올레길이라는 제주의 트레킹 코스가 2007년 9월 8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시흥초등학교에서 올레 제1코스 개설식을 가진 이래로 현재 27개 코스, 총연장 437km의 제주도를 걸어서 여행하는 장거리 도보 여행길이 열려 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올래(올레. 이하 올래라함)에 길을 더한 이 트레킹 코스때문에 올래를 걷는 길이라는 의미의 트레일 trail 로 생각하는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정작 올래는 공공의 도로 개념이 아니라 개인적인 사도(私道 사사로이 내어 쓰는 길)를 말합니다.
원래 의미를 찾아보면 올래는 당연히 ‘입구 門’이라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직 제주 민가만이 갖는 특유의 공간으로 육지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것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전통민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구조 중 하나가 ‘올래’인것입니다.
제주에는 사리(事理)를 분별하여 신과 인간의 영역의 한계를 짓거나 구분하는 '곱가름’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와 부모, 형제, 부부, 부와 자식, 이웃과 이웃 등 사람들 간 서로 사리를 분별하여 한계를 분명하게 가르는 곱가르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 곱가름은 공간적으로 경계, 혹은 영역으로 시각적으로는 그것은 선을 그어 책임선, 혹은 자신의 영역을 분명하게 하는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마을 바당밭에도 마을간 선이 있듯 외부와 닿는 공간들의 선을 긋는 개념으로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을 곱가르는것이라 할수 있을것입니다.
마을길에서 사유지로 들어올때 ‘마을길-어귀-올래-올래목-마당’의 공간변화를 이루며 개방과 폐쇄의 완급을 보여줍니다.
형태는 일반적으로 휘어진 곡선형이 일반적이지만 직선의 올래도 있고 올래가 없이 마을길에서 바로 정주목 이후 마당으로 이어진 곳도 있습니다.
마을길에서 올래로 진입하기전 올래 바깥쪽을 ‘올래어귀’라하는데 올래어귀 양측 돌담은 보통 돌담과는 달리 큰돌로 쌓는데, 이 돌을 ‘어귓(귀)돌’이라 하며 주택영역의 시작임을 표시합니다.
‘어귓돌’ 옆에는 말을 탈 때 디뎌 오르는 ‘쉼팡(팡돌, 노룻돌 下馬石) ’이 놓입니다.
대문이 없는 경우에는 여기에서 약간 안쪽으로 대문 대용인 ‘정낭’이 ‘정주목이나 ‘정주석’에 끼워지는데 이 형식은 목축지대인 중산간지대 주택에 흔한 형태입니다.
정주석(정낭)은 옛날 마소를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한 장치였기 때문에 기르는 말의 크기에 따라 정주석의 높이가 결정되고, 목축시대가 지나서 사람이 있을 때는 정낭 모두를 내리지만 사람이 없을 때는 정낭 모두를 걸어두었습니다.
집 가까이 나갈 때는 편의상 한 둘을 걸어두고 출타시에는 있는 정낭 모두를 걸어둡니다.
바닥에는 올래의 영역을 표시하는 올래 톡(턱)이 있습니다.
여기부터 시작되는 올래 양쪽에는 1.5∼2m 높이로 다듬지 않은 제멋대로의 돌을 척척 올려 담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돌담 여기저기서 틈이 보이는데 이렇게 성글게 쌓은 돌담은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지만 오히려 제주의 거센 바람에 강합니다.
굽이쳐 도는 올래를 따라 쌓은 돌담은 집으로 들이치는 바람의 속도를 누그러뜨려 주택을 바람으로부터 안전하게 해줍니다.
올래는 완만한 곡선형으로 휘어돌아가게 만들거나 집터와 높이차이를 둠으로써 외부의 시선을 차단해, 고유의 사적 공간으로서의 주택의 기능을 살려주는데 이런 건축구조상의 배려는 ‘올래목’이라 부르는 지점에서 더욱 뚜렷합니다.
‘올래목’은 길가에서 시작된 올래가 집마당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꺾이는 부분으로, 여기에서는 집안이 보이지 않으며 이 지점을 벗어났을 때 ‘개인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되므로
공ㆍ사의 결절점(結節點; 여러 가지 기능이 집중되는 접촉 지점)이기도 합니다.
올래 가장자리에는 어귀부터 집안까지 유도하는 넓적하고 평평한 돌이 땅속에 박혀 있습니다.
비가오면 진땅을 밟지 않기 위한 설치물로 징검다리처럼 띄어 있는 것은 ‘다리팡돌’, 연이어 있는 것은 ‘잇돌’이라 합니다.
올래에는 한 올래에 여러 집이 있는 고튼(같은) 올래에는 대개 부모, 자식 세대가 함께하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이웃인 '올렛가지'라고 합니다.
이와함께 톤(다른) 올래가 있는데 자신이 사는 골목과는 다른 곳이므로 고튼 올래와는 다른 관계를 맺으며 주로 특정한 일로 찾는 방문자가 됩니다.
제주에서 질(길)은 한질, 가름질, 거릿질이 있는데 한질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큰길이고, 가름질은 마을길이며, 거릿질은 골목길을 포함한 마을안길을 말합니다.
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물자의 교통을 위한 공적공간이지 사적인 공간이 아니죠.
올래길이라는 단어(용어) 자체가 없는것으로 신조어라 볼 수 있습니다.
길의 들머리에는 언제나 올래가 있었고 올래는 길이자 길이 아닌것입니다.
그것은 집과 이어진 공간이자 세상으로 향하는 공간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올래를 따라 너와 나의 집은 결국 우리 동네로 명명되고, 그 올래를 따라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져 사람과 사람, 집과 집을 ‘우리’로 묶어주는 하나의 탯줄인 셈입니다.
큰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올래를 따라 가야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넓은 새로운 도로가 동네 들머리까지 닦여졌다 하더라도 올래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길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올래는 사람이 사람과 만나는 장이자, 사람이 새로운 길을 만나는 공간인것입니다.
잠녀(해녀)들이 많은 동복, 김녕마을이나 바람이 센 신촌마을에서는 일하러 바다로 나가는 올래나 바로 마을에서 바다로 갈 수 있게 만든 바당 올래, 본향당에 가는 당올래라는 말을 들을수 있는데 공공의 도로의 개념이 아니라, 함께 제사를지내는 공동체, 바닷가 동네 지인들, 함께 물속에서 생사를 함께하는 고튼(같은) 올래의 개념으로 봐야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