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an Paul Sartre 사르트르, Huis Clos 닫힌 방
웹툰으로 2018년 부터 연재한 ‘타인은 지옥이다’, 그리고 이를 2019년 OCN에서 상경한 청년이 서울의 낯선 고시원 생활 속에서 타인이 만들어낸 지옥을 경험하는 미스터리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제목이 무척이나 선정적인데 이 말(L’enfer, c'est les autres 타인은 지옥이다)은 L’existence précèdes l'essence(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과 함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 개념이죠.
L’existence précèdes l'essence(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은 인간은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본질 없이 먼저 존재하며, 자신의 행동과 선택, 경험을 통해 본질을 만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존재하기 전에 본질(또는 기능)이 결정되는 제조된 사물(예: 칼은 제조되기 전에 자르도록 설계됨)과 달리,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나서 자신의 자유와 행동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합니다.
이 개념은 인간이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는데, 이는 인간은 개인의 결정과 헌신을 통해 자신을 창조하고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해 볼 책에 내용중에 있는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는 말은 많은 철학적 해석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종종 순수한 혐오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사실 인간 관계의 복잡성과 모두가 타인의 시선의 주체이자 객체인 세상에서 공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접근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존재가 내가 나다워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뜻으로 타인은 늘 자신들의 판단과 자신들의 기호에 나를 가두어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거나 정의하기 어렵게 만들며, 내 존재가 타인에 의해 부정당할 때 타인은 지옥이 된다는것입니다.
이 두 개념은 인간은 자유롭고 자신의 본질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이러한 자유는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방해받을 수 있으며, 이는 갈등과 개인적 제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르트르의 관점을 표현합니다.
이런 게 지옥인 거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는데···
당신들도 생각나지, 유황불, 장작불, 석쇠···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 닫힌 방 중
타인은 지옥이다 L’enfer, c'est les autres
사실 사르트르의 이름이 우니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연극을 통해서였는데 해방 후 실존주의 철학이 국내에 막 소개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부산에서 극단 ‘신협’이 사르트르의 희곡 「더러운 손」을 「붉은 장갑」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 대성황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당시 공연 연출을 맡았던 이진순에 따르면 “「붉은 장갑」은 전시 피난 중에도 불구하고 극장 밖까지 인산인해로 관중이 몰릴” 정도로 연일 초만원이었고 각 일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또한 사르트르라는 거장을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로 만들었던 것은 정작 그의 희곡들이었습니다.
1943년 가을에 집필된 Huis Clos 닫힌 방은 사르트르 연극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성공적이라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1944년 5월 당시 떠오르던 신예 연출가 Raymond Rouleau 레이몽 룰로가 무대에 올린 후 지금도 프랑스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상연되고 있습니다.
1944년 3월 한 문학잡지에 ‘타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실렸던 이 작품은 1945년 éditions Gallimard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2004년 집계에 의하면 이후 약 240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지옥에 갇힌 세 사람의 갈등을 그린 ‘닫힌 방’은 사르트르의 작품 중 가장 연극적이면서도 가장 참여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데, 시사 문제보다는 사르트르의 철학과 밀접한 작품이기에 비평계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오랜 폭격을 피해 지하실에 갇힌 상황이 배경이었다가 곧 영원한 지옥 속에 갇힌 세 주인공들로 주제가 바뀌는데, 한때 Garcin 가르생 역을 Albert Camu 카뮈가 맡아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닫힌 방은 호텔 급사처럼 보이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의 안내를 받아 전혀 지옥처럼 보이지 않는 한 장소로 세 영혼이 차례로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급사는 극 초반에 인물들을 모이게 하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규칙이 통하는 곳인지 알려주고는 퇴장 후 등장하지 않습니다.
신문기자였던 Garcin 가르생과 우체국 직원이었던 Inez 이네스, 그리고 부유한 마담 Estelle 에스텔.
브라질 리우 출신의 닫힌 방 첫번째 입실자 가르생은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 하지만 순종적인 아내가 보는 앞에서 여성 편력도 만만찮았던 남자로 반전운동 신문을 주간하다가 탈영 중 사살된 인물로, 상의에 열두 군데의 총상 구멍을 가진 특징이 있는데 자신이 비겁하다고 평가받는 것에 대해 민감합니다.
이네스는 결혼해서 남편도 있는 여자를 사랑해서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지도록 조종할 정도로 노련해 그 남자는 자살했고, 이네스가 사랑한 여자는 결국 함께 잠자리에 들며 스스로 가스 밸브를 열게 됩니다.
매우 냉철하고 깐깐한 편이며 이 극에서 가르생의 가장 강력한 견제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파리 출신의 젊은 여성으로, 금발의 백치미가 있는 넉넉한 재력의 에스텔은 동생의 병간호를 위해 아버지의 친구인 늙은 남자와 결혼했으나 젊은 애인과 바람이 나고, 그 사이에서 난 갓난아이를 호수에 빠뜨려 죽입니다.
폐렴으로 죽어 지옥에 왔습니다.
창문도 출구도 없이 모든 것이 박탈된 상황이 그나마 이들이 지옥의 영벌을 받고 있는 상황임을 드러내 줍니다.
극이 서서히 진행되면 각자의 고백을 통해서 그들의 과거와 죽은 사연이 밝혀지고, 각각이 품은 욕망과 비밀이 서로 얽히고 충돌하면서, 출구 없는 방에서 이들의 공존은 지옥 그 자체가 되고 맙니다.
결국 세 사람은 가르생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라는 명제를 재차 확인합니다.
사르트르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사랑(Simone de Beauvoir 보부아르와의 삼각 관계)이라는 개인 체험이나 부도덕한 부르주아 집단의 가식에 대한 반발, 혹은 독일 점령하에 감금 생활을 하던 프랑스인들의 전시 체험을 극화한 것이라고도 평가받는 닫힌 방은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르트르 철학의 연극적 표현으로 평가받습니다.
자신이 쓴 철학서인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에서 타인 내지는 타자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해서 궁금해 문에 귀를 대고 열쇠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본다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하는데, 갑자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를 듣고서, 뒤늦게 깜짝 놀라며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물론 나의 숨어 있는 모습을 들킨 것이 아니니, 숨어 있던 사실을 남에게 들켜서 부끄러운 것은 아닙니다.
질투에서든, 호기심에서든 내가 타인에 대해 마음을 품고 그를 궁금해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깨워져 부끄러운 것이죠.
그가 그 즈음 쓴 희곡인 닫힌 방에서 버젓이 ‘타인은 지옥’이라고 선언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인간됨이라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것입니다.
‘타자의 시선’이 지옥의 형벌 도구가 되어 어둠이나 꿈, 휴식이 부재하는 닫힌 공간에서 언제까지나 ‘나’를 쳐다보며 ‘나’의 존재를 훔쳐 가는 타인들과 함께하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