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역사 읽기 IV 근현대사

두번째. 조선의 패망에서 독립까지 02

by Architect Y

동서고금을 통해 지울 수 없는 핍박

지원병 독려

창씨 개명

공출과 애국헌금

신사참배


일본 제국주의는 군대와 경찰을 앞세워 강압적인 전시동원체제를 운용하면서 1938년 7월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라는 관제 어용조직을 만들어 종 반민족 친일행위를 자행케 하였다.

1938년 4월을 기하여는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일제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일본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심각한 역사 왜곡과 알본과 조선은 한나의 뿌리하는 해괴한 이론인 '닛센 도소론 日鮮同祖論 일선동조론'을 유포시키는 등 우리 민족말살 정책에 혈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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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는 전쟁 수행을 위한 군량미 조달을 목적으로 조선 전역에서 쌀의 강제적 공출이 극심하여,

1941 년에는 쌀 생산량의 43.1%를,

1942 년에는 45.2%,

1943 년에는 55.7%,

1944 년에는 무려 생산량의 63.8%를 수탈해 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상황이 이러하니 굶주림에 허덕이던 간도 지방의 우리 동포 농민들이 1931년 가을 연길, 왕청의 두 현을 중심으로 소작료 인하와 먹을 식량을 요구하는 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일제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우리 동포 4만여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 민중이 지닌 모든 것을 오로지 침략 전쟁의 수행을 위한 군수물자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쥐어 짜내어 약탈하여 갔다.

일본 제국주의 극단적인 수탈로 인하여 극소수의 친일 반역자들을 제외한 전체 조선 민중에게는 재앙, 바로 그것 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경제는 완전히 파괴되어 1930년대 말 조선의 실업률은 무려 53%에 달하였고 초목근피로 겨우 겨우 연명하여 가던 식민지 조선 백성들은 생존을 위하여 일본을 비롯하여 만주, 중국 대륙, 연해주, 시베리아, 하와이 등으로 떠돌며 노예와 같은 비참한 유랑 생활을 하여야만 했다.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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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일본의 수탈은 군수 물자 수탈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일본 국내의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일제는 조선 민중을 강제적으로 끌고가 광산, 철도 건설, 조선, 철강 등 각 분야의 기업에서 노예와 같은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1910년경 일본 내 조선인 숫자는 약 1.000여명에 불과했으나 1940 년에는 무려 119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1945년에는 236만 5.000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일본내 조선인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한 배경에는 1939 년부터는 일본 정부가 일본의 광산과 토목사업을 경영하는 기업인들의 노예 사냥을 묵인하는 "조선인을 집단적으로 연행해 가는 것"을 허가하였으며, 1944년 부터는 아예 법으로 강제하는 '징용령'을 시행하였던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 정부에 의한 조선 민중에 대한 노예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노동력 착취를 위한 노예 사냥뿐 아니라 전장터에서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총알받이가 필요했던 일제는

1938년 '육군 특별지원령'을 시작으로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제도'가 강행되었고, 1944년 부터는 지원병 제도를 강제적 징집제도인 '징병제'로 바꾸고 약 20만 명의 조선 청년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전장터로 몰아 넣었다.

수 십만명의 조선의 젊은 여성들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전장터로 끌고가 일본군 병사들의 성노예로 삼는 도저히 용서못 할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범죄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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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과 동족 핍박


그러나 조선민중에 대한 가혹한 수탈과 탄압에 자신의 영달만을 위하여 일본 제국주의의에 협력하고 부역하는 반민족 친일반역자들의 무리 또한 있었다.

이들은 조선 민중들의 참혹한 고통은 아랑곳없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기생하여 호의호식하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들이다.

그들은 군사쿠테타후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총리, 장관 등 정부 요직을 이들이 대부분 차지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되었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지역 갈등을 조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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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립 투쟁을 하던 애국지사들을 잡아 고문하고 살육하던 구자경, 최연, 최운하, 김호익, 최경진, 곽영주, 노주봉, 노덕술과 같은 악질 친일 경찰들 또한 해방이후 신생 대한민국의 경찰에서도 반공을 빌미로 또다시 애국지사들을 공산당으로 몰아 고문하고 살육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이승만 독재의 한 축으로 권력과 부를 마음껏 누리며 대한민국경찰의 중추적인 역활을 하였다.

봉건 조선시대의 지배계급이었던 양반가 출신들인 박제순 등 을사오적과 송병준 등 정미칠적(을사조약 체결 2년 후인 1907년 7월에 체결된 한일신협약 조인에 찬성한 내각) 과 같은 매국노들과 그 후손들은 조상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댓가로 받은 작위와 돈으로 대물림하여 자자손손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 이완용은 을사늑약, 정미칠조약, 경술국치때에 학부대신 또는 총리대신으로 세 번의 늑약,조약에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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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권, 백선엽, 박정희, 김석원, 원용덕 등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장교로 부역하며 만주와 한반도 등지에서 독립 투사들을 살육하던 일제의 충견들이었고, 대한민국 독립이후에도 그들이 저질은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거나 청산되지 못하고 오히여 군부내 '만주인맥'이라는 계파를 형성하여 군부내의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박정희의 군사 반란이후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총리, 장관 등 정부 요직을 이들이 대부분 차지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되었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지역 갈등을 조장하고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부가 편중되어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게 한 장본인들이다.


일본 정신은 곧 진리요, 조선인은 그 민족 감정과 전통의 발전적 해소를 단행하고 아주 피와 살과 뼈까지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 - 춘원 이광수


병역은 힘이다, 나서라 지상명령이다

- 유진오, 윤치호, 장덕수, 주요한, 김팔봉, 김동환, 모윤숙, 서정주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1942 년 3월, 만주 신경 군관학교 졸업식장에서 '어전강연' 답사 졸업생 대표 오카모토 미노루(다카키 마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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