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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26.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서촌

여섯. 서촌이 아닌 상촌을 돌아…

북촌과 서촌 두번째 이야기 서촌(상촌)을 돌아돌아.

최근 주목받는 西村(서촌;경복궁 서쪽 일대에는 담장 옆 서울 종로구 통의동, 효자동, 통인동, 창성동, 적선동, 사직동, 체부동 일대를 뜻함)에는 한옥 외에도 북촌에는 없는 ‘역사문화 콘텐츠’라는 매력이 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땅 ‘준수방’과 추사 김정희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곁들인 ‘송석원’ 터, 겸재 정선의 집터였던 ‘인곡정사’에다 순종 왕후 윤비의 생가에 이르기까지 6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

또 이상 윤동주 시인 등 문인들과 이중섭 박노수 등 화가들, 김동진 현제명 같은 음악가들이 살던 집도 있고.

최근에는 서정주 김동리를 비롯한 문인들이 장기 투숙하며 작품을 썼다는 ‘보안여관’까지 발견되는 등 문화예술과 관련한 이야기도 널려 있다.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일명 서촌.

서촌은 서쪽인데 지금 서촌(통인동 인근)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원래 上村상촌, 우리말로 웃대다.

3,4년 전부터 그 지역에서 문화운동하는 한 단체가 경복궁의 서쪽지역이니 서촌이라는 식으로 부르기 시작한걸 미디어가 받아쓰면서 서촌으로 굳어졌던 것이다.

원래 서촌은 신문로와 정동일대다.


서촌은 전문직인 역관이나 의관 등의 중인들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모여 살던 곳이다.

겸재 정선의 명작 「인왕재색도」가 탄생한 곳도 바로 이곳이고.

당시 전문 지식인층이었던 중인들을 비롯해 풍류를 즐기는 시문학 동인들이 인왕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근대기에 와서는 소설가 이상과 현대 동양화단의 거목 박노수, 한국화가 이상범, 시인 윤동주, 화가 이중섭 등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에 적을 두고 예술 혼을 불태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인 매동초등학교와 공립도서관인 종로도서관,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배화여고 생활관 등 역사적 건축물도 자리 잡고 있다.

서촌의 한옥은 1920년대 이후 지어진 생활형 개량 한옥이 대부분이다.

책에서 보던 우리나라 전통 한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회벽 대신 콘크리트로 담을 쌓고 기와와 양철지붕이 맞닿아 있는,  왠지 어렸을 적 살던 동네가 생각나는 친숙한 모습이다.

4대문 안의 한옥 1400여 채 가운데 300여 채가 서촌에 남아 있다.

서울시는 서촌 일대 한옥 663가구를 보존하는 계획을 밝혔고 종로구는 「걷기 좋은 골목길 20선」을 발표하며 16번째 도보 코스로 서촌 일대를 선정했다.

옥인동에는 윤덕영의 딸과 사위가 살던 양옥집 한 채도 남아 있다.

어쩌면 대지가 줄어든 듯 보이기도 하는 이 집은 냇물 건너 구름다리로 송석원 벽수산장과 연결되었다.


1938년 양식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반지하 포함 3층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1972년부터 동양화가 박노수 씨가 살다가 2011년 종로구에 박노수 미술관으로 기증되었다.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이자 해방 후 한국화 1세대로 불리는 박 화백은 간결한 운필, 파격적인 구도와 채색을 통해 격조 높은 회화 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화백은 일제의 잔재와 영향이 팽배하던 해방 직후 한국화의 정체성을 모색하던 화단의 움직임 속에서 전통회화의 영향도, 일제의 영향도 받지 않은 독자적인 화풍을 연구하고 시도했었다.

평생에 걸쳐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전력을 다했으며 전통 속에서 현대성을 구현해 내 한국화단에 한 획을 그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서울 삼청동과 북촌 거리에는 걷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

도로는 주차장이 됐고 음식점과 카페는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이 같은 인기 덕에 삼청동과 북촌은 평당 땅값이 최하 7,000만원에서 최고 1억5,000만원을 넘는 상업지로 변신.

자연히 작은 갤러리와 박물관을 밀어내고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음식점이 들어찼다

서촌은 너무 삼청동이 상업적으로 번화하는 것과 발을 맞춰 제2의 삼청동으로 부상했다.


삼청동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티베트 박물관은 개관 10년만인 2011년 실크로드 박물관과 통합해 종로구 누상동 166의107번지로 이전했고.

그토록 사랑했던 삼청동이 비슷한 모습의 카페와 음식점으로 꽉꽉 들어차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고

신영수 관장은 티베트 박물관을 이전하고 후배 홍성철씨와 장혜선 실크로드 박물관 관장과 함께 누하동에는 박물관과 식당을 겸한 이색적인 가게를 열었다.

장혜선 관장은 매일 저녁 이 곳의 셰프로 변신, 음식을 요리한다.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문화 놀이터」를 표방하며 2007년 통인동에 문을 연 길담서원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철학자 윤구병 등의 강의가 입 소문이 나면서 서울의 대표적 인문학 강좌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박성준 교수 부인이 한명숙 전 총리.

순라길이 그대로 남아 있던 종묘 옆 북서쪽이나 경희궁 옆 내수동 지역은 재개발로 사라져, 지금의 체부동지역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체부동이 마을의 형태를 갖기 시작한 것은 조선왕조의 출현 시기와 비슷하다.

경복궁 바로 옆 동네이니 궁궐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나 그들을 상대로 하는 난전, 서당 등이 마을을 구성하고 있었고.

체부동은 체찰사부 또는 이를 줄여 부른 체부청에서 나왔다.

체찰사부는 조선 중기까지 구리개에 있었다.

구리개는 지금의 을지로 입구역 부근이고 체찰사는 왕의 명을 받들어 병사들을 독려하는 벼슬이다.

지금의 체부동은 이 체부청이 있던 고을이고.

서촌은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지만 도화선 같다.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와 도심 재개발 문제, 유적 보존 문제, 옥인아파트 자리에 청정공원과 물길을 만들겠다는 정부 입장 등이 다 다르다.

하지만 서촌은 삼청동 같은 대로가 아니라 때론 막다른 길이 나오기도 하는, 있는 그대로의 골목길이 살아 있다

2011년 서울시에서 「경복궁 서쪽 지구단위계획」을 발표하면서 개발에서 보존정책으로 선회했지만, 한옥 권장지역의 한옥은 법 취지와 달리 계속 헐려나가는 중이다.


통인동 154-10번지에 있는 「이상의 집」이 서촌의 현주소다.

시인 이상(1910~1937)의 ‘창작의 산실’이란 이유로 2004년 등록문화재 목록에 올랐던 이곳의 ㅂ자 개량한옥은 1943년 집장사가 원래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2008년 문화재 지정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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