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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r 06.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사직

열. 사직은 곧 국가다.

백성이 있으면 있어야 하는 社稷壇사직단


有民人焉 有社稷焉 유민인언 유사직언

백성이 있으면 사직이 있다

- 論語 先進 논어선진편


諸侯危社稷 則變置 제후위사직 칙변치

무도한 제후가 나타나 만약 사직을 위태롭게 한다면 다시 새로운 어진 임금을 세워야 한다.

- 孟子盡心章句下 맹자 진심장구하편

일제 그리고 희미한 정책에 너덜너덜해진 역사.

종묘와 사직은 항상 둘이 함께 언급되는 한쌍의 국가 최고 의전시설인데 종묘가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곳이고 사직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므로 실은 사직이 한 단계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1년에 4차례 임금이 직접 제주가 되어

땅의 신, 社사와 곡식의 신, 稷직에 제사하는 大祭祀대제사와

풍년의 비는 先農선농, 좋은 베짜기를 비는 先蠶선잠, 좋은 기후를 비는 雩壇우단 등 세번의 中祭祀중제사가 있었고 수시로 祈穀祭기곡제와 祈雨祭기우제를 지냈다.

당연히 종묘가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것 이상으로 사직단은 더욱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현재의 종묘는 한국 전통건축의 대표적인 존재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자리에까지 올라 세계인의 주목과 찬탄을 받고 있는 반면 사직단은 땅바닥에 제단만 덩그러니 남은 채 주변 부속건물들은 모두 소실되고 지금은 잡다한 건물과 시설들이 지근거리까지 들어차 있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모습을 일본인들이 보면 한심하다 할는지 잘한다 할는지 모를 지경이다.

한시바삐 사직단에 원래 있던 임금의 제삿길, 준비실, 목욕실, 음식준비를 위한 찬방, 제기창고, 근위 경호대의 숙소, 그리고 제사를 주관하던 社稷署사직서 등 종묘보다도 크고 많았던 주변시설들이 제 모습 그대로 복원되고 사직제례 의식과 제례음악이 복원되어 종묘 이상 가는 아름다운 건축과 문화적 자부심 하나를 더 되찾아야 한다.

이것은 또 다른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대상이 되는것이다.

또한 한양성곽으로 둘러싸인 역사도시의 기본질서를 바로잡는 일로서 정궁의 좌우에 형평을 이룩하여 도시의 옛 모습이 어떠했는지 사실대로 후대에 알려야 할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울시의 구상과 시민의 염원대로 한양도성 구도심 전체를 유네스코에 올리자는 시도의 출발점이 될 것이며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서촌지구 역사문화 보전사업의 기본설정이 될 것이다.

2015년 8월 18일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콘텐츠산업 선순환 생태계 확립 방안을 비롯해 전통문화의 가치 재해석과 산업적 활용 및 세계화를 골자로 하는 '국정 2기, 문화융성 방향과 추진계획'을 공개했다.

김 장관은 "우리 문화에 대한 국민 자긍심을 높이고, 전통문화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이를 통해 세계인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겠다"고 했는데 현실을 확인이나 했는지...


명품도시 한양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리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남산을 안산으로,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하는

內四山내사산의 교차축에 정궁인 경복궁을 두고

좌에 종묘, 우에 사직을 두는 左廟右社좌묘우사 형식.


그래 종묘사직이란 말은 한마디로 조선왕조 자체를 의미하는 일반명사이기도 한것이다.

그런데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 바꾸어 개방하는 바람에 훼손이 많이 된 상태.

사직단은 2011년금년에 종로구청에서 문화재청으로 이관하여 제대로 관리 시작했다.

원래 사직단 영역은 3만 평.

종로구청이 도서관 등 불법 건물 신축하는등 지금은 2,000평만남아 있다.

사직단의 훼손은 왜놈들만 한 게 아니다.

10년 동안 전부 철거 하고 복원 예정이라 한다.

사직단 정문은 보물 제177호.

사직을 관리하는 관청은 예조 산하 '사직서', 사직서의 우두머리는 '사직지신'

'사직지신'은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최고의 충신으로 조선의 별들이 이 자리 역임했다.

백성의 안위를 지키는 영의정은 한 수 아래가 된다.


사직지신이란 능히 사직을 바로 세우고 상하의 마땅함을 변별해 그 이치에 맞도록 한다.

- 안자


1395년 사직단 창건.

지금은 제대로 남아있는거라곤 安香廳안향청과 정문밖에 없다.

안향청은 재궁으로 쓰인 사직서의 중심 건물이다.

종로구청이 한 때는 관리사무실로 사용하다 방치하고 있다 지금은 문화재청이 안향청 좌측에 임시 건물 짓고 관리사무실로 사용중이다.

사방에 기와를 얹은 낮은 담을 둘렀다.

이를 '유'라고 하고 유는 신성한 구역인 성계와 인간의 세상인 속계를 구분하는 울타리역할입이다.

단의 높이는 3척, 장대석도 3개 층.

신의 문인 우측의 북신문만 삼문. 나머지 방향의 문은 일문.

원래 신이 드나드는 방위인 북쪽에 있었지만 지금은 동쪽에.

종묘는 남북으로 사직단은 동서로 배치한다.

사직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니 좌우측에 1m 높이의 제단은 한 변 길이가 7.65m인 정사각형이다.

우측 동쪽 제단엔 땅의 신 ‘국사’, 좌측 서쪽 제단에는 곡식의 신 ‘국직’을 모신다.

각각의 단은 다섯 가지 색깔의 흙으로 덮여지는데 보통 오방색이라고 하는 청색과 백색, 적색, 흑색이 동서남북 방위를 따라 덮여지며, 마지막으로 중심 부분은 이전부터 황제나 중심을 의미하는 황색으로 덮여져 된다.

18세기 말 중건하지만 정유재란때 사직을 황해도 수안으로 옮겼는데 돌아와 보니 전부 소실된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제사 폐지한다.

1922년 사직단은 사직공원으로 격하되고

1932년 북쪽 500평을 매동초등학교에 매각하여 경내에 수영장도 만들어진다.

1962년 사직로를 만들면서 정문은 다시 14m 후방으로 이동한다.

1967년 말도 안되는 단군성전이 세워진다.

1969년 신사임당 동상. 신사임당 동상은 박정희의 수족 고려원양 사장 이학수가 세웠죠

1970년 이율곡 동상. 이율곡동상은 동양제과 창업주 이양구가 세웠고.

어처구니 없다.

문화재청이 122억 투입해 3단계에 걸친 복원에 나서지만...

동상, 사직파출소, 단군성전도 철거 대상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사직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

9월 셋째주 일요일 덕수궁을 출발한 600명 규모의 어가행렬이 세종로-광화문-사직로를 거쳐 사직단 도착하게된다.

주최는 전주이씨집안이고 예산은 문화재청이 지원한다.

4번 열어야되지만 돈이 없으니...

지방의 주나 현 관아에서 공식적으로 거행하는 정규적인 제사로 三壇一廟삼단일묘가 있었다.

세 개의 단은 사직단, 성황단, 여단(祣壇)이고 한 개의 묘는 문묘.

삶의 공간 한가운데에 행정의 중심지인 치소를 두고,

동쪽에는 문묘,

서에 사직단,

북에 여단,

남에 기우단과 마을 공동체의 으뜸 신인 성황城隍을 모시는 성황단을 두는 것이 과거 공간구성의 기본 틀이다.

여단은 '후손이 없어 제사를 받아먹지 못하는 귀신'인 여(려)에게 제사지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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