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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Dec 01.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I 경기 옥병서원

열셋. 포천 玉屛書院 옥병서원


松筠節操 水月精神 송균절조 수월정신

선조는 朴淳박순을 일컬어 소나무나 대나무의 곧은 절조에 맑은 물이나 밝은 달과 같은 깨끗한 정신의 소유자라 칭했다.

학문의 깊이를 최고로 쳤던 사대부로 조선에서 가장 상징적인 자리는 지금의 서울대 총장인 대제학이다.

직급은 정2품의 판서지만 온 유생의 존경과 함께 나라님도 함부로 대하지 못해 정 1품인 삼정승이 부럽지 않았다.

보통 홍문관과 예문관, 성균관의 대사성을 文衡문형(나라의 학문을 바르게 평가하는 저울)이라고 불렀다.


1566년 박순은 대제학에 제수됐지만 퇴계 이황이 아래 직급인 제학에 제수되자 대제학 사퇴한다.

나이로 보나 학문의 깊이로 보나 퇴계를 따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퇴계는 66세, 사암은 44세.


높은 나이의 대석학이 다음 자리의 벼슬에 있고

제가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부족한 사람으로

감히 윗자리에 있음은 합당하지 않으니 서로의 자리를 바꾸어주기를 청합니다.


이에 퇴계도 사양한다.

대제학 박순은 제학 이퇴계를 깍듯이 모셨다.

이퇴계가 돌아가시자 퇴계에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正學정학을 천명하고 후생을 인도해주어

공자·맹자·정자·주자의 도가

우리 조선에서 찬란하게 다시 밝혀지게 했던 분은 오직 선생 한 사람뿐이었다

朴淳 박순

호는 思菴사암, 靑霞子청하자

본관은 忠州충주이고 아버지는 한성부 좌윤을 지낸 육봉 朴祐박우.

조선 제일의 시인이라던 눌재 박상(己卯名賢기묘명현; 기묘사화와 관련된 인물)의 조카다.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동료학자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수준 높은 학자였다.

충주박씨의 유일한 청백리다.


명종의 친시에 장원급제한다.

임금의 외숙이자 간신이던 윤원형, 왕비의 외숙인 권력자 이량, 두 권신을 추방한 인물로 선조대왕의 믿음직한 신하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추천하고 권장하여 나라를 건지려 했던 사암은 율곡의 친구인 송강 정철과 함께 싸잡아 서인으로 몰려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율곡이 세상을 떠나고, 우계가 귀향하자 사암은 조정에서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동인의 송응개 등은 사암만 조정에서 나가면 권력을 손에 쥔다고 여기고 온갖 방법으로 사암 공격했고 이에 지친 사암은 마침내 세상에서 물러나 은거하기를 결심하고 외동딸이 사는 경기도 포천의 백운계곡으로 은퇴한다.

영의정 재임 14년 만이다.

영의정 18년 한 황희정승에 이어 2위 기록이듯 그만큼 바른 선비였다.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 재임기간이 제일 긴 사람은 정일권으로 7년이다.


선생이 낙향한 곳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이곳은 옛날부터 산수가 아름답기로 세상에 이름난 곳으로 蒼玉屛창옥병이라는 절벽이 백운계곡을 휘감고 있으며 맑고 깨끗한 백운계곡의 물은 바위를 돌고 돌며 세상의 근심을 잊게 해주는 곳이다.

이곳에는 당대의 시인 봉래 양사언 형제들이 시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며, 당대 명필 석봉 한호가 찾아오는 곳이어서 절벽에 많은 글씨를 써서 새기고 세상을 관조하며 사암은 말년을 보냈다.

선생은 拜鵑窩배견와(두보처럼 두견에게 절을 하는 움집)라는 집에서 거처하면서 그 곁에 二養亭이양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문우들이 모여들면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

진정한 선비의 말년…

적자가 없는 사암은 서자가 있었으나 그를 믿지 않고 외동딸과 사위에게 의지하면서 포천에서 살았다.

창병옥 蒼玉屛
금수정 金水亭

抱川포천이란 지명은 외부로부터 물이 들어오는 곳이 없지만 언제나 깨끗한 물을 풍부하게 품고 있다는 뜻이다.

포천의 옛 지명이 영평이다.

선생은 永平八景歌 영평팔경가를 지었다.


한 여름에도 서리가 낄 정도의 서늘함을 자랑하는 仙游潭선유담

계곡 한 가운데 용 바위의 흔적을 담고 있는 臥龍岩와룡암

백로가 항상 노닐던 白鷺洲백로주

낚시터로 빼어난 산수를 함께 지닌 樂歸亭址낙귀정지

청학이 울고 있다는 靑鶴洞청학동

지금도 옛 정자가 남아있는 金水亭금수정

겸재 정선의 산수화에 등장하는 禾積淵화적연

바위로 된 웅장한 산 蒼玉屛창옥병


1649년 후학들은 서원을 창건하고 선생을 모신다.

1698년에는 이의건과 김수항을 추가 배향한다.

1713년 玉屛옥병(기품이 달과 얼음을 담은 옥병처럼 맑고 청아하다)이라 사액되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고 6.25 때 소실된다.

1978년에 이명우를 회장으로 한 옥병서원복원추진회를 결성하여 1980년에 복원하였다.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주원리 산210.

포천 향토유적 제26호.


건물로는 6칸의 崇賢閣숭현각, 神門신문, 동서 夾門협문, 박순 묘 및 신도비 등이 있다.

祠宇사우(선현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 두고 연 수차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인 숭현각에는 박순을 主壁주벽으로 이의건· 김수항·김성대·윤봉양·이화보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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