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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n 29. 2017

인문 건축가의 건축 이야기 XX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 악연인지 인연인지...

광화문광장 좌측에 세종문화회관이 있다.

이걸 마주보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근현대사를 전시한 박물관은 2010년부터 18개월에 480억원을 들여 개관했다.

원래 이곳은 바로 옆에 붙은 미대사관과 함께 지어진 쌍동이 건물을 Renovation(개축과는 조금다른 의미)한 건물이다.

하지만 애초 두 건물은 한국정부청사 하나만 짓기로 되어 있었다.

미국 정부가 원조 차원에서 한국정부청사를 지어주기로 한 것이다.

원래 미 대사관은 정동의 Habib house 하비브 하우스(https://brunch.co.kr/@architect-shlee/800)와 마주보고 있었다.

정부신청사(전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낙성식; 왼쪽 다섯째부터 로저 닐 빈넬사 한국지사장, 호러스 테일러 미 국무부 감독관. 박승방(오른쪽 넷째) 주한 미국대사관 기술 고문관.

건축비는 500만 달러.

공병대 준장 출신으로 콘크리트 전문가였던 미 국무부 계약관 Horace Taylor 호러스 테일러가 전권을 가지고 주도 했다.

한국정부청사 건물 하나를 설계하고 시공하는 데 총 321만 달러가 들고 200여만 달러가 남았다.

한국청사 건물이 올라가면서 남은 잉여지원금 처리문제가 대두되자 공터에 USOM유솜(: 주한미국경제협조처) 빌딩을 짓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똑같은 건물을 올리는 일이라 경비가 절감되고 230만 달러가 채 들지 않았다.

1961년 10월 1일, 지원금 총 550만 달러로 쌍둥이 빌딩이 완공된 것이다.

이 건물이 지금의 미대사관이다.

여기서도 뒤틀린 이야기가 난무 했다.

미국과 당시 정부의 책임론을 피하려고 미국이 자기들 건물을 설계하는 김에 옆 건물 설계를 같이한 것이며 정작 이 건물의 건축을 주도한 사람은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李龍在 이용재(1897~1974)였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김정동 목원대 교수)

하지만 호러스 테일러의 보좌관으로 미국대사관에서 40년 근속하고 직접 건축자금을 집행했던 박승방씨가 꼼꼼히 챙겨둔 파일을 언론에 공개했다.


일본 유학파 출신 한국 건축가 이용재가 두 건물의 건축을 주도했다는 논문과 기사를 봤습니다.

심지어 필리핀 건설회사가 낙찰받아 시공했다는 칼럼도 여러 차례 접했고요.

내가 그때 건축을 주도한 미 국무부 계약관 Horace Taylor호러스 테일러의 보좌관 자격으로 미국 자금을 집행했는데 터무니없는 낭설입니다.

USAID 미 국제개발청 지원금을 받아 미국 회사들이 주도했지요.

그 신문사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정정을 요청했지만 무책임하게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억측과 誤報오보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정동에 있던 옛 경기여고 자리에 미국대사관을 신축하고 이전할 계획이 있었지요.

한국일보 건너편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를 팔아서 그 자금으로 지을 계획이었고요.

하지만 문화재보호법과 시민들의 반대여론으로 무산됐지만요.

문제는 2000년에 삼성생명에 직원 숙소 부지를 팔아서 만든 약 1000억원의 자금입니다.

미국대사관에서 미 재무부에 입금시키려고 해서 내가 반대했지요.

그랬더니 결국 중국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짓는 데 사용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미대사관 직원숙소부지 1만 1천평은 2600억에 대한항공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대한항공은 호시탐탐 호텔 건립 추진하는데 이 터는 원래 무수리들의 독신자 숙소였다.

복원해야 하는데 소식이 없다.

그래 어떤 이는 미국대사관은 일제총독부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애초에는 우리 정부청사 한 동만 지을 계획이었으나 쌍둥이 건물이 되었고 이 정부 청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돼 이 건물에서 정책 결정을 했다.

62〜81년까지 4차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이 곳에서 시작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 건물에서 정치의 기틀을 잡았다면 경제기획원은 23년 동안 이곳에서 경제 기반을 다졌고 86년부터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 전신인 문화공보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문화 정책의 산실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옆에 있는 쌍동이건물에 미국대사관은 1968년 입주했다.

그전에는 소공동 반도호텔에 있었다.

반도호텔 소유권은 1948년 9월 11일 장택상 총리와 John Joseph Mucho 존 무초 대사가 한국과 미국 대표 자격으로 체결한 ‘한·미 간의 재정과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에 기초하여 광화문 청사 무상사용권은 1968년 최규하 외무부 장관과 William James Porter 윌리엄 포터 대사의 협약에 따른다.

1938년 건립된 근대건축의 걸작 반도호텔은 1974년 철거되고 지금은 롯데호텔이 되었다.


모든걸 다 복원하려던 MB는 육조거리 복원은 안하고 역사박물관으로 결정한다.

설계자는 정림건축

테이프 커팅 해야하니 부랴부랴 2년만에 모든걸 다 정리하고 2012년 12월 26일 개관한다.

그래 우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82-1, 82-13에 1,950평의 대지에 3,250평의 근현대사박물관을 갖게된다.


*참고로 미국은 77년 무렵에 대사관 청사 이전을 계획하고 대상지를 물색해오다 1986년 을지로 1가 롯데호텔 건너편 미 문화원 토지 등과 서울시 소유의 경기여고 자리를 맞바꾸었다.

그곳에 대사관 청사와 직원 숙소를 모두 옮길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미국 측이 옛 경기여고 자리 땅 7,800평을 내놓는 대신 한국 측은 용산의 Camp Coiner 캠프 코이너내 2만4000평을 대사관의 새 터로 제공한다는 데 합의함으로써 수년간 끌어온 논란이 일단락됐다.


*박승방씨는 서울대 공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3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를 나온 엘리트로 60년 귀국해 쌍둥이 건물 짓는 일에 처음부터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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