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언뜻 보면 딱딱한 과학 서적 같지만, 아니다. SF소설? 아니다. 10편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다. 학교 교양 수업 시간에 이 안에 수록된 2편의 단편을 접하게 되었는데, 애정하는 배우가 추천한 도서이기도 했고 작가가 책 속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어 결국 완독하게 됐다.
책 뒷부분에 실려있는 옮긴이의 말이 와닿았다. 이 안에 책의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 것 같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기억이, 기억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그러하다. 마음은 그 주인이 마음먹은 대로도, 마음먹고 싶은 대로도 움직여주지 않는다. 놓아버리고 싶어도 놓지 못하고, 버티려고 해도 무너지고, 잘하고 싶어도 잘되지 않고, 곁에 남고 싶어도 떠나게 되고,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어렵고, 잡을 수 있는데 잡아주지 못하고, 입으로 말을 해도 귀로 듣지 못하고, 나아가고 싶은데 뒤돌아보게 되고, 안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고, 보며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
이들은 픽션의 인물들일뿐인가? 이들은 내가 아닌가? 당신이 아닌가? 우리는 흔들린다. 일상은 이어지고 삶은 큰 폭으로 변하지 않는다 해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상실은 극복되지 않으며, 상처와 실망과 좌절은 영원히 영향을 미친다. 진심을 다했을수록, 허위가 아니었을수록, 고통의 우물은 깊어진다.’(p.283-284)
모든 것들은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고, 우린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음에도 마음에 남아있는 감성으로 인해 때로는 아파하기도 하며, 상대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과학에서 말하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처럼 딱 떨어진다면 좋으련만. 내가 놓아주지 못하는 기억들이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마다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싶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그리고 내 마음이 제 목적지를 향해가지 못할 때에도.